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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렁이와 모소대나무
지렁이와 모소대나무
  • 곽진일 건국대 박사과정·환경과학전공
  • 승인 2015.11.09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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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 곽진일 건국대 박사과정·환경과학전공

한창 진로 고민에 빠져 있던 학부 4학년, ‘위해성 평가’에 관한 수업을 흥미롭게 듣다가 지금은 지도교수가 된 교수님을 찾아뵈었다. 어찌 보면 학부 땐 그저 수능점수에 맞춰 입시원서를 썼고 그 가운데 합격한 곳으로 의도치 않게(?) 입학하게 됐다.

그렇지만 대학원은 아니었다. 졸업 후 진로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하던 시기였던 학부 마지막 학년에 수강한 위해성 평가 수업은 대학원을 입학해 환경위해성 평가를 꼭 배워야겠다는 결심을 서게 해줬다. 이처럼 대학원은 내 선택이 100% 반영된 결정이었다. 지렁이와 만남은 이렇게 시작됐다.

필자가 연구하고 있는 공간은 환경독성 및 위해성 평가 실험실이다. 경제 선진국인 우리나라가 앞으로는 환경선진국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는 공간이다. 중금속, 유기용매, 나노물질 등의 유해화학물질들이 환경매체로 유출됐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노출시나리오에 대해 탐구하고, 생태 서식종들에 대한 위해성을 주로 평가하고 있다.

이 공간에는 화학물질에 대한 생태위해성을 평가할 수 있도록 다양한 먹이사슬 단계를 고려해 지렁이, 식물, 토양선충 등 토양 독성시험종들과 조류, 물벼룩, 어류 등 수서 독성시험종이 있다. 필자도 다양한 생물종으로 화학물질의 생태독성 및 위해성평가 연구를 하고 있지만, 이 중에서 지렁이는 본인이 중점적으로 실험하고 있는 생물종이다.

대학원 입학 전 지렁이는 지렁이 일뿐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한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지렁이가 대표적인 토양 무척추동물로서 토양생태독성평가에 중요한 생물종(key species)이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나 국제표준화기구(ISO)와 같이 국제적인 기관에서도 표준화된 지렁이 독성시험법이 마련돼 있을 만큼 중요한 생태지표(Indicator)로 여겨진다.

예전엔 그냥 지나쳤었지만 비온 뒤 길가로 기어 나온 지렁이를 다시 수풀 속으로 옮겨 주는 습관이 생겼다. 다른 연구자들처럼 연구에 몰두할 때 한번쯤 해본다는 ‘내가 지렁이라면?’하고 대입해 결과들을 분석해 보기도 하며, 꿈에 지렁이神이 나온 경험도 했다.

이렇게 지렁이 독성연구를 하면서 소소하게 생긴 변화로, 더위가 찾아오는 여름과 추위가 찾아오는 겨울이 오기 전, 올해는 폭염과 한파가 덜 하길 바라는 마음이 생겼다는 점도 있다. 기온에 의해 건강성이 좌우되기도 하는 지렁이로 인해 매해 여름과 겨울에는 실험의 시행착오가 상대적으로 증가하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이땐 약간의 가슴앓이도 한다. 비전공서적보다 지렁이 또는 환경관련 논문에 훨씬 시선이 많이 간다는 것도 지렁이가 필자에게 끼친 영향 중 하나일 것이다.

지렁이가 끼친 가장 큰 영향은 뭣보다 꾸준함과 인내심이다. 학문하는 사람의 필수요소 아니던가. 학문 외에도 어떤 일을 하든 꾸준함이 미덕이라고들 말하는 것을 들어왔지만 대학원생 6년차가 돼보니, 특히 박사과정이라면 인내심을 갖고 꾸준히 연구에 몰두해야 한다는 것에 참으로 공감이 간다.

꾸준함과 인내심과 관련해 필자가 스스로를 응원할 때 떠올리는 이야기가 있다. 모소대나무 이야기다. 중국에 모소대나무라는 것이 자생하고 있는데, 이 모소대나무는 씨앗을 뿌리고 4년이 넘도록 좀처럼 자라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5년이 지나면, 하루에 30cm씩 자라나 6주만에 15m의 거대한 대나무로 성장한단다. 무려 4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보이지는 않았지만 땅속으로 깊이 뿌리를 뻗히고 있었다는 것이다. 손에 잡히는 결실이 바로바로 보여지는 것이 최고의 연구결과이고 필자의 희망사항이지만, 모든 연구가 연구자 마음대로 되지는 않는다는 걸 몸소 경험하고 있다.

가끔씩 지인들을 보면서 저마다 어딘가에 자리를 잡고 완주한 것 같은데, 나만 막연한 미래를 보며 아직도 달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연구자의 마음가짐은 필히 현재는 미래를 준비하는 과정이니 자신에게 투자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즐거운 연구가 될 것이다. 오늘도 ‘나는 모소대나무다’라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힘내서 연구를 한다.
 

곽진일 건국대 박사과정·환경과학전공
한국연구재단이 지원하는 중견연구자지원사업에 참여해 수생태계 보호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으며, 국제학술지 <나노톡시콜리지(Nanotoxicology)> 최근호에 제1저자로 논문을 게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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