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9 07:40 (월)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려면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려면
  • 박재묵 논설위원/충남대·사회학
  • 승인 2015.11.02 11: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학정론] 박재묵 논설위원/충남대·사회학
▲ 박재묵 논설위원

언제쯤이면 우리나라에서 첫 노벨상 수상자가 나올 수 있을까.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남북관계를 개선시킨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 전까지 많은 한국인이 가졌던 의문이다. 2000년에 김대중 전 대통령의 수상으로 한국인 노벨상 수상의 염원은 풀렸지만, 노벨상에 대한 우리 국민의 갈증은 크게 줄어들지 않았다. 이제 관심의 초점이 지금까지 수상자를 내지 못한 과학 분야 노벨상으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해마다 가을이 되면 한국인 중에서 누구누구가 과학분야 노벨상의 유력한 후보자로 거론된다는 흥미 유발성 기사가 언론에 뜨고, 덩달아 사람들의 기대도 부풀어 올랐지만, 끊임없이 좌절이 되풀이되고 있다. 올해는 국민들의 좌절이 특별히 컸던 해다. 이웃 일본의 잦은 노벨 과학상 수상자 배출로 잔뜩 기가 죽어있는 마당에 이웃 중국인 과학자까지 수상자로 발표됐기 때문이다.

노벨상 수상자 발표 시즌을 보내면서 어쩔 수 없이 떠올리는 생각들이 있다. 그 중의 하나는 우리나라의 연구 풍토 속에서 과연 노벨상 수상과 같은 탁월한 연구 성과가 얼마나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나라처럼 대학과 정부가 획일적인 잣대로 교수의 성과를 재단하려들고, 금전적 보상 위주로 연구 동기를 유도하려고 하는 분위기 속에서 창의와 학문적 열정이 얼마나 솟아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너무 순진한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노벨상을 수상할만한 연구 성과가 나오기 위해서는 좌고우면하지 않고 연구에 매진하는 연구자의 자세가 기본 요건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연구자의 생활도 안정돼야 하겠지만, 우리나라 연구자들의 평균 소득 수준이 그리 낮은 편이 아님을 고려할 때 보다 중시돼야 할 요소는 연구자의 자세가 아닐까 생각한다.

문제는 연구자의 학문에 대한 헌신적 몰입은 개인의 속성이기도 하지만, 집단적·사회적 요인에 의해 더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서 학자의 학문적 성취가 높게 평가되고 비학문적 ‘출세’가 낮게 평가되는 분위기가 확립돼 있는 경우에는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비학문적 출세를 추구하는 학자의 수가 훨씬 적게 마련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극소수의 학문적 ‘아웃 레이어’가 출현해 특출한 성과를 내주기를 무작정 기다리기보다는 학계의 분위기를 흐트러지지 않게 다잡는 일이 더 중요할 것이다. 물론 이런 일은 연구자 단체인 학회들이 스스로 감당해야 할 일이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사회에서는 전통사회의 선비 정신이 오늘날에도 학계 일반에 널리 확산돼 있어서 이런 일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놓쳐서는 안 될 점은 이처럼 학계의 분위기를 다잡는 데는 대학과 교육 당국의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이들이 만들어서 시행하는 제도가 연구자들의 의식과 행동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획일적이고 정밀하지도 않은 잣대로 연구 활동을 평가하고, 그 평가 결과에 따라서 보수를 차등적으로 지급함으로써 의미 없는 경쟁을 부추기는 대학의 교수평가제도와 뒤에서 이를 추동하는 교육 당국의 행정은 연구자 집단의 분위기를 쇄신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실을 말하자면,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엉뚱한 방향으로 이끌고 가고 있다. 현행 교수평가제도의 부작용을 새삼 거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우리 학계에서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기 위해서는 먼저 투자를 해야 한다. 투자를 하고 기다려야 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투자는 연구비의 확충을 의미하지 않는다. 연구비의 확충도 필요하겠지만, 현 단계에서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연구자들이 갖고 있는 잠재력이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제도를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대학과 교육부가 해야 할 일이다.

박재묵 논설위원/충남대·사회학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