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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정교수, 학문 열정은 식고 ‘딴 길’ 유혹 많아진다”
“40대 정교수, 학문 열정은 식고 ‘딴 길’ 유혹 많아진다”
  • 이재 기자
  • 승인 2015.10.26 10:5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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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들은 어떻게 ‘투 잡'에 나설까

2년전 서울 소재 한 대학의 정교수로 임용된 A교수(45, 남)는 최근 휴대전화를 새로 구입하기 위해 인터넷을 뒤지고 있다. 알음알음 알려진 휴대전화를 통해 기자들의 연락이 잦기 때문이다. 서글서글한 인상과 정감 있는 말투로 어려운 이공계열 관련 문제를 잘 해설해준다는 ‘입소문’이 난 덕분이다. 간간히 언론기고를 요청 받기도 하고, 방송을 통해 자문을 맡기도 하는 등 ‘영역’을 넓히고 있다. 이른바 ‘전문가’로 활약하고 있는 셈이다.

그가 처음 언론에 ‘데뷔’한 것은 고등학교 동창회를 통해서다. 지난해 고등학교 동창회에서 일간지 기자로 일하는 친구를 만난 뒤 그에게 조금씩 자문을 해주면서 새로운 재미에 눈을 떴다. 선배 교수들은 임용 초기부터 외부활동에 몰두하는 A교수를 탐탁치 않아하고 있지만 그는 연구실에 틀어박혀 연구하고 강의하는 것보다 기자들을 만나는 것이 더 재미있다고 털어놨다.

A교수는 “대학의 모든 교수가 SCI급 논문을 써내야 하는 상황에서 과거처럼 연구에 열정을 불태우기어려웠다. SCI급 논문을 매년 써내는 동료가 즐비한데, 그 가운데 두각을 나타내는 연구를 하기 어렵지 않나. 다행히 임용도 통과했기 때문에 당분간은 새로운 역할을 즐기고 싶다. 교수가 어려운 전공이야기를 대중에게 설명해주는 것도 전문가로서의 소임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정년심사를 통과한 교수들이 ‘새로운 역할(?)’을 찾아나서는 사례는 적지 않다. A교수처럼 언론에 자문역할로 활동하다 방송출연을 하는 경우도 많다. 인상적인 저술을 통해 이름을 알리는 것도 ‘투 잡(Tow job)’의 한 경로다. 특히 경제분야의 교수들은 이 같은 경로가 공식처럼 여겨지고 있다. A교수는“경제나 경영 쪽은 워낙 수요가 많다. 경제지도 많고 경제방송도 많지 않느냐. ‘시장분석’ 혹은 ‘주가분석’ 등의 코너에 게스트로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노출에 익숙한 교수들은 전화만 받고도 ‘원하는 대답’을 잘 해주는 요령도 터득한다”고 전했다.

언론계에서 각광받는 또 다른 전공분야는 법학이다. 특히 사건사고 등을 다루는 사회부 기자들의 ‘부름’이 많다. 각 대학들은 대외홍보를 담당하는 직원들에게 ‘전문가 리스트’를 만들어 기자들의 자문요구에 잘 응대할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일부 대학은 이 같은 전문가 취재리스트를 아예 수첩형식으로 작성해 대학을 찾는 기자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한 홍보실 관계자는 “교수들은 명예욕이 커서 공신력 있는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을 좋아한다. 기자들이 중요한 이야기는 삭제하고 자극적인 멘트만 쓴다고 비난하면서도 언론의 연락을 은근히 기다리곤 한다”고 설명했다.

동창회는 교수들의 욕망을 가장 크게 자극하는 공간이다. 대기업 간부나 경영진, 혹은 고위공무원 등 다양한 직군에서 ‘성공한 동창’을 만나는 순간이기 때문에 쉽게 스스로의 처우를 비교하게 된다. 또 다른 사립대 B교수(54, 남)는 “나름대로 이름난 대학의 정교수지만 동창회에서 동기들을 만나면 자랑할 만한 이야기꺼리도 없고, 내가 인생을 재미없게 살았나 하는 생각을 자연히 하게 된다”고 털어놨다.

B교수는 국문학을 전공해 10여 편이 못되는 단편소설을 발표하기도 한 ‘등단 작가’다. 대학에서도 몇 개의 강의를 맡고 있다. 그러나 국문학 자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덜하다보니 동창회에서도 할 이야기가 없다. 심지어 최근 몇 년간은 ‘인문학의 위기’로 인해 안타까운 시선을 감내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심심찮게 “그 학과 없어지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받다보니 동창회 참석 자체를 꺼리게 됐다고 토로했다.

처우도 내세울 것이 없다. 50대 중반의 정교수로 부족할 게 없이 살 수 있지만 동기 가운데 삼성그룹의 간부가 있어 자연스레 비교가 됐다. 술자리를 갖는 와중에도 바쁜 전화를 받으러 나가는 동창을 보며 울리지 않는 전화를 괜스레 원망한 적도 있었다고 고백했다. 열등감은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B교수는 “학계가 그렇다. 40대까지는 교수가 되기 위해 모든 것을 멀리해야 했다. 나름 학문적 열정이 있다고 믿었고 유능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그런데 막상 정교수가 되고 나니 더 이상 나아갈 방법이 없다. 세상엔 나보다 더 국문학을 잘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성취할 능력도, 내용도 없는 게 아닌가 생각돼 울적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B교수처럼 ‘슬럼프’에 빠진 교수들은 손쉽게 ‘새로운 역할’의 욕망에 손을 댔다. A교수처럼 명예를 원하는 교수도 있었지만 그보다 많은 교수들은 보다 실질적인 것을 원했다. 물질적인 욕망이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서울대 교수 가운데 99명(5%)가 기업의 사외이사로 ‘투 잡(Two job)’을 했다. 이들은 평균 5천만원의 연봉을 받고 기업 이사회에서 ‘거수기’ 노릇을 했다. 한국개발연구원이 지난 5월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2010~2012년 3년간 국내 매출 상위 100대 기업의 이사회 운영을 조사한 결과 9천101건의 이사회 안건 가운데 사외이사가 반대표를 낸 안건은 불과 33건(0.4%)에 불과했다. 교수들의 사외이사 겸직이 문제가 되자 서울대는 최근 사외이사로 활동하며 얻은 수익의 15%를 대학에 강제 기부하도록 하는 규정을 검토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명목은 사회 환원이다.

교수들의 사외이사 겸직은 최근 지속적으로 논란을 낳고 있다. 기업 이사회의 공공성을 높이기 위해 사외이사 제도가 도입됐지만 명망가 위주의 선정과 기업 CEO와의 개인적인 친분으로 인한 선임이 잦아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기업의 사외이사를 일부 친분 있는 교수들이 돌아가며 맡는 경우도 발견됐다. 지난해까지 기업체의 사외이사로 활동한 경남 모 사립대 C교수(53)는 “지역 중견 업체의 대표이사와 친분이 있어 관련된 교수들이 지속적으로 해당 기업의 사외이사를 맡고 있다”며“불법이라고 할 수 없지만 사외이사 제도를 악용하는 나쁜 사례다”고 지적했다.

아예 교수직을 유지한 채 기업체를 차리는 경우도 있다. 일부 교수들은 부인이나 가족 명의로 기업체를 차린 뒤 실질적인 기업운영을 도맡아 한다는 것이다. 이 기업을 활용해 지역 산업체와의 친분을 이용해 계약을 따내거나 제자들을 취업시키는 등 다양한 방식의 편법이 등장했다. 이 때, 교수의 인맥이 큰 도움을 줬다. 애로기술 자문이나 지방자치단체와의 친분을 활용해 이들 기업이 손쉽게 성장했다.

지방 사립대의 기계공학과 한 교수(63)는 “최근 애로기술 해소를 위해 기술자문을 독려하는 게 늘면서 편법적인 기업운영이 늘고 있다. 중소기업체 경영자와 이야기하다보면 종종 ‘직접 기업을 운영해보시라’는 권유를 받는다. 이게 빈말인 줄 알면서도 ‘할 수 있
겠다’는 생각을 품는 교수들이 많다. 해당분야에서 ‘전문가’이기 때문에 마주하는 유혹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학문적인 성취를 더 이상 이룩하기 힘들어 ‘딴 길’로 접어들 수 있다는 게 이 교수의 진단이다.

창업을 독려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 교수들의 창업은 더욱 각광받고 있다. 카이스트에만 40여개의 기업이 연구실을 사업장으로 등록해 운영되고 있다. 지난 1999년부터 정부가 벤처기업 활성화를 강조하면서 교수들의 창업제한이 풀렸다. ‘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에 따르면 교수는 벤처기업을 창업하는 경우에 한해 대학당국의 허가를 받아 기업을 운영할 수있다.

한 원로 교수는 “교수가 한 우물을 판다는 게 쉬운 게 아니다. 최근에는 학문이 심화되면서 그 분야의 성취를 이루기 힘든 환경이 됐다. 이런 여건들로 인해 젊은 교수들이 학문을 포기하고 편법으로 접어드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재 기자 jae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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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2015-10-28 17:48:37
여기서 정교수라는 말이 정년트랙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조교수->부교수->(정)교수를 의미하는지 분명치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