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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 나를 위한 투자
취미, 나를 위한 투자
  • 이미리암 광주과기원 박사과정·생명과학부
  • 승인 2015.09.23 13: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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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 이미리암 광주과기원 박사과정·생명과학부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대학원에 진학하고, 조기졸업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박사과정에 접어든 지도 벌써 4년째다. 그 동안 교수님과 여러 실험실 동료들의 도움으로 논문도 내고, 학위를 따기 위한 여러 관문을 거치면서 말로 다 할 수 없이 감사한 일이 많았지만, 한편으로는 스트레스를 받았던 날도 많았다.

실험실에 있는 동안 두뇌회전이 멈춘 것 같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질 때 가만히 자리에 앉아있으면 자연스레 눈길이 스케치북으로 간다. 어렸을 때부터 손으로 뭔가 하는 것을 좋아해서 취미가 비즈공예, 그림그리기, 바느질, 팔찌 만들기, 클래식기타 연주 등 거의 다 손을 써야하는 것들이다.

그중에서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것이 그림그리기다. 손바닥보다 조금 더 큰 크기의 스프링노트를 펼 때의 설렘은 당장 역작이라도 그릴 수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이내 고르고 골라든 잘 깎아진 연필로 낙서나 끄적이게 된다. 그래도 그렇게 한 장 두 장 그려간 그림이 모이고 모여, 대학원 생활을 하는 동안 여섯 권의 스케치북이 모였다. 실험실에서는 물론 실험과 연구를 해야 하지만, 일의 효율을 높이는 데 잠깐 쉬어주는 것만큼 좋은 것도 없는 것 같다.

지난 2010년 광주과학기술원에 기초교육학부가 생긴 이래로 교과과정이 계속 개선되고 있는 것 같은데, 그중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한 사람당 운동 한 종류 및 악기 한 종류를 필수로 배워야 한다는 점이다. 입시위주의 주입식 교육 탓에 전공자를 제외하고는 악기나 운동을 따로 배울 일이 거의 없으니 말이다.

필자가 유치원에 다닐 무렵부터 초등학교를 다닐 때까지 주변의 거의 모든 여자아이들은 피아노를, 남자아이들은 태권도를 다니는 것 같았다.

적어도 독일에서 살다가 5살 때 한국에 건너온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그러다가 입시위주의 주입식 교육을 받기 위해 음악학원이나 체육학원을 그만 두고 공부에만 매진하기 시작한다.

청소년기까지 학교에서 다양한 예체능 활동을 권장하고 교육 여건을 마련해주다가 본격적인 공부가 학부 때부터 시작되는 여타 유럽이나 미국 등의 나라와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대학교를 졸업할 즈음 취업준비를 하게 되면 자기소개서를 쓰는데, 다양한 해외경험, 독서, 취미생활이 중요한 문제로 대두된다.

물론 꾸준히 다양한 경험을 쌓은 사람도 있겠지만, 결국 취업이라는 목적을 위해 ‘스펙쌓기’의 일환이 되는 것이다. 이마저도 자금이나 시간이 없다면 이룰 수 없고, 취업에서도 빈부격차의 영향을 받게 된다.

자신이 즐겁기 위해, 쉬어가기 위해 취미생활을 하면 좋은데, 한국에서는 어떤 목적이 없는 행위는 가치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닌, 본인을 위한 취미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것이 삶을 풍요롭게 하는데 정말 중요한 것 같다.

앞으로 정년이 크게 변하지 않는다면 100세 시대에 일할 수 없는 시간이 무려 40년이나 된다. 은퇴 후의 복지가 잘 마련돼 있지 않은 우리나라에서는 본인의 건강을 챙기는 것과 여가시간을 알차게 보내는 것, 그리고 건강이 허락된다면 제 2의 직업을 선택하는 것도 결국 본인의 몫이다.

작게는 즐거움을 위해, 또 멀리 나아가서는 다른 가능성을 찾을 기회를 위해, 내 주변에 있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은 내려두고, 여가시간을 채울 다른 일들을 찾아서 소소한 기쁨을 느꼈으면 좋겠다.

 

이미리암 광주과기원 박사과정·생명과학부

전남대 식품영양학과를 졸업했다. 현재는 효모를 모델시스템으로 기반을 둔 세포막 융합 관련 메커니즘과 분자적 기전을 밝히는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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