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8 01:35 (일)
[원로칼럼] 은퇴와 사모님
[원로칼럼] 은퇴와 사모님
  • 차종천 성균관대 명예교수·사회학
  • 승인 2015.09.21 10: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평생을 오로지 서생 노릇에 안주해 몰두하던 차모, 그가 은퇴한 지는 아직도 고작 보름 전쯤의 일에 불과하다. 그러나 재직하던 대학에서는 총장, 이사장을 비롯한 많은 유력자들이 성대하게 공식적으로 전별을 해주셨고, 역대 지도학생들로부터도 ─특히 국내외에서 교수로 활동 중인 이들이 중심이 돼─ 기념 심포지엄이라는 잔칫상까지 자못 요란하게 차려 받다보니, 은퇴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과거지사로 확연히 각인되고 말았다. 

은퇴는 ─‘철밥통’ 출신인 주제에 무슨 배부른 항변이냐고 할는지 몰라도, 톡 까놓고 얘기하자면─ 노령에 기초한 사회적, 경제적 공민권의 제약을 골자로 하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노동정책적인 고려만이 우선시된, 매우 획일적이며 노골적인 노인에 대한 인권유린적 폐습으로서 대표적인 헌법소원감이 아닐 수 없다는 걸 정작 겪어보니까 알겠다. 

그러나 우리 서생들, 애당초 돈이나 명예·권력 따위를 좇아 이 길에 접어든 게 아니다. 무장해제 당한 상태에서조차 우리는 전혀 켕길 것이 없다. 사회가 알아주건 말건 지적 추구는 이 세상 마치는 날까지 계속될 것이고, 자아확장 내지 인적 자본은 묘하게도 간단없이 축적으로만 진행될 뿐이므로. 키케로도 말하지 않았던가. “신체적 원기가 쇠퇴한대도 문과 선생들은 결코 불행해하지 않는다”고. 

소속 대학의 높은 양반들은 은퇴식 자리에서 ─이런 경우 거의 단골 메뉴처럼 등장하듯이─ 재직기간 내내 뒷바라지한 ‘사모님’들의 헌신을 기리는 요지의 말씀을 특히 강조했다. 그 지적은 같이 나가는 여남은 명 가운데 여교원이 섞여 있지 않아서 매우 적실한 듯이 비치면서도 남성우월주의적 가정이 위태롭게 내포된 논법인데, 일종의 인수인계의 분위기를 확실하게도 효과적으로 연출했으니, 조직에서 쫓겨나는 노병들에게 이제 새로운 명실공한 소속장은 각 가정의 ‘사모님’들이 분명했다.

어찌 보면 우리 집사람은 통상적 은퇴사 속에서 추켜세워지는 전업주부적 ‘사모님’의 범주와는 거리가 있다. 평생 서생의 길을 같이 걸어온 집사람과는 대학 신입생 때 숙명처럼 만나서 군대 마치고 졸업하기 직전 결혼했었다. 당시 나의 이성관에 큰 영향을 미쳤던 것은 고교생 때 읽은 『임어당수필집』에 수록된 「독서하는 예술」이라는 글이었다. 그 속에서 저자 린유탕이 송대 여류시인 이청조와 그 남편 조명성 부부의 독서법을 가장 이상적인 모델로 추켜세웠던 것이 무척 인상적으로 비쳐졌기 때문이다. 

그들은 넉넉지 않은 살림 가운데에서도 의복을 전당 잡힌 돈으로 금석문 자료와 과일을 구해와 판독 내기를 해 이기는 쪽이 차를 먼저 마시곤 했다는 것이다. 장차 배우자를 얻는다면 반드시 이청조 같은 여자를 만나야겠다는 사춘기에 품은 막연한 희원은 그 이후 ─내가 못나서 그렇지─ 적어도 내 뇌리에서는 언제나 지남침 같은 역할을 해왔었다.

이런 의미에서 차모는 은퇴 이전에도, 따라서 은퇴와 무관하게 평생토록 그의 이 청조 ‘사모님’에게 귀의해 있었던 셈이다. 새삼 이 자리를 빌려 마누라와의 가연에 크게 감사한다. 전·현직 교수 벗님네들이시여, 이 짧은 글이 검증 안 된 자부나 사사로운 내용으로 점철되고 만 점에 대해서는 그저 갓 은퇴한 자의 헝클어진 머리통 탓이려니 하고 하해 같은 아량으로 용서하소서.

차종천 성균관대 명예교수·사회학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