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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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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석희 경희대 연구교수·국제지역연구원
  • 승인 2015.09.08 10: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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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산칼럼

학교 근처로 이사를 하게 됐다. 출퇴근길이 무려 4시간에 달하는 생활이 벌써 7년째, 긴 시간 대장정의 출퇴근을 불사한 것은, 나 하나만 좀 힘들면 가족들이 편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시간을 아낀다고 버스 안에서 읽을 자료를 두 짐씩 싸들고 다니다 보니 ‘난민’도 아니고 무슨 짐을 그렇게 싸들고 다니느냐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 농담 덕택에 한동안 나는 출퇴근 버스 안에서 무릎 위에 놓인 큰 가방을 보며 ‘난민’이라는 단어를 자주 곱씹게 됐다. 생각해 보면 20세기는 난민의 시대이기도 했다. 강대국들의 식민지 지배, 두 번의 세계대전, 사회주의 국가의 탄생과 쇠퇴….

그 속에서 농업정책의 실패와 한파로 인해 발생한 러시아 난민(1921), 히틀러 체제하의 유태인 난민, 폴란드 난민, 시민혁명에 실패한 헝가리 난민(1956), 베트남 난민(1970년대 초반), 폴 포트 지배하에 혹사당하던 중 베트남의 공격(1975)으로 발생한 캄보디아 난민, 유고 내전(1991)의 난민 등, 한 세기를 넘긴 오늘 이 시간까지, 수많은 자연재해와 전쟁으로 인해 헤아리기 힘든 난민들이 생겨났다. 

아르메니아 난민으로부터 유고난민에 이르기까지 20세기 난민의 역사를 요약한 NHK의 ‘영상의 세기映像の世紀’ 제10집에는 총화 속에 울부짖는 인류의 고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적군의 시신 위에 올라서서 호령하는 군인의 모습, 구조선의 마지막 승객이 타도록 돕던 구조원이 권총을 들고 있거나 살려고 매달리는 사람을 떨어뜨리는 장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반목과 복수를 보노라면 인간이 어디까지 잔인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인류사적인 관점에서 그것은 그렇게 특별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선사시대로부터 인류는 이동을 거듭했으며, 수많은 전쟁을 치렀다. 자연재해 역시 어제오늘에 발생한 일이 아니다. 20세기 이후 종합적이고도 빠른 속도로 인류사가 급변한 것도 사실이며, 그러한 과정에서 ‘이동’이나 ‘이주’는 불가피하고 필연적인 현상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동’과 같은 거대한 패러다임도, 개개인의 입장에서는 안정된 정착지를 위한 길고 험한 ‘이주’ ‘이사’ 또는 ‘귀향’의 과정이었다고 볼 수 있다. 소박하게 말한다면 난민이란 내 한 몸 뉘일 집이 없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난민의 이동과 안정적인 정착민의 이사를 같은 선상에 놓고 보려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난민은 돌아갈 집이나 거처를 상실한 사람이며 그들의 이동은 자발적일 수 없는 반면, 이사는 안정적인 출발점과 도착점이 존재하는 자발적 이동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모든 난민이 정착하지 못하거나 모든 이사가 자발적인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이들의 관계는 열려 있다. 평화의 시대라 할 대한민국 안에도 집과 거처가 없는 ‘난민’과 ‘노숙자’가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 보더라도 말이다. 1939년, 히틀러가 폴란드인들을 추방한 뒤에 서둘러 행한 일은 독일인들에게 폴란드인들이 남겨두고 간 집을 배급하는 일이었다. 집에서 쫓겨난 폴란드인들은 여권도 여비도 없이 두 발로 알프스를 넘었으며 사막을 건너, 4천km가 넘는 길을 걸어야 했다. 

나도 우연히 알게 된 일이지만, 지난 6월 20일은 ‘세계 난민의 날’이었다. 한국에서는 난민지위협약 60주년을 맞아 제1회 난민영화제를 개최한 바 있다. 난민영화제를 소개한 인터넷 기사에는 ‘난민을 돕느니 차라리 동네의 폐휴지 줍는 노인을 돕겠다’는 댓글이 달려 있었다. 물론 뼈아픈 한마디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난민을 생각하는 일이 다른 문제를 등한시하는 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닐 터이다. 

▲ 김석희 경희대 연구교수

겨우 60년 전, 우리도 ‘난민’이었다. 한국의 20세기 역시, 식민지배와 전란으로 얼룩져 수많은 개인들이 거처와 집을 잃고 대거 이동하거나 이주한 시기였다.

흔히 우리의 일상을 전쟁에 비유하곤 한다. 총성 없는 전쟁이라든가, 생활의 전선, 진검승부 같은 표현들은 삶 자체에 대한 치열함과 숙연함을 느끼게 하는 말이지만, 그것이 표면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총성 없는’ 평화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척박한 삶일지라도 큰 자연재해 없는 나날이 얼마나 감사한가를 생각하게 된다. 그러다가 또, 이러한 감사는 얼마나 가볍고 안이한 것인가를 생각한다. 

이사에 즈음해 생각컨대, 우리의 삶 자체가 그러하듯이 집이나 거처는 사실 잠시 빌려 쓰고 가는 곳일 뿐 부동의 장소일 수 없다. 우리가 너무나 당연히 여기는 ‘집=거처’라는 부동적 이미지도 사실상 60여 년의 평화가 우리에게 준 안정감일 뿐이다. 겨우, 출퇴근과 이사를 난민으로 연결 짓는 나의 엄살을 포함해서 말이다. 

김석희 경희대 연구교수·국제지역연구원
일본 오사카대에서 「김사량의 문학과 정치」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표상과 권력의 문제에 따른 내러티브를 연구하고 있다. 『말과 황하와 장성의 중국사』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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