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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을 남기고 서둘러 떠나간
그리움을 남기고 서둘러 떠나간
  • 송희복 진주교대·국문학
  • 승인 2015.09.07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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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송희복 진주교대·국문학

광활한 이식쿨 호수는 세계의 대표적인 산악호수다. 나는 쾌미한 풍광과 쾌적한 환경의 이 호수 가장자리에서 카뮈에 관한 문고판 책을 읽고 있었다. 존재와 無랄지, 실존과 본질이랄지 하는 실존주의의 기본 개념을 사유하면서 말이다.

바로 이 순간이었다.
국내에 있는 아내에게 다급한 목소리의 전화가 왔다. 고현철 부산대 교수(국어국문학)가 학교에서 투신자살을 했대요. 사건이 나서 두 시간이 지난 후에, 매우 충격적인 소식이 멀리 있는 내게 전해졌다. 난 한 동안 멍한 상태에 빠졌다.

이 믿기지 않는 비보를 접하면서 내가 아는 고 교수를 상기해 봤다. 나는 이 뜬세상에서 열여덟 해 남짓하게 술벗의 인연을 맺었다. 나와 그는 부산 서면 뒷골목의 서민적인 주점에서 주로 만났다. 서로는 술을 마셔도 한 번도 술에 취하지 아니했다. 그는 평소의 성정으로 보아서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를 주장하면서 극단적인 행동을 시도할 사람이 전혀 아니었다. 그는 온건하고도 절제가 있고 정치 얘기 따위는 전혀 하지 않았다. 또 내가 아는 그는 인품이 있는 사람이었다. 예바르고 양식 있고 경위가 반듯했다. 남탓을 하거나 남 말을 옮기기를 전혀 일삼지 않았다.

고 교수의 죽음은 현저히 부조리의 감수성에 기초해 있다. 실존적인 고독 및 결단이 없이는 그의 죽음을 결코 생각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의 죽음을 통해 합리성을 열망하는 한 인간과, 비합리성으로 가득한 세계 사이의 틈새를 엿볼 수가 있다. 그를 죽음으로 내몬 것은 세계의 비합리성이다. 총장직선제를 비민주적으로 억압한 교육부의 관료적 발상에 원인이 있었다. 국립대에 대해 돈줄과 권력의 칼자루를 쥔 교육부의 관료적인 독선과 횡포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국민 대다수는 물론 이 점이 피부에 와 닿지 않을 것이다. 국민의 극소수인 국립대 교수들만이 그 온도차를 실감할 수 있을 따름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국립대 교수이다. 내가 재직하는 대학에서도 어쩔 수 없이 총장직선제 폐지를 수용해 총장후보자를 뽑고 두 차례에 걸쳐 교육부에 승인을 요청했지만, 교육부는 절차상의 하자를 주장하면서 두 차례 모두 재선거를 강요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우리 대학은 네 사람의 법률 전문가들에게 적법성 여부를 자문한 바 있는데, 네 사람 모두가 절차의 적법성을 인정했다. 관료적 독선과 횡포가 아니고선, 이 같은 불통의 상태와 이 같은 '오불관언'의 상황이 있을 수나 있겠는가? 관료들이 이 독선과 횡포를 한줌의 권력이라고 생각한다면, 이 시대에 개나 소나 할 것 없이 웃을 일이 아닌가? 요컨대 향후 역사는 국립대 총장직선제 폐지를 기획하고 실행을 주도한 이들을 가려내 민주주의를 역행한 책임을 준엄하게 물어야 할 것이다.

나는 중앙아시아를 여행하면서 내내 무거운 마음으로 고 교수와의 기억들, 추억들을 마치 퍼즐 맞추듯이 맞춰가고 있었다. 최근의 일들은 이랬다. 지난 연말에 연산 로터리 주변에서 지인들과 함께 자리를 옮겨가며 술을 마셨다. 올해 2월에는 부산대 근처의 한정식 집에서 두 사람이 점심을 함께 했다. 부산대 출판부에서 간행하는 영화 총서의 발간 문제를 의논하기 위해서였다. 이때의 만남이 작별의 오찬이 될 줄이야! 5월에 내 신간 시집을 그의 연구실에 보낼 때, 내가 전화를 했다. 그가 내게 남긴 이 地上의 마지막 말…….  '(만나서 축하해야 하는데) 요즘 몸이 좀 좋지 않습니다. 좋아지면 바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나 역시 아무래도 딴 세상에 있을 고 교수에게 마지막 말을 남겨야 할 것 같다.

고형!
많은 사람들에게 그리움을 남기고 서둘러 떠났구려. 내가 외국에 있어서 문상을 하지도 영결식에 가지도 못해 정말 미안하오. 거기 죽음의 세계는 어떻습니까? 소요로 가득 찬 이 세상을 벗어나 압도적인 고요와 마음의 평정을 만끽하고 계십니까? 거기에는 뜬세상 뒷골목의 주점도, 당신의 애창곡 「광화문 연가」를 부를 노래방도 없을 것입니다. 낯선 객지의 거리를 서성이지 말고, 부디 편안한 처소에서 영원토록 명목하소서. 당신의 영전에 옷깃을 여미면서 고개를 숙입니다.

 

 

송희복 진주교대·국문학

동국대 국어국문학과에서 석사와 박사를 했다. 1983년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됐고 199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서 평론가로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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