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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의 역사’ 바로잡는 묵직한 교재 … 시대 구분은 글쎄?
‘편견의 역사’ 바로잡는 묵직한 교재 … 시대 구분은 글쎄?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5.09.02 11: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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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 연구 토대 닦은 『한국 대중음악사 개론』의 무게

“2000년대 들어 한국 대중음악과 동의어로 인식된 K-pop은 1910년대에 태동한 한국 대중음악이 그 뿌리이며 1910년대로부터 한 세기가 채 지나지 않은 우리의 음악이 전 세계적으로 이렇듯 화려하게 조명받고 있다는 사실은 뿌듯함을 넘어 감동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이렇게 겉으로 드러난 화려함에 비해 우리의 실제 모습은 부끄럽기 짝이 없다.”

장유정 단국대 교양학부 교수와 서병기 한국음악산업학회 이사가 함께 쓴 『한국 대중음악사 개론』(성안당, 480쪽, 25,000원)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책이다. 김광진 (사)한국대중음악인연합회 회장이 발간사를 통해 지적한 ‘부끄러운 모습’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 한국 대중음악사 연구는 아직도 시작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 엄연한 우리의 문화 역사인 대중가요사를 정립하는 데 앞장서야 할 대학 실용음악학과 교재에서조차 대중가요사가 외면받고 있는 현실, 나아가 대중문화를 담당하는 정부의 주관 부처와 관련 기관, 단체들조차 대중가요사 연구와 편찬 사업 등이 소관 업무가 아니라는 이유로 외면하고 있는 것. 이 점에서 『한국 대중음악사 개론』은 연구의 시초를 새롭게 닦는 일종의 정비 작업의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저자들은 어떨까.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를 개괄한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아주 오래전부터 해왔다. 대중음악을 연구하면서 그 역사가 ‘주관의 역사’ 내지는 ‘편견의 역사’에 가까운 채 유포되고 전파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심지어 사실에 대한 기록에도 많은 오류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다행히 예전과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정확하게 말하면 ‘좋아졌다’. 적어도 우리가 열심히 뒤지면 무엇이 사실인지에 대해서는 알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저자들의 말을 뒤집어보면 대중음악 연구가 ‘편견의 역사’로 왜곡돼 유포돼 왔다는 것이고, 이 책은 이러한 ‘편견의 역사’를 바로잡는, 사실 재확인의 의미를 지닌다는 걸 눈치챌 수 있다.

共著 작업이 으레 그렇듯, 두 저자는 역할을 나눠 전반부(1~7장)는 장유정이, 후반부(8~15장)는 서병기가 맡았다. 이렇게 해서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를 개괄할 수 있는 토대가 그려졌다. 문학박사로 음악비평에 뛰어든 독특한 연구자인 장유정이 한국 대중음악의 탄생에서 전후 음악 질서까지를 정리했다면, 학부에서 역사학을 공부하고 대중문화 기자로 발로 뛴 서병기는 취재과정에서 실제로 만나 인터뷰한 가요계 인사들의 육성을 담아내면서 1970년대 이후 한국 대중음악사의 흐름을 짚었다. 저자들은 여기서 좀 더 나아가 ‘한국 대중음악 주요 사건 연표(1894~1970)’를 통해 한국 대중음악과 관련된 주요 사건들의 연대기를 일목요연하게 잡아냈다. 여기에 ‘한국 가요 40년 연도별 차트’(1964~2003)를 덧붙여 개별 가요의 등락까지 엿볼 수 있게 했다.

저자들의 작업이 ‘한국 대중음악사’를 겨냥했으므로 ‘한국 대중음악’의 정의가 앞머리에 놓여야 한다. 장유정은 “한 마디로 한국 대중음악이란 ‘근대 이후 한국 사람들이 생산하고 소비하며, 대중매체를 통해 향유하는 음악’을 지칭한다고 할 수 있다”라고 조심스럽게 정의하면서, “요컨대 ‘한국’ 대중음악이란, ‘주로’ 한국을 근거지로 해 한국인 대중을 대상으로 만든 노래를 가리킨다. 애초부터 세계 시장을 염두에 두고 기획된 노래라 하더라도 그 노래가 기본적으로 한국 대중을 대상으로 해 생산된 것이라면 ‘한국’ 대중음악이라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해서 저자들이 공유한 한국 대중음악사는 태동기(1907~1929) → 형성기(1930~1940) → 암흑기(1941~1944) → 재건기(1945~1957) → 부흥기(1958~1974) → 수난기(1975~1979) → 분화기(1980~1991) → 전환기(1992~1996) → 약진기(1997~현재)로 골격을 형성한다. 물론, 눈밝은 독자들이라면 이러한 시대구분에 이견을 제기할 수 있다. ‘태동기-형성기-암흑기-재건기-부흥기-수난기-분화기-전환기-약진기’가 실은 노드롭 프라이가 『비평의 해부』에서 그토록 내세웠던 ‘원형비평’ 즉, 자연의 순환 질서에 기댄 기본적인 도식이라는 것은 분명 약점일 수 있다. 『한국 대중음악사 개론』이 말 그대로 ‘개론’이므로 이러한 ‘시기 구분’의 엄밀성에서 자유롭다고 할 수는 없다. 이러한 구분은 대중음악 자체의 생성과 유통, 의미의 상호작용을 깊이 천착할 때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전작 『오빠는 풍각쟁이야-대중가요로 본 근대의 풍경』(민음in, 2006) 등을 통해 한국 대중가요를 깊이 있게 천착해온 장유정 교수의 대중음악사 시기 구분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태동기(1907~1929)’ 설정이다. 한국 근대의 기원 문제처럼, 한국 대중음악의 태동 역시 기원의 문제이며, 가장 첨예한 이론과 논쟁이 대립할 수 있는 곳인 동시에, ‘사실’에 의해 서술의 지평이 언제든 뒤바뀔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장유정 교수가 1907년을 태동기의 맨 앞에 놓은 것은 이 시기에 첫 상업 음반이 나왔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진출했던 음반회사는 미국 콜럼비아사로, 이곳에서 1907년에 첫 상업 음반이 나왔다. 『한국 유성기음반 총목록』(한국정신문화연구원 편, 민속원, 1998)을 인용한 장유정은 이 음반을 두고 이렇게 설명한다. 1907년에 악공 한인오와 관기 최홍매 등이 취입해서 미국 콜럼비아 회사가 평원반형 음반으로 제작한 것으로, 여기에 녹음된 노래는 「유산가」 「적벽가」 「흰머리」 「산염불」 「양산도」 「임가」 「시절시조」 「황계사」 등으로, 일본 오사카에서 녹음한 원반을 미국 콜럼비아 본사에서 제작한 후 다시 한국에 들여와서 판매한 상품이다. 이후 미국 빅타 음반 회사가 음반을 내놨으며, 3년 뒤인 1911년 일본 축음기 회사에서 음반 발매를 시작했다. 이러한 음반 회사들의 음반 발매는 이미 당대 ‘유성기’가 일부이긴 하지만 보급되고 있었다는 사정과 연결된다.
<황성신문> 1899년 3월 11일자에는 유성기 시청회에 대한 광고가 실려 있는데, 장유정 교수는 이를 통해 “유성기에 대한 기사가 신문에 본격 등장하기 시작하는 때도 1899년이다”라고 지적한다. <황성신문>의 광고를 보자. “서양 격치가가 발명한 유성기를 사서 들여와 西署 奉常司 앞, 113통 9호에 설치했는데, 그 안에서 노래(歌), 피리(笛), 생황(笙), 거문고(瑟) 소리가 連機하는 대로 나와서 완전히 연극장과 같으니 많이들 이곳으로 오셔서 玩賞하시오.”(현대어역과 띄어쓰기는 저자) 저자는 이 유성기 시청회가 열린 곳이 지금의 종로구 새문안 교회 근처이며, 전통음악 연주로 추정한다. 이렇듯 유성기는 호텔, 역, 상점, 약국, 카페 등 근대문물들의 확산과 함께 깊이 생활 속으로 파고들기 시작한다.

“태동기에는 서양음악, 일본음악, 전통가요가 공존하면서 대중가요가 형성될 수 있는 초석이 마련됐다고 할 수 있다. 본격적인 의미의 대중가요라 하기는 어려울지라도 대중가요의 여러 조짐이 나타나는 것이 이때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아직까지 대중가요 장르에 대한 인식이 명확하지 않았으나, 이후 시기가 대중가요 장르가 출현할 수 있는 바탕이 되는 노래들이 대거 등장했던 시기이다.”

흥미로운 것은 책의 수익금 일부가 원로 가요인들에게 돌아간다는 것. 말로만 예우하는 게 아니라 책 자체의 수익금 일부를 가요사의 역사를 만든 산증인들에게 돌려준다는 건 신선한 발상이다. 또 이 책 발간을 앞두고 경주보문단지에 ‘한국대중음악박물관’을 건립한다는 소식도 있었으니, 이래저래 이 책은 한국 대중음악계에 반가운 선물인 셈이다.

구성과 관련해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들을거리’ ‘생각거리’를 각 장마다 덧붙였다는 점이다. 대중음악 역사를 공부하는 ‘교재’를 겨냥한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한국 대중음악사 개론』은 제대로 된 한국 대중음악 교재의 신호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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