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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교육부가 해야 할 일
지금, 교육부가 해야 할 일
  • 박재묵 논설위원/충남대·사회학
  • 승인 2015.08.24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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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박재묵 논설위원/충남대·사회학
▲ 박재묵 논설위원

故고현철 부산대 교수의 투신 사망은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다. 교수가 개인적 고뇌나 비리로 인한 수치심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경우는 더러 있었지만, 대학제도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관철시키기 위해 이러한 죽음을 선택한 사례는 필자가 아는 한 없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해서 교수사회에서부터 총장선출제도 뿐만 아니라 이와 연관된 모든 대학 문제에 대해 진단해보고 그 대안을 모색하기 위한 노력이 시작돼야 한다. 또한 그동안 총장선출제도의 변화를 추진한 모든 행위자들은 자신의 역할과 그 의미에 대해 깊이 성찰하는 기회를 가져야 할 것이다.

고 교수 사건은 ‘관료중심적 대학지배체제’의 강화에 대한 처절한 저항이었다고 본다. 달리 말하자면, 관료중심적 대학지배체제 하에서 지속적으로 후퇴하는 대학의 자율성과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올곧은 교수의 몸부림이었다. ‘처절한 저항’이었다고 말하는 까닭은 직선제를 지키겠다고 약속하고 총장 선거에 입후보해서 직선 절차를 통해 당선된 대학 총장들이 당초의 약속을 저버리는 현실을 목도하고 총장들을 이렇게 만드는 거대한 힘에 맞서기 위해 그러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죽음이라는 희생이 바로 고 교수가 ‘감당’한 선택이다.

관료중심적 대학지배체제는 보이지는 않지만 거대한 힘이다. 이 체제는 국립대학에 흔히 대학거버넌스라고 부르는 최고의사결정기구가 제대로 구축되지 않은 제도적 미비상태에서 교육당국의 관료들이 대학의 주요 행정과 정책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제도와 관행을 의미한다. 이러한 대학지배체제를 관철시키는 데 활용되는 주요 수단은 재정 배분 권한이다. 교육부는 법과 규정을 앞세워 대학에 변화를 요구하기도 하지만, 사실상 법보다 더 실효성을 갖는 통제는 재정지원 여부를 결정하는 권한으로부터 나온다. 예를 들어 법상으로는 엄연히 대학 구성원이 총장 선출의 방법을 결정할 수 있게 돼 있지만, 교육부는 재정지원 중단이라는 강력한 무기로 모든 국립대학에 직선제 요소를 배제한 정체불명의 획일적인 총장선출제도를 선택하게 만들었다. 국립대학들은 마치 무술 고수에게 팔을 비틀린 초심자들처럼 교육부의 요구를 순순히 받아들여 왔다.

흔히 간선제라고도 부르는 총장공모제도의 도입은 관료중심적 대학지배체제 하에서 추진된 대표적인 제도변화다. 이 새로운 제도는 직선제의 폐해를 바로 잡는다는 명분으로 졸속하게 추진됐기 때문에 직선제 요소를 배제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바람에, 유능한 총장을 선출하기 위한 절차를 마련하는 데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 결과 총장 후보자를 선출하는 사람들이 투표 당일에 결정되도록 함으로써, 선거인단에게 후보자를 검증하는 데 필요한 절대적인 시간을 허용하지 않는 제도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로또식’선출제도라고 비판을 받기도 한다. 총장직이 누가 수행해도 차이가 없는 하찮은 자리라면 몰라도, 어떻게 검증절차를 고려하지 않는 제도를 국립대 총장 선출에 적용할 수 있겠는가. 이런 점에서 교육부가 강요하는 방식은 애초부터 지속가능하지 않은 제도였다.

지금 교육부가 국립대 발전을 위해 해야 할 일은 대학들이 스스로 발전의 방향을 정하고 이를 추진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일이다. 지금처럼 대학이 타율적으로 움직이도록 만드는 것은 대학의 자생력과 자기정화능력을 빼앗아가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교육부는 대학의 자율성을 확대하고 그 대신에 운영의 책임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크게 전환해야 한다. 교육부가 스스로 정책 방향을 바꾸지 않는다면, 결국 정치권이 나서서라도 이 질곡을 바로잡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박재묵 논설위원/충남대·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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