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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0년‘, 지렛대’어디에 걸칠까
광복 70년‘, 지렛대’어디에 걸칠까
  • 방민호 편집기획위원/ 서울대·국어국문학과
  • 승인 2015.08.17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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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방민호 편집기획위원/ 서울대·국어국문학과
▲ 방만호 편집기획위원

해방 70년을 맞이하는 오늘날 지난 10년 사이에 벌어진 가장 큰 일은 아마도 중국의 급부상일 것이다. 문화혁명의 검은 그림자를 딛고 도약하기 시작한 중국은 이제 한국경제를 쥐락펴락 할만한 지위에 도달했다. 정치·군사적으로는 이미 해방 직후, 한국전쟁 때부터 그러했으니, 지금 중국의 대 한반도 영향력은 구한말 이래 최고조에 이르러 있다. 중국의 영향력 증대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신라에 의한 삼국통일이라는 것이 결코 간단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었음을 말해준다. 무열왕 김춘추는 당나라 세력을 끌어들였고 마침내 소정방과 김유신 연합군이 백제를 멸하기에 이른다. 그가 이루지 못한 과업은 아들 문무왕 김법민에 의해 완수돼야 했는데, 실로 이 과정이 수월치 않았다.

당나라는 백제 땅에 웅진도독부를 세우고 고구려가 무너진 후에는 평양에 안동도호부를 세웠다. 제 발로 당나라 중심의 위계질서 속으로 들어간 신라에게는 제후국의 예를 강요하며 한반도 전체에 대한 지배권을 수립하고자 하는 야욕을 부렸다.

단재 신채호가 신라에 의한 삼국통일을 부정적으로 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고조선 이래 중국에 맞서 ‘민족적’정체성을 유지해 온 조선인들은 삼국통일기의 신라에 이르러 중국화하기 시작했다. 성명도, 관제도, 사관도 모두 중국화하면서 강토조차 좁아들어 한반도는 대동강, 압록강 이남에나 자리를 잡게 됐다는 것이다.

불변적 본질, 즉 항성으로서의 조선 민족, 곧 한민족이 성립 가능한가 하는 문제는 별도로 하고, 신채호의 상고사 이해는 시사할 만한 점이 많다. 그에 따르면 김부식조차 신라 중심, 중국 중심의 사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때문에 신라를 백제, 고구려보다도 역사가 오랜 왕조로 만들고, 신라 중심의 삼국통일을 정당화 하는 데 머물렀다.

하지만 『삼국사기』를 읽어보면 삼국통일의 전후 사정이 그리 간단치만은 않았다. 「신문왕 본기」를 보면 ‘일통삼한’이라는 어구가 보이는데, 이는 통일기에 적시된 것이든 김부식이 사후에 이를 합리화 한 것이든, 역사 속의 인물들이 이 삼국통일을 의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특히 문무왕 김법민은 아버지의 뜻을 이어 고구려를 무너뜨린 후에는 다시 백제 및 고구려의 후예들과 손을 잡은 당나라 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무진 애를 쓰지 않으면 안됐는데, 이는 그 자신과 신라의 운명을 건 싸움이 아닐 수 없었다.

이 싸움에서 신라가 승자가 된 것은 신라인들과 문무왕의 의지가 강해서만은 아니었다. 첫째, 당시의 교통 능력으로 넘어서기에는 신라 또는 한반도가 중국인들에게 너무 멀었고, 둘째 마침 당나라가 전성기를 지나 쇠퇴하기 시작한 때문이다. 이러한 당대의 조건들로 말미암아 신라는 마침내 물리쳤고 살아남았다. 그리고 이것은 삼국사에 바탕한 한국인사의 새로운 시발점이 됐다.

해방 후 70년이다. 오늘날 우리는 남북으로 나뉘어있고 새로운 통일을 민족사의 절대절명의 과제로 안고 있다. 그러면 삼국통일이 있던 먼 과거에 비추어 오늘날은 무엇이 같고 다른 것일까.

무엇보다 중국이 너무 가깝고 너무 강하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중국의 전제주의의 도저한 역사를 생각할 때 오늘날 중국은 한국의 앞날에 무시 못할 위험 요소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 덕분에 먹고 살게 된다는 것 자체가 커다란 함정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한반도에는 미국이라는 새로운 힘이 작용하고 있다. 이 나라는 전통적으로 한국의 생존에 큰 이바지를 했고 특히 중국이 번성하는 지금 더욱 필요한 존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지리적으로 적당히 멀고 그러면서도 큰 힘을 가지고 있는 존재다.

우리는 과거에서 배울 수 있어야 한다. 어떻게 당나라가 있었음에도 통일이, 불완전한 형태로나마 가능했던 것인지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결국은 우리들 자신의 역량 문제일 것이다. 지렛대를 어디에, 어떻게 걸칠지 생각해야 할 때다.

방민호 편집기획위원/ 서울대·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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