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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필요한 국립대 지배체제
변화 필요한 국립대 지배체제
  • 박재묵 논설위원/충남대·사회학
  • 승인 2015.07.20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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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박재묵 논설위원/충남대·사회학
▲ 박재묵 논설위원

요즘 대학들이 겪고 있는 혼란의 상당 부분은 대학지배체제(university governance)의 비정상적인 구성과 운영 때문에 발생한다. 사립대학의 이사회로 대표될 수 있는 대학지배체제는 원래 이해당사자 간의 갈등을 조정해 대학을 안정적으로 운영해가기 위한 제도적 장치이지만, 거꾸로 이들 기구 때문에 대학이 갈등에 휩싸이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문제를 해결하라고 둔 장치가 문제의 장본인이 된 셈이다.

사립대학에서는 족벌중심 대학지배체제가 문제다. 대학 설립자나 그 후손이 이사회와 사무기구를 장악해 권력을 휘두르면서 대학을 파행적으로 끌고 가거나 심지어 비리를 저지르기까지 한다. 때로는 대학 지배권을 둘러싸고 가족 구성원 간에 발생한 갈등이 장기간 지속돼 손가락질을 받기도 한다. 물론 설립자나 그 후손이 운영에 깊게 관여한다고 해서 그 대학들이 모두 잘못 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설립자 후손이 대학을 운영하면서 짧은 기간에 대학의 발전을 가져온 사례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족벌중심 대학지배체제는 그 성격상 구조적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족벌지배체제는 대학 경영에 참여하는 인적 자원을 협소화시킴으로써 많은 사람들의 전문성과 창의성을 대학 운영에 활용하는 데는 구조적 제약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대학 운영에서 족벌지배체제가 장기적으로 유지될 경우에는 득보다 실이 많을 수밖에 없다.

국립대학의 경우에는 대학지배체제가 제대로 확립되지 않은 것이 오히려 문제다. 국립대학 중에서 이른바 법인화된 대학의 경우에는 사립대학에서처럼 이사회가 운영되고 있어서 나름대로 독립적인 대학지배체제를 갖고 있다. 하지만 이들 대학이 얼마나 자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사회조차 없는 국립대학, 즉 법인화되지 않은 대학의 경우에는 사실상 대학지배체제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학에 따라서는 대학평의원회를 두고 있기도 하지만, 그 운영이 활성화된 경우는 아주 드물고, 그것조차도 갖추지 않은 국립대학이 훨씬 더 많다.

국립대학의 경우에는 이사회가 있는 대학이든, 대학평의원회가 있는 대학이든, 이도 저도 없는 대학이든 관료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원인은 국립대학은 결국 재정을 정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데 있다. 올해‘국립대학의 회계 설치 및 재정 운영에 관한 법률’이 제정돼 각 대학에 재정위원회가 처음 설치돼 예산과 결산을 다루게 됐지만, 교육부는 재정 및 회계의 운영에 관한 세부 기준을 교육부령으로 정해 여전히 통제를 가하고 있다.

교육부가 재정을 매개로 해서 대학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수단은 이밖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재정지원사업이다. 국립대학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정부로부터 빠듯한 예산을 내려받고 있기 때문에 재정지원사업에 매달릴 수밖에 없고, 이러한 대학들의 사정을 십분 활용해 교육부는 대학에 통제력을 행사하고 있다. 아마도 지금 국립대학들을 변화시키는 가장 큰 동력 중의 하나가 평가에 의해 지급하는 재정지원사업이 아닐까 생각한다. 대학들이 만들어 내는 발전계획은 재정지원사업이 요구하는 바에 따라 수시로 바뀌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국립대학들은 가상적인‘관료중심 지배체제’하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국립대학들이 이런 질곡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독자적인 대학지배체제를 확립해야만 한다. 현실적인 방안은 현재의 재정위원회의 기능을 흡수한 대학평의원회 제도를 재정립하는 것이다. 물론 그보다 더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대학의 자치와 자율성을 회복하는 일이다.

박재묵 논설위원/충남대·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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