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9 07:45 (월)
기다림과 인내가 '열정'을 만났을 때
기다림과 인내가 '열정'을 만났을 때
  • 정성한 건국대 석·박사 통합과정
  • 승인 2015.04.06 10: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학문후속세대의 시선] 정성한 건국대 석·박사 통합과정

요즘‘열정 페이’가 사회 안팎으로 이슈가 되고 있다. 한 개그 프로그램의 소재로, 혹은 시사 다큐멘터리에서 집중 소개될 정도다. 그런데 생명공학을 아직 한창 배우고 있는, 학위과정에 있는 나에게는 이러한 사회 현상이 조금은 별개의 이야기로 다가왔으며, 아직은 내가 접하지 않은 다른 세상의 이야기로 느껴졌다.

그런데 일요일에 세포의 배양액을 교체해주러 실험실에 나왔을 때 불이 켜져 있는 건물, 그 안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연구원들 혹은 나와 같은 학위과정의 학생들을 보면서 나에게도, 우리에게도‘열정 페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됐다.

그러나 우리가 갖고 있는‘열정’에 대한‘페이’는 앞서 언급한‘열정 페이’와는 사뭇 다른 별개의 것이었다. 주말에도 실험실에서 과학을 탐구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은 모두들‘열정’을 갖고 있다. 열정이 없다면 과학이라는 학문은 탐구하기 너무 지치는 학문이다. 수많은 실패 속에서 항상 희망을 가져야 하며, 그 작은 확률에 내가 가진 모든 역량을 쏟아 부어야 하기 때문이다. 혹은, 그 내가 가진 역량을 모두 쏟아 붇는다고 해도 안 될 가능성을 갖고 있는 것이 바로 과학이다. 이런 과학에 우리는 우리의 열정을 무한대로 쏟아 붓고 있다.

나도 그 열정에 대한 페이를 받고 싶다. 아니 우리 모두 그 열정에 대한 페이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허나 여기서 받아야 하는 페이가 흔히 애기하는‘물질적 페이’는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그 열정에 대한 페이는‘인내와 기다림’이다. 그 열정을 지켜봐 줄 수 있는 기다림, 희망을 줄 수 있는 기다림, 묵묵히 바라봐주는 기다림, 그리고 지난 실패를 딛고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작은 인내의 몸부림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아니 그렇게 하기 쉽지 않다. 우리는 시간과 돈을 투자했으므로, 그에 상응하는 가시적인 결과를 얻어야만 한다. 이것이 틀리다고는 말할 수는 없다. 독촉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얻어지는 좋은 결과가 우리 주변에 많이 존재하기 때문에, 무작정 기다려 달라고 말하는 것은 이상 속에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묵묵히 응원해 주는 사람의 마음이 너무 고맙게 느껴진다. 士爲知己者死라고 했던가. 그 어려움을 딛고 묵묵히 기다려주는 사람, 그 사람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열정을 더욱더 쏟고 싶다.

세포 이름 중에‘HEK293’이라는 세포가 있다. 세포를 키우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들어봤을 만큼 유명한 세포다. 나도 처음에 이 세포를 키우기 시작했을 때, 문득 왜 이름 뒤에‘293’이라는 숫자가 붙을까 궁금했다. 그 이유는 293번째 실험에서 이 세포를 분리 배양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과연 292번의 실패를 경험하면서 실험을 지속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세포는 292번의 실패를 옆에서 응원해줬던 기다림과 실패의 과정을 인내했을 연구자의 열정이 만들어낸 결과물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처럼 과학을 탐구함에 있어 우리는 수많은 열정을 쏟아 붓는다. 누군가에게는 가시적인 결과가 보이지 않은 하찮은 일일지도 모르지만, 그 작은 일을 위해서 무한한 열정을 쏟아 붓는다. 그‘열정’에 대해‘페이’를 받을 수 있다면, 그것은 옆에서 응원해주는‘기다림’과 스스로 지치지 않는‘인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기다림’과‘인내’가‘열정’을 만났을 때, 세상이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과학의 진보가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정성한 건국대 석·박사 통합과정

현재 건국대 바이오장기연구센터에서 이종장기이식 시 발생하는 면역 거부반응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