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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평의 잣대 '세금'
공평의 잣대 '세금'
  • 김정인 춘천교대·사회과교육과
  • 승인 2015.02.09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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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산칼럼] 김정인 춘천교대·사회과교육과

더 이상 땜질식 처방으로 민심을 달래고 눈치 보며 증세 카드를 내밀 게 아니라 공평이라는 조세 정의의 본질이 충실히 녹아든 정책으로 국민을 설득하기 바란다.

지금 19세기 농민항쟁에 관한 글을 쓰는 중이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묘한 기시감을 느낀다. 쇠스랑을 들고 일어선 농민의 심정에 절로 감정이입이 된다. 그들의 요구는 무엇이었을까. 자꾸 들여다보며 곱씹게 된다. 연일 뜨거운 쟁점을 쏟아내는 세금 논란, 그리고 길 잃는 복지 정책 덕이다.

새해 벽두부터 담배세 인상에 이어 연말정산 파동을 겪었다. 이게 끝이 아니란다. 주민세, 자동차세, 주세 인상이 이어질 거라는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다. 모두 보통 사람의 주머니에서 세금을 더 거두겠다는 정책이다. 대학생들도 국가장학금 선정 기준변경이 국민의 살림살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역차별이 일어났다고 아우성이다. 때마침 고소득자에게 더 많이 보험료를 걷는 상식적 체계로의 전환을 꿈꾸던 건강보험료 개선안 시행 파동까지 덮쳤다.

이 모든 소동이 2015년이 시작되자마자 단 한 달간 일어났다니 참 믿기 어려운 현실이다. 국민의 공분이 얼마나 큰지는 난공불락일 것 같던 노인세대와 영남지역의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 추락이 증빙한다. 이제 부글부글 끓는 냄비 같은 국민의 분노는 법인세 인상과 같은 부자증세 요구로 이어지고 있다. 외풍도 힘을 보태고 있다. 미국에선 오바마 대통령이 부자증세의 세제 개혁을 담은 예산안을 내놓았다.

부자증세를 요구하며 가벼운 내 주머니만을 노리지 말라는 주장의 저변에는 세상이 참 공평치 않다는 현실 인식이 자리한다. 세상이 얼마나 공평하게 돌아가는지 가늠할 수 있는 준거이자 민심의 행보를 가르는 잣대가 세금이라는 사실, 19세기 농민항쟁이 여실히 증빙한다.

19세기는 농민항쟁의 시대였다. 1811년 홍경래의 난, 1862년 삼남민란, 1894년 동학란과 그 사이사이 쉴 새 없이 일어난 난리들이 100년의 세월을 농민항쟁으로 새겼다. 줄기찬 농민항쟁은 권력에 세금을 공평하고 공정하게 걷어 줄 것을 요구했다.

동학란, 그러니까 1894년 동학농민전쟁은 신분제 폐지 등 사회 개혁을 요구했으며 일본군에 맞서다 끝내 패한 농민항쟁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전봉준과 동학농민군이 몇 차례 내놓은 폐정 개혁안에는 경제개혁안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1862년에도 경상, 전라, 충청의 농민들이 삼정 문란, 즉 조세 제도의 문란에 저항해 일어났다. 구휼제도, 오늘날로 치면 복지 제도인 환곡을 부족한 국가 재정을 충당하기 위한 세금으로 둔갑시켜 농민에게 가장 큰 고통을 안겼으니, 당시 문란의 정도를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1년간의 난리를 겪고도 권력은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어물쩍 넘어가 결국 더 큰 난리를 부른 셈이었다.

권력과 농민은 서로 무엇이 어긋나 100년을 갈등했을까. 먼저, 신분제적 위계질서를 벗어나면서 평등사회를 갈구하던 농민의 자각이 있었다. 부자에게 세금을 많이 걷고 가난한 사람은 구휼하는 공평한 조세 제도가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농민이 많아졌다. 권력은 시대의 변화를 수용해 스스로 정의가 구현되는 조세 개혁을 할 생각이 없었다. 대원군의 개혁과 3일천하의 갑신정변도 권력으로부터 제대로 된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오히려 권력은 신분 대신 돈을 기반으로 권력을 독점하거나 향유하는 데 몰두했다. 중앙권력이든 지방권력이든 감히 세금을 돈벌이의 밑천으로 봤다. 심지어 세금을 종잣돈으로 고리대금업도 했다. 조세 제도는 불공평하고 불공정했고 권력은 법 위에서 가진 걸 지키고 더 가지는 데 몰두했던 세상. 결국 농민은 권력에 항거하며 스스로의 힘을 모아 공평한 세상을 만들고자 했다. 동학농민군이 권력의 심장부, 서울을 향한 이유다.

농민이 요구한 조세정의, 그 가치는 공평이었다. 균형추가 기울었고, 그걸 권력이 바로잡을 의지가 없을 때 농민은 봉기했다. 그만큼 공평한 세금은 민심을 좌우하는 무서운 저울추다. 다행스럽게도 오늘의 권력은 세금 파동을 자초하긴 했지만, 국민의 일상과 밀착된 세금 문제가 갖는 폭발력은 잘 알고 있는 듯하다. 박근혜 정부는 더 이상 땜질식 처방으로 민심을 달래고 눈치 보며 증세 카드를 내밀 것이 아니라 공평이라는 조세정의의 본질이 충실히 녹아든 정책으로 국민을 설득하기 바란다.

 

김정인 춘천교대·사회과교육과

서울대 국사학과에서「일제 강점기 천도교단의 민족운동 연구」로 박사를 했다. 참여연대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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