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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총장의 조건
대학 총장의 조건
  • 김영 논설위원/인하대·한문학
  • 승인 2015.02.09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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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김영 논설위원/인하대·한문학

▲ 김영 논설위원
교육부가 명확한 이유를 제시하지도 않으면서 자율적으로 선정한 경북대, 공주대, 한국방송통신대, 한국체대의 총장을 임명하지 않아 대학행정의 공백이 장기화되고 있다. 이는 상식적으로 납득 되지 않는 처사일 뿐 아니라 법률적으로도 위반이다.

최근 법원은 교육부가 방송통신대와 공주대의 총장 임용 제청을 거부한 것에 대해“그 근거와 사유를 명시하지 않아 국가의 적법한 행정절차를 위반했다”라고 잇따라 판결했다.

요즘 우리나라에 행정은 없고 청와대 내부 권력자들의 꼼수 정치만 있다는 세간의 여론처럼 너무나 일상적인 교육행정조차 청와대에서 일일이 개입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큰일이 아닐 수 없다. 교육부는 요동치는 민심 때문에 인사쇄신과 정책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 현재의 정치상황에서 하루 빨리 비정상적인 교육행정을 정상화해 순리대로 공석중인 국립대학의 총장을 임명해야 할 것이다.

위기 상황에 처한 한국 대학의 현실에서 총장 선출과정의 민주성과 합리성, 임용과정의 공정성과 적법성을 확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적 시행만으로 대학의 리더십이 담보되는 것은 아니다. 역시 문제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총장 임용이 문제되고 있는 차제에 이 시대가 요구하는 총장상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거듭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

요즘과 같이 투명성을 강조하는 총장 선임과정에서 대학들은 총장을 공개 초빙하고 있다. 총장초빙 광고에는 대개 응모자격으로‘학식과 덕망을 갖추고 ㅇㅇ대학교의 창학정신에 투철한 자’를 명시하는 것이 일반적인 것 같다. 그러나 실제 총장 선임과정을 보면 이러한 학식과 덕망을 겸비한 인사가 총장으로 선출되는 경우가 많지 않은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국립대학의 경우에는 정치적인 영향이나 지연, 학연 같은 불합리한 요인이 작용하고, 우리나라 대학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사립대학의 경우에는 재단의 입김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시장의 경쟁논리에 편승한 신자유주의 풍조가 대학가를 엄습하고 난 뒤에는 국·사립대학 할 것 없이 모두 기업의 CEO같은 경영형 총장을 선호하는 경향이 지배적이다. 대학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물론 돈을 잘 끌어오고 경영합리화를 실현할 줄 아는 능력 있는 총장이 필요하다.

그러나 대학은 이익 창출을 목표로 하는 기업이 아니고, 진리를 추구하고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이라는 기본적인 사실을 다시 환기한다면 이러한‘경영형 총장’대망론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 지금과 같이 권력의 영향과 재단의 입김이 압도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대학 상황에서는 정부와 재단의 일방적인 지시나 전횡을 막고 교수들이 자율적으로 창의적인 연구를 할 수 있고 개성 있는 교육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줄 수 있는 뚝심 있는 총장이 필요하다. 교수들이 주눅 들어 스스로 교권을 포기하는 상황까지 빚어지는 현실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문제가 복잡해 길을 잃고 있을 때에는 첫 출발점을 상기해보는 것이 좋다. 우리 사회가 정신적 가치보다 돈을 숭배하고, 목적합리성보다 도구합리성을 강조하고, 미래의 희망보다 현실의 이익에 안주하고 있을 때 우리 대학인들이 대학은 왜 존재하는가 하는 근본적 자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맘몬이즘(Mammonism)과 물질만능주의가 판을 치는 오늘날의 현실에서 대학은 사람답게 사는 길이 무엇인지 하는 인문적 가치를 일깨우고 우리가 꿈꾸는 사회가 승자독식의 사회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어울려 공존하고 인간과 자연이 공생하는 공동체라는 것을 솔선수범으로 분명하게 보여주는 총장이야말로 이 시대가 요구하는‘학식과 덕망을 갖춘 자’가 아닐까.

김영 논설위원/인하대·한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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