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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질곡의 학문후속세대 정책
이중질곡의 학문후속세대 정책
  • 이영수 발행인
  • 승인 2015.02.03 1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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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이영수 발행인

 

▲ 이영수 발행인
얼마 전 한 젊은 연구자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2015년도 한국연구재단의 인문사회분야 학문후속세대·개인연구 사업 요강을 보고 이것이 시간강사와 독립 연구자를 철저하게 소외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비판한 내용으로 기억합니다. ‘개인적 연구는 대학에 소속된 전임 교원만 할 수 있다는 논리’라고 지적한 그의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의 지적 가운데 이런 부분은 음미할 만합니다. “대학 구조 개혁 평가로 인해 비정년 전임(연봉 1천800만원~3천만 원의 무늬만 조교수)이 급증하고 있다. (연구재단이 새롭게 도입한 학술정책으로 인해) 불안정한 신분의 비정년 전임이 학교의 일방적 결정으로 재계약되지 않을시 연구자로서 학문을 계속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가 사라지게 됐다.”

국가와 대학은 학문후속세대를 보호하고 지원해야할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비록 명시적으로 규정된 것은 아니지만, 전체 학문 생태계를 고려한다면 이들에 대한 보호와 지원은 더욱 확대하고 발전시켜야 할 부분입니다. 그런데 학문후속세대 연구자들이 오히려 제도의 후퇴와 그에 따른 소외를 말한다면, 이는 곱씹어 봐야하지 않을까요? 정책의 대상이 되는 이들로부터 나온 진솔한 목소리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이런 목소리를 외면할수록 정책은‘탁상공론’이 되기 쉽고, 학문 생태계는 빠르게 탈수현상을 일으키게 될 것입니다.

최근 신임교수 임용 현황은 이점에서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외국박사 프리미엄이 줄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최근 10년간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들의 국내 교수 임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한 전문가는 가장 큰 이유로‘비정년트랙 전임교원의 증가’를 꼽았습니다. 이것은 2008년이후 대학가에 정착한 정량평가 중심의 대학평가가 전임교원 확보율을 높이기 위해‘무늬만’교수인 저임금 비정년트랙을 대거 임용한 것과 무관치 않을 것입니다. 물론, 국내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연구자들의 경쟁력이 높아졌다는 설명도 되겠지만, ‘비정년트랙 전임’이기 때문에 해외 박사들이 선뜻 눈을 돌리지 않는다는 분석도 될 것입니다.

좀 더 거시적으로 볼 때, 해외에서 공부를 한 해외 박사들이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는‘현지 체류 증가’현상은 대학을 넘어 국가적 차원에서 ‘학문후속세대’문제와 함께 더 고민해야할 사안입니다. “2000년대 이후 박사학위를 받고 외국에서 취업하거나 외국의 대학이나 연구기관에 머무르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는 진단은, 허남린 브리티시-콜럼비아대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국적을 불문한 인재쟁탈전’과도 이어질 수 있기에 지혜를 모아 대처 방안을 찾아야합니다.

안으로는 보호·지원해야할 학문후속세대의 설자리를 좁히고, 밖으로는 좋은 인재를 그대로 해외에 머물게하는, 즉 국내 유인 장치가 허술한 이 이중질곡의 학문후속세대정책은 대학의 미래와 나라의 장래에 중요한 걸림돌이 될지 모릅니다. 박사학위를 과잉으로 양산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렇다고 이들 가운데서 옥석을 걸러내는 일을 소홀히 할 수는 없습니다. 스스로 연구자의 길을 자처하고 있는 이들, 그들이 그나마 안도하면서 연구를 계속할 수 있는 풍토를 만들어가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입니다.

미셸 푸코는‘사회를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학문후속세대와 학문공동체, 나아가 학문생태계 역시 보호해야 합니다. 학문에 뜻을 둔 젊은 연구자들을 다양한 형태로 지원하고, 해외에서 공부한 이들이 조국에서 뜻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확장하는 일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입니다.

이영수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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