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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교양교육과 창의성 함양
현대 교양교육과 창의성 함양
  • 엄정식 서강대 명예교수·철학
  • 승인 2015.02.02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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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칼럼] 엄정식 서강대 명예교수·철학

엄정식 서강대 명예교수·철학
미래 사회에서는 더욱 더 다양한 가치체계와 상충하는 가치 요소들이 혼재해 개인적 신념 체계를 정립하기가 어려워지고 자율적 인격체로 존립하기가 그만큼 더 힘들어 질 것이다. 특히 환경 파괴와 유전자 조작, 세련된 로봇과 트랜스휴머니즘의 등장, 사이버 공간의 확대 등으로 가치관과 세계관, 인간관을 새롭게 정립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극심한 혼란이 야기될 것이 분명하다. 여기서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신념체계를 정립하기 위한 내적 통합력이며, 새로운 환경에 신축성 있게 대처하기 위한 외적 적응력이다.

내적 통합력이 강한 인간은 독단적 합리성이 강한 인간이기도 한데, 일관된 신념체계와 행동 양식을 지니고 있고 가치관이 뚜렷해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태도를 취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고 독선주의와 배타주의의 성향을 드러내기 쉽다. 그러므로 그러한 유형의 인간은 동시에 외적인 적응력을 기를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변화를 관조하고 성찰하며, 때로는 비판하고 도전할 뿐만 아니라 이에 참여하고 순응하기도 해야 하는데, 여기에서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근거 있고 건설적인 비판적 지성이며, 새로운 가치체계와 생소한 환경을 수용할 수 있는 열린 자세다. 오늘날 교양교육과 창의성의 함양을 연계시키는 문제는 이러한 맥락에서 고려돼야 할 것이다.

과학기술시대의 교양교육은 전 시대의 교양교육, 말하자면 유목시대나 농경시대는 더 말할 나위도 없이, 심지어 근대 산업사회의 그것과도 구별되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바람직한 인간의 조건 중에 불변하는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적 특성이 변화함에 따라 더욱 절박하게 요구되는 것은 분명히 달라지고, 또 달라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현실적으로 절박하게 요구되는 것은 막연하고 추상적인 사랑이나 인애, 혹은 자비 같은 것이 아니라 과학기술시대를 창출하는 데 원동력이 돼준 과학정신, 그 중에서도 특히 비판적 합리성과 개방적 자율성이라고 판단된다. 그것이 곧 시대의 인문정신이며 교양교육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한편 오늘날 교양교육에서 창의성의 함양을 강조하는 것은 그 이상인 자아의 인식 혹은 자아의 완성을 궁극적 목표로 하는 것 같지는 않다. 이른바 ‘무한경쟁’이 특성화 된 현대사회에서는 교양교육 자체를 이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전략적 수단의 하나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창의성’이란 소중한 인문적 가치도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하게 될 우려가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교양교육으로 실시되는 창의성의 함양은 오히려 이 시대의 병폐를 가중시키는 부정적 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도구적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창의성의 중요성을 부각시켜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의 창의성이야말로 과학기술시대를 창출한 과학정신의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과학정신을 창달하기 위한 이 시대의 고유한 교양교육은 창의성을 함양하기 위한 목적과 양립될 뿐만 아니라 서로 보완관계를 이루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 철학문화연구소에서 발행하는 계간 <철학과 현실> 통권 제103호(2014년 겨울)에 수록된 ‘특별기고’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엄정식 서강대 명예교수는 철학문화연구소장과 한국철학회장 등을 지냈고, 현재 <철학과 현실> 편집총괄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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