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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붐 세대와 가치의 재발견
베이붐 세대와 가치의 재발견
  • 한필원 편집기획위원/한남대·건축학
  • 승인 2015.01.27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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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한필원 편집기획위원/한남대·건축학

▲ 한필원 편집기획위원
운전이 서툴고 길을 잘 못 찾는 택시기사, 빵을 못 굽는 빵집 주인, 커피를 못 만드는 커피숍 주인……. 요즘 부쩍 이런 사람들을 자주 보는데, 대개 50대 중반을 넘긴 노년층이다. 내가 자주 가는 커피숍에서는 저녁시간 잠깐 말고는 다른 손님을 보기가 어렵다. 은퇴한 50대 후반의 부모가 돈을 대고 자녀들이 운영하는 가족사업체다.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고 고용이 나빠져 모든 세대가 다 고단한 시대지만 필자가 속해 있는 베이비붐 세대들의 고민이 특히 복잡하고 깊다. 1955~1963년사이에 태어난 이 세대는 그간 줄곧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구가했다. 그러나 50대 후반, 은퇴가 예상치 못했던 무서운 복병을 숨긴 채 그들을 찾아오고 있다.

대부분의 베이비붐 세대는 은퇴 뒤에도 돈을 벌어야 한다. 자녀들은 아직 공부를 하거나 취직 준비를 하고 있고 부양해야 할 부모도 생존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내가 쓸 돈은 준비돼 있지만 세 세대가 같이 먹고살기엔 부족하다. 나이가 들수록 입은 닫고 지갑은 열어야 한다는데, 난감한 지경에 놓이게 된 것이다.

그런 그들이 커피숍, 식당, 편의점 등의 자영업에 뛰어든다. 이 세대는 일관되게 한 길을, 하나의 전공을 파는 것을 미덕으로 여긴 시대를 살아와서 다른 것을 할 줄 모르고 할 줄 아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들이다. 그래서 우리 집 앞 동네에는 걸어서 5분 거리에 커피숍이 15곳이다.

그런 업종은 이른바 전형적인 레드오션이다. 수요는 주는데 공급은 크게 늘어나 경쟁이 날로 심해지는 분야를 말한다. 자영업자의 절반가량이 3년 뒤 문을 닫고, 지난해 부도를 낸 자영업자 중 50대의 비율이 42.7%로 가장 높았다는 통계에서, 그곳은 준비가 충분하지 않은 베이비붐 세대에게는 특히 짙은 핏빛바다임을 알 수 있다. 앞으로 은퇴하는 베이비붐 세대가 대폭 늘어나기 때문에 그런 자영업의 경영은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우려된다.

대책은 없을까. 어느 날 문득, 집 앞의 커피숍들이 왜 아파트처럼 면적만 다를 뿐 서로 비슷한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됐다. 그런 의문은 곧 베이비붐 세대야말로 가치 경영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똑같은 커피숍을 해서는 승산이 없다. 커피 맛을 좋게 하는 데는, 가격을 낮추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미 우리 집 앞 커피숍들의 맛과 가격은 비슷해졌다. 게다가 베이비붐 세대는 커피를 잘 알지도 못하지 않는가. 그렇다고 지금부터 커피를 탐구할만한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생각만 조금 열면 그리 어렵지 않게, 당장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이 있다. 커피에다 다른 것을 입히는 일이다. 그 다른 것이 가치다.

자신이 평생 해온 일을 돌아보면 자신만의 강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을 살려 공간을 독특하게 꾸민다든지, 커피숍을 특정한 주제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수시로 모여 의견과 정보를 나누는 대화의 장으로 운영한다든지 하는 것이다. 커피는 옆집과 비슷하지만 장소에, 운영방식에 개성과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그곳을 찾지는 않겠지만 취향과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들은 충실한 고객이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집 앞 15곳의 커피숍은 결국 가격 경쟁을 벌일 것이고 머지않아 한 곳씩 문을 닫게 되리라.

쉽지는 않을 것이다. 앞만 보고 달리는 성장시대를 살아온 베이비붐 세대는 가치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날 경제는 호황이고 시장은 확대되기만 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역전돼 가치의 부단한 재발견과 재정의, 혹은 재해석이 요구되는 시대다. 내가 잘 아는 가치를 이끌어내 경제활동과 연결시키자. 나의 존재감도 나의 영업도 오랫동안 유지될 것이다.

한필원 편집기획위원/한남대·건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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