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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대학들의 서로 다른 고민
세계 대학들의 서로 다른 고민
  • 허남린 논설위원/브리티시-콜롬비아대·아시아학과
  • 승인 2015.01.27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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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허남린 논설위원/브리티시-콜롬비아대·아시아학과

▲ 허남린 논설위원
요즈음 한국의 대학들은 아우성이라고 한다. 입학생의 수가 감소하면서 빈자리가 점점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향은 해가 갈수록 점점 가속화할 것이라고 한다. 일본의 대학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이 모든 대학을 강타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이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킨다. 서울이나 도쿄의 대학들은 입학 지원생의 감소세에서 멀리 빗겨나 있고, 앞으로도 감소세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가능성은 아주 낮다.

한국의 사정에 비해 북미의 대학들은 전 세계에서 몰려오는 학생들로 비명이다. 글로벌 경제가 가져온 빈부의 격차는 전 세계적으로 심화일로에 있고, 이 틈을 타 저임금 구조의 기회를 거머쥔 부유층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자녀들을 영어권 대학에 보내고자 안간힘이다. 미국, 캐나다, 영국, 호주의 대학들은 세계 각지에서 밀려오는 대학 지원자들을 처리하느라 때 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다. 대학교육에 있어서도 로버트 필립슨이 말하는 영어제국주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영어권의 대학에 입학하고자 하는 전 세계적 열기는 두 가지 원인에 기인한다. 하나는 비싼 등록금에도 불구하고 이들 대학에 자녀들을 보낼만한 부유층이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영어권의 교육을 받으면 장래의 활동영역이 전 세계적으로 넓어질 수 있다는 기대다. 일단의 다른 학생들은 졸업 후 영어권의 세계에서 인생을 펼치고자 한다.

이러한 경향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영어권의 나라들은 세계의 우수한 인재들을 끌어들여 이들을 교육시키고, 이들이 자국에 남아 양질의 노동을 제공하기를 내심 바라고 있다. 국가 경제이건 과학기술의 발전이건 모두 다 사람이 하는 일이다. 문제는 어떤 자질의 사람들이 어떤 품질의 노동을 제공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의 희비쌍곡선은 갈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앞으로는 국적을 불문한 인재쟁탈전의 세계가 될지도 모른다.

영어권력이 글로벌 세계를 휩쓸면서, 세계의 대학들 간에도 빈부의 격차가 점차 커지고 있다. 한국의 국내 대학들간에도 글로벌화의 여파가 미치고 있으며, 영어권 대학과 비영어권 대학들 사이에도 빈부의 격차가 점차 벌어지고 있다. 고객이 밀리는 곳에는 부가 창출되고, 고객이 빠지는 곳에는 빈곤이 감돈다. 교육의 글로벌화는 밀리는 곳에 희생의 구조를 정착시키고 있다.

세계로부터 밀려오는 학생 지원자가 늘자 영어권의 정부들은 때맞춰 대학에 대한 지원을 줄였다. 공공재정의 부족을 이유로 들지만, 속내는 스스로 재원을 짜내라는 압박이다. 그 결과 영어권의 대학들은 등록금을 올리기 시작했고, 이제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그래도 가능한 것이 이들 비싼 등록금을 낼 수 있는 세계 각지의 부유층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의 학생들에 비해 세 배 네 배의 등록금을 부과해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대학교육은 어느새 돈 버는 수단으로 화하고 있는 경향마저 보인다.

로마가톨릭 교황도 이미 지적했듯 세계자본를 제멋대로 주무르는 미국이 주도한 세계 경제의 글로벌화가 가져온 것은 빈부의 격차와 비정규직의 양산이다. 많은 대학들도 글로벌화의 논리 속에 비정규직을 끌어안았다. 누구를 위한 글로벌화인지 묻지도 못하는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이미 고통에 빠져버렸다.

교육의 글로벌화라는 파고 속에서 가장 이익을 보는 측은 영어권의 대학들이다. 이러한 가운데 세계의 대학들은 강제된 변화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고 있다. 그 결과가 대학교육에 어떤 모습으로 전개될지 심려의 파고는 높아만 가고 있다.

허남린 논설위원/브리티시-콜롬비아대·아시아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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