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똘레랑스와 테러
똘레랑스와 테러
  • 문성훈 편집기획위원/서울여대·현대철학
  • 승인 2015.01.19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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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문성훈 편집기획위원/서울여대·현대철학

▲ 문성훈 편집기획위원/서울여대·현대철학

최근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엡도>가 테러를 당한 후‘똘레랑스가 테러를 당했다’는 문구가 언론 기사를 통해 확산되고 있다. 이 말은 똘레랑스로 유명한 프랑스가 이제 테러에 직면하고 있다는 뜻이겠지만, 얼핏 보아 <샤를리 엡도>는 똘레랑스를 행했지만, 이에 대해 무슬림은 테러로 응답했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샤를리 엡도>의 무슬림 풍자와 무슬림 근본주의자들의 테러. 과연 누가 잘못일까.

나는 타인이나 집단을 무시하는 행동을 도덕적으로 부당하다고 생각하며, 사회적 인정을 획득하기 위한 무시당한 사람들의 저항을 도덕적으로 정당하다고 본다. 그리고 이러한 저항, 즉‘인정투쟁’은 타인이나 사회를 파괴하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인정관계 수립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을 사회적으로 통합시키려 할 때 도덕적 진보의 원동력이 된다.

이런 도덕적 관점에서 볼 때 <샤를리 엡도>의 마호메트 풍자와 이에 반발한 무슬림 근본주의자들의 잔혹한 테러는 상대를 무시하고 있다는 동일한 이유에서 도덕적으로 부당하다.

우선 이 사건을 보고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표현의 자유가 타인을 모욕하거나 명예를 훼손하고, 언어적 폭력을 행사할 자유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표현의 자유는 다른 권리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존엄성과 자아실현이라는 보다 높은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표현의 자유가 이를 훼손할 순 없다.

따라서 여성을 폄하하거나, 외국인 노동자를 조롱하고, 성적 소수자들을 멸시하는 표현은 도덕적으로 정당화되기 어려우며, 기업 오너라고 해서 사원들을 업신여기고, 상급자라고 해서 하급자에게 욕설을 해대고, 손님이라고 해서 판매직원에게 굴욕적 행동을 강제하는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리고 무시당했다고 해서 무시한 사람들을 똑같이 업신여기거나 욕설을 해대고 굴욕적 행동을 강제한다거나, 복수심에 사로잡혀 이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 역시 용납될 수 없다. 이 경우 새로운 인정관계 형성이 불가능하며, 무시당한 사람들은 세력 관계상 더 큰 사회적 무시를 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풍자는 비판의 방식일 수 있다. 그리고 한 사회의 권력자들을 견제하고 사회적 불의를 폭로하려는 비판은 민주사회에서 보호돼야 할 권리다. 하지만 사회적 약자를 조롱하고 멸시하는 것은 암암리에 기득권을 강화하려는 강자들의 폭력일 수 있다.

<샤를리 엡도>가 교황, 김정은, 프랑스 대통령 등도 풍자한다지만, 마호메트 풍자 속에서 무슬림에 대한 무시를 직감하는 것은 지나친 일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이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언론인들을 학살한다는 것은 어떠한 이유에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이는 상대방의 존립 자체를 부정하려는 최대의 무시이기 때문이다.

<샤를리 엡도> 테러 사건에서 근본적으로 생각해봐야 할 점은 어떤 권리나 법적 문제가 아니라, 도덕적 차원에서 민주시민이 갖춰야 할‘시민적 덕성’이다. 그것은 바로 서로에 대한 인정이다. 그러나 이것이 서로에 대한 비판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와 대화하고 논쟁한다는 것은 상대방의 관점에서 자신의 입장을 반성해 볼 것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상대방에 대한 최대의 인정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문성훈 편집기획위원/서울여대·현대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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