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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바나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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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수신문
  • 승인 2015.01.05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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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산칼럼] 김진영 부산대·정치외교학과

"한반도의 새 시대를 열기 위해 오바마처럼 과거에 얽매여 살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실천에 옮길 우리 지도자는 누구일까?"

▲ 김진영 부산대 교수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1961년생이다. 그는 오십여 년간 지속된 미국의 對쿠바관계 단절을 해제하고 외교관계 정상화를 발표하면서 쿠바와 자기의 출생년도에 관한 다음의 사실들을 잠시 언급했다.

피델 카스트로가 쿠바 혁명을 한 것은 1959년, 오바마가 출생하기 전이다. 카스트로가 입지를 굳히고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이 망신을 당한 피그灣사건은 오바마가 출생하기 몇 달 전이다. 피그만 사건은 케네디 대통령이 카스트로 정권을 전복시키려고 CIA가 지도한 쿠바계 망명자로 구성된 특수부대를 쿠바 남부 피그만을 통해 몰래 침투시켰다가 쿠바군에게 사흘 만에 전멸된 사건이다. 하바나는 플로리다 최남단 키웨스트에서 불과 150킬로미터 거리다. 미국의 코앞에서 사회주의 혁명을 일으킨 쿠바의 카스트로가 냉전 초기 미국에겐 목에 가시같은 존재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공식적으로 냉전이 끝난 지 벌써 사반세기다. 쿠바에 대한 금수조처를 해제하고 관계를 정상화하는 것은 오바마 대통령의 공약의 하나다. 강성 공화당 반대파들의 비판을 개의치 않고 그는 이번에 그의 오랜 외교정책 공약 하나를 실현했다.

오바마는 쿠바와의 관계 회복을 선언하면서 자기를 비롯해 미국민 대부분은 이제 그들이 출생하기도 전에 일어난 것들에 얽매여 살지 않겠다고 분명히 말했다. 대쿠바 강경정책을 지지하는 쿠바계 미국인들도 이제는 세대교체가 일어나 대부분의 젊은 세대는 냉전시대를 알지 못한다. 새 시대는 과거에서 자유로운 새로운 세대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한다.

지구상에 남아있던 냉전의 마지막 유산의 하나가 이렇게 정리 절차에 들어갔다. 물론 앞으로 남은 절차가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아직 공화당 강경파들이 의회에서 반대의 칼날을 갈고 있고, 쿠바에 대한 금수해제와 경제교류 증대가 쿠바의 민주화는 커녕, 카스트로 독재정권의 배만 불릴 것이라는 반대도 무성하다. 그러나 역사적인 결단에는 항상 반대파들도 있기 마련이며 반대와 찬성의 논란이 분분한 가운데 역사는 한걸음 앞으로 나갈 것이다.

이제 냉전 최후의 유산으로 남은 한반도의 대립과 분단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한반도에도 인구연령적 세대교체는 벌써 일어났다. 그러나 사고방식의 세대교체는 정지된 채 우리는 과거의 유산에 얽매여 살고 있지 않은가. 20대의 대학생들에게 국제정치를 가르치면서 언제부터인가 냉전시대를 설명할 때 곤란함을 느낀다. 탈냉전 시대에 태어나 세계화와 정보화를 어릴 때부터 체험하며 자라난 이 젊은이들은 냉전시대의 엄혹한 이데올로기적 대립과 정치적 갈등의 양상들을 얼른 실감하지 못한다. 이 젊은이들에게는 체 게바라조차도 사회주의 혁명가로서보다 티셔츠에 멋지게 찍어 넣는 낭만적인 캐릭터로 인식된다. 국제정치학의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현실주의(realism) 이론들이 대부분 냉전시대를 배경으로 형성된 것이다. 이 젊은이들에게 냉전을 실감나게 설명하기 위해 언제부터인가 과거보다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한반도 북쪽에는 갓 서른의 젊은이가 자기 할아버지 흉내를 내며 할아버지 시대를 영원히 자기 왕국에 붙잡아두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 시대착오적 연극무대를 어떻게 끝나게 해야 하나. 이 젊은이는 할아버지뻘 되는 쿠바의 노혁명가에게 한 수 배워야 하지 않을까. 피델 카스트로는 미국에 쿠바 금수조처를 해제할 것을 줄기차게 요구했다. 그는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북한의 김씨 일가처럼 핵무기를 만들어 위협을 하지도 않았다.

한반도의 정지된 시계를 고쳐 탈냉전의 제 시간에 맞춰놓기 위해 남쪽이 먼저 주도해야 한다. 한반도의 새 시대를 열기 위해 과거에 얽매여 살지 않겠다고 오바마처럼 호기롭게 선언하고 실천에 옮길 우리 지도자는 누구일까? 현재 한반도의 국제정치적 상황은 쿠바보다 복잡하고 어렵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가 물려받은 유산이고 낡은 유산을 새 시대의 자산으로 바꾸는 용기와 신념이 필요하다. 하바나의 봄을 바라보며 평양의 봄을 소망해본다.

김진영 부산대·정치외교학과
미국 시러큐스대에서 정치학으로 박사를 했다. 외교통상부 정책자문위원을 지냈고, 현재 국방부 정책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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