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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에 대한 교만과 아집
지식에 대한 교만과 아집
  • 교수신문
  • 승인 2014.12.30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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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 이승환 울산대 박사과정·의과학

석사과정 초반, 간단한 선과 원으로 이뤄져 있던 애니메이션을 본 적이 있다. 내용은 학위과정을 하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지식의 보잘 것 없음과 그것들에 대한 교만, 부족함, 하찮음에 대한 것이었다. 한편의 짧은 애니메이션을 보고 멀뚱히 앉아 잠시 동안 스스로 반성을 했었다. 그때 느꼈던 생각들을 많은 연구자들과 앞으로 공부를 해 나갈 학생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우리는 얼마나 아는지를 기준으로 경쟁하는 여러 잣대들을 거치며 다른 사람보다 우월함을 느끼기도 하고, 좌절감을 맛보기도 한다. 그렇게 습득한 지식들에 대해서 스스로 가치를 매기고 평가를 한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가 갖고 있는 지식에 대해 교만과 아집을 갖고 있지는 않을까. 나의 과거가 남보다 우월하다고 해서, 현재 남들이 나를 부러워한다고 해서, 내가 그들보다 뛰어나다고 할 수 있을까. 현재는 뛰어날지언정, 나의 교만과 아집은 대화와 강연, 훈계 속에 담긴 여러 충고와 조언이 나의 이성에 도달하지 않도록 막을 것이고, 결국은 남들보다 뒤처지게 될 것이다.

누구나 이런 경험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유명한 국내외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온 사람과 같이 일을 하게 됐는데 제대로 아는 것도 없이 자존심만 강하고, 받아들이지도 않더라.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과 같이 일하는 것이 더 낫겠다. 이 이야기 속에서 당신은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었겠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저 답답한 사람이 당신이었을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나 자신이 가진 지식의 가치는 그것을 습득하기 위해 노력한 시간의 가치만큼이나 중요하고, 가볍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남들이 가진 그것의 가치보다 더 중요하다 생각하고, 남의 것을 폄하하려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엄청난 양의 지식이 존재하고, 생겨나고 있다. 모든 지식을 통틀어 생각하지 않더라도, 당장 자신이 마주하고 있는 분야에 국한하더라도 자신이 가진 지식보다 훨씬 많은 지식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A4 용지에 볼펜으로 점을 찍으면 멀리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가까이 들여다보면 그제야 점 하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가진 지식이 그 정도나 될까. 왜 우리는 이토록 사소한 지식을 갖고 남들보다 우월하다 느끼고 돌아서며 무시하는가. 내가 가진 지식과 남이 가진 지식의 가치와 중요성을 쉽게 판단할 수 있는가. 어쩌면 우리가 갖고 있는 크고 작은 교만과 아집이 그동안 우리의 눈을 가리고, 귀를 멀게하며, 창의적인 대화와 생각으로부터 단절시켰을지도 모른다.

당신이 이 글을 보고 있다면 시간을 갖고 스스로 자신의 지식을 시험해 보는 시간을 갖길 바란다. 과연 지금 당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에 대해 얼마나 많은 것을 알고 있는지, 얼마나 자세히 알고 있는지, 왜 그런지, 어느 부분이 부족한지, 어느 부분을 아직도 모르는지, 과연 최종적으로 무엇을 위한 것인지, 그렇다면 내가 알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과연 당신은 당신이 진행하고 있는 많은 일 중에서, 그리고 당신이 갖고 있는 많은 지식 중에서 거침없이 설명할 수 있는 것들이 있는가. 당신의 무지함, 부족함을 느끼길 바란다.

잠시나마 스스로 자신을 알고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철저히 드러난 우리의 부족함과 그를 채우지 않았던 그동안의 나태함을 인정하고 반성하자. 시작은 있지만 끝은 없는 무한한 지식의 세계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교만과 아집은 너무나 큰 사치다. 주관적인 기준이 아니라 객관적인 기준으로, 혹은 절대적인 기준으로 끊임없이 자신의 분야를 탐구하고 갈구하자. 아이들이 처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설렘과 순진무구함처럼.

 

이승환 울산대 박사과정·의과학
울산대에서 의과학을 전공하고 있다. 현재 면역학과 뇌과학을 연구하고 있으며, 열심히 해서 많은 사람에게 행복을 주는 과학자가 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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