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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과 제자 사이와 선물교환관계
스승과 제자 사이와 선물교환관계
  • 교수신문
  • 승인 2014.12.30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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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문성훈 편집기획위원/서울여대·현대철학

▲ 문성훈 편집기획위원
잇따른 대학교수들의 성추행 사건으로 교육자의 명예가 땅에 떨어졌다. 학생들 보기도 민망하고, 혹 나의 행동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지 괜한 불안감이 들기도 한다. 오늘날 사제관계란 어떤 관계이기에 이런 참담한 일들이 벌어졌을까. 과연 스승은 제자들에게 깨우침을 주며 기뻐하고, 제자들은 이런 스승에게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표하고 있을까.

언제부터인가 대학교육을 방향 지우던 두 가지 말이 있다. 수요자 중심 교육! 이 말은 무슨 뜻일까. 교육은 상품이고, 학생들은 이 상품을 사는 수요자란 말인가. 그럼 이제 교육자는 교육 상품을 파는 공급자가 된다. 그리고 또 다른 말은 취업률이다. 교육성과는 취업률에 따라 평가되고, 교육자의 역량 또한 취업률에 따라 평가된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말은 묘하게 하나가 된다. 취업 위주의 교육이 최상의 교육 상품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교육이란 상품의 가격은 얼마일까. 교육을 통해 전달되는 것이 포괄적 의미에서 지식이고, 지식이 진리라는 이름하에 생산된다면 이는 진리의 가격이 된다.

문화인류학자 마르셀 에나프는『진리의 가격』이란 저서에서 진리의 가격을 묻는다. 그러나 그에 따르면 진리는 가격을 매길 수 없다. 진리는 금전 가치로 환산할만한 아무런 양적 특징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리는 상품이 될 수 없다.

만약 사정이 이렇다면 진리를 남에게 전수하고도 아무런 보상도 받을 수 없는 것일까.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와 달리 돈을 받고 가르치지 않았다. 소크라테스는 진리의 탐구자였으며, 그가 가르친 것은 그의 신념이자 바로 이런 점에서 그와 동일시된다. 즉 진리란 소크라테스에게 그 자신을 상징하고 그 자신을 대신하는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소크라테스는 상인이 물건을 팔 듯 진리를 팔 순 없었다. 사실 상품의 가치나 특징은 그것을 파는 사람과 무관하며, 따라서 그와 동일시되지도 않는다.

소크라테스에서 볼 수 있듯이 교육이 상품이 아니라면 교육에 대한 보상은 없는 것일까. 에나프는 이를 선물교환관계로 해석한다. 즉 교육자는 교육이란 선물을 준 것이고, 학생들은 이에 대해 마찬가지로 선물로 답례한다는 것이다. 선물이란 자기 자신을 대신할 만큼 귀한 것을 남에게 주는 것이고, 또 이를 받은 사람은 답례를 의무로 안다.

이런 점에서 선물교환관계는 상품교환관계와는 달리 서로에게 자신을 선사하면서 하나가 되는 과정이며, 서로가 서로를 인정한다는 최상의 표현이다. 따라서 선물교환을 통해서는 상품교환과는 달리 상호이익이 아니라 서로 간의 깊은 유대관계가 형성된다. 이것이 바로 스승과 제자의 관계다.

교육이 상품이 되면 학생은 구매자가 되고 교육자는 상인이 된다. 이런 관계에서는 상품교환관계와 마찬가지로 교육자와 학생이 자신의 이익만을 좇는다. 학점과 취업을 미끼로 학생들에게 권력을 행사하는 교수가 있다면, 이 사람은 자신이 최고의 교육 상품을 판다고 믿는 악덕 상인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이와 달리 자신을 상징하고 자신을 대신할만한 진리 탐구를 제자들에게 전수하는 교수가 있다면, 이제 이 사람은 상인이 아니라 스승이 된다. 그리고 그가 기대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선물교환관계에서와 마찬가지로 제자들이 주는 최고의 인정이다.

문성훈 편집기획위원/서울여대·현대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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