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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인문학을 생각한다
다시 인문학을 생각한다
  • 김춘섭 전남대 명예교수·국문학
  • 승인 2014.12.30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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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칼럼] 김춘섭 전남대 명예교수·국문학

"창조경제나 창조경영은 모두 경영의 새로운 창조가 아니라 인문학적 정신의 창조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 김춘섭 전남대 명예교수
요즘 들어 현대 기업 경영의 키워드가 될 인문적 사례를 꼼꼼하게 안내하고, 나름대로 논증까지 곁들인 글이 많아졌다. 생각해보면 어차피 인문도 경영도 모두 우리 인간을 위한 덕목이고 그 계책일 수 있을 터이니 따로 떼어 나눌 수는 없을 것 같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인문학의 요체는‘통찰의 힘’을 키워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통찰의 힘을 벤치마킹할 수 있는 역사 속의 인문적 사례들은 얼마든지 있다.

흔히 인문학의 범위를 文, 史, 哲이 통합된 지경으로 설명한다. 생각의 표현으로서 문학과 그 생각의 보편성으로서 철학, 그리고 문학과 철학의 실재적 궤적으로서 역사가 하나로 범주화돼 오랫동안 우리 삶을 깨우쳐왔고 그 깨우침이 창조로 드러나, 이른바‘문명’을 이뤄 왔으니‘경영’의 어떤 통로인들‘인문의 숲’을 비켜나 있지는 않을 터다.

기원전 고대 그리스의‘고전기’와 헬레니즘 시대의 인문적 담론들은, 이후 신본주의 시대로 표징되는 비잔티움 제국과 중세의 긴 터널을 빠져나와 르네상스 시대의 문명으로 재생됐다. 사실 그 인류사적 선물은 인문과 자연의 구분 없이 여러‘앎’의 분야가 꾸준히 統攝해 온 과정의 결과물이었다. 과학자가 철학자였고 화가였고 문학자였던 사례들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또한 인문주의는 인본주의이고, 인본주의의 종착지는 인간이 지닌 이성의 자존감에 다름 아니다. 이 이성적 자존감이 우리들의 삶을 창조적인 모험에 도전하도록 이끌었고, 그 위험스러워 보이는 그런 도전들이 새로운 문명을 일깨워 나왔다. 농업혁명에서 상업혁명, 다시 산업혁명으로 이어져 온 인간역사의 순기능은 한 마디로 인문학 정신의 창조적 진행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주요 정책 목표도‘창조’경제이고 어느 기업 CEO는‘창조’경영을 기업 운영의 핵심 과제로 강조하기도 한다. 풀어서 얘기하면 창조경제나 창조경영은 모두 경영의 새로운 창조가 아니라 인문학적 정신의 창조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사실 기업 경영만이 경영이 아니라 국가도 우리들 인생도 그 존재 양상은 모두‘경영’일 것이다. 저마다 인문적 통찰(Insight)의 힘을 키워나가는 것, 이것이 모든 경영의 윤리이고 철학이 돼야 한다.

‘인문학의 위기’라는 위기감이 대학가를 중심으로 조성돼 온 것은 어제 오늘의 얘기는 아니다. 또 대한민국, 우리만의 얘기도 아니다. 인문주의적 지성사의 본향으로 자처해 온 유럽의 대학이나 오늘날 학문의 중심으로 자처하는 선진 미국의 대학에서도 인문학의 위기 담론이 끊이지 않고 들려 왔으니까. 하지만 위기는 항상 기회를 동반하는 것일까. 근래 언제부턴가 인문학의 실용적 가치가 최하 저점을 지나 불현듯 치고 올라가더니 인문학 르네상스 시대를 맞는가 싶을 정도로 인문학 열기가 대단해져 온다. 곳곳에서 펼치는 인문학 이해하기 문화운동 단체(Lyceum)의 강의 활동이 그것을 말해 준다. 반가운 일이지만 일말의 불안감도 느껴진다. 인문학 이해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괜한 걱정이기를 바랄 뿐이다.

사실 인문학의 위기가 논의되면서부터 이미 위기라고 허둥대왔던 대학의 인문학자들이 더 위기라는 말이 오가기도 했다. 따지고 보면 이 역시 위기의 전부는 아닐 터이다. 인문학에 대한 실용 가치적 위기는 20세기의 모더니즘 시대, 이 시대에 맞는 호모 파버(Homo faber), 그리고 호모 루덴스(Homo ludens)의 인간형 시대가 침잠하고 사유하는 인문주의를 배반했던 것의 결과가 아니었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아울러, 인문적 자아경영의 진정한 여정은 인류 문명사를 통관해 온‘인문의 숲’을 거닐며 키워내는‘통찰의 힘’에서 찾아야 할 길이 아닐지 다시 한 번 깊이 음미해볼 일이다.

 

김춘섭 전남대 명예교수·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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