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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피아'보다 무서운 '정피아'
'관피아'보다 무서운 '정피아'
  • 교수신문
  • 승인 2014.12.30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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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박재묵 논설위원/충남대·사회학

▲ 박재묵 논설위원
우리나라 39개 국공립대 중에서 현재 총장 자리가 비어있는 대학이 네 개에 이른다. 경북대, 공주대, 한국방송통신대, 한국체육대 등이 그런 대학이다. 이들 대학의 총장 자리가 공석인 이유는 대학이 절차를 밟아 선정해 추천한 후보자를 정부가 임용하기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에 따라서 총장직 공백 기간이 다르기는 하지만, 한국체육대의 경우에는 그 기간이 무려 21개월에 이르고 있다.

우선 임용 거부로 인한 행정 공백이 문제다. 직무를 대신할 사람을 세우겠지만, 총장 후보자가 임용 거부를 당한 상황에서 대학 행정은 물론 구성원의 활동이 정상적으로 이뤄지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특히 교육부의 연이은 임용 거부로 네 번이나 총장을 새로 뽑아야 했던 한국체육대의 상황은 물어볼 필요도 없을 것이다. 구성원들의 마음이 뒤숭숭하고, 모이면 수군수군 하는 분위기 속에서 무엇인들 제대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정작 중요한 문제는 행정 공백이 아니라 임용 거부 사유의 불투명성에 있다. 처음에 정부가 임용을 거부할 때에는 그럴 만한 사유가 있으려니 생각했고, 또 흘러 다니는 풍문을 통해 은밀하게 전해지는 사유를 믿으려 했다. 그래서 정부 측에서 거부 사유를 밝히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임용 후보자를 위한‘배려’로 간주하면서 애써 이해하려고 했다. 그러나 최근의 몇몇 거부 사례를 보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정부가 적격성 판단에 매우 자의적인 기준을 사용하고 있고, 이러한 기준의 불투명성 때문에 거부 사유를 공개적으로 밝히지 못하는 것이라는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불투명한 사유의 대표적인 것이 바로 정부정책에 대한 반대 서명에 참여한 경력이다. 정부는 임용 거부 이유를 추천한 대학은 물론 심지어 본인에게도 밝힌 적이 없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거부된 일부 후보자에 대해서는 서명 경력이 임용 거부의 사유라는 이야기가 나돌고 있고, 일부 언론에도 보도된 바 있다.

서명 경력이 적격성 여부를 가리는 기준이 돼서는 안 되는 이유는 이것이 결국 후보자의 정치적 입장을 따지는 것이 되고, 그것은 다시 정치권력에 대한 대학의 예속을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항간에는 연이은 총장 임명거부를 두고 입맛에 맞는 인사를 선택하기 위한 수순이라거나 대학 길들이기라는 이야기가 나돌고 있다.

사실 정치권력이 정부 산하 기관장 자리를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인사들에게 나눠주는 이른바 코드 인사는 새로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국공립대학 총장 자리는 다른 정부 산하기관의 장과는 엄청나게 다르다. 학문과 대학의 자율성이 헌법에 의해 보장돼 있다는 원론적인 근거를 들추지 않더라도, 총장후보자는 이미 학칙과 내부 규정에 의해 정해진 절차에 따라 대학 구성원과 지역사회 인사들의 뜻을 반영해 선정됐기 때문에 명백한 부적격 요인이 있는 경우가 아니면 그 임용이 거부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 상식이다. 공주대 총장후보자가 제기한 행정소송에서 법원도 비슷한 취지의 판결을 내려 원고가 승소한 바 있다.

도대체 정부는‘관피아’는 안 된다고 하면서‘정피아’는 괜찮다는 것인가. 제발 정치권에 기웃거리던 학내외 인사가 총장직을 맡게 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차제에 정부는 국공립대 총장 임용과 관련된 정책의 대전환을 검토했으면 한다.

전환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국가가 정한 법대로 하자는 것일 뿐이다. 교육공무원법 제24조 ③항에 있는 대로 대학이‘추천위위원회의 선정’이나‘해당 대학 교원의 합의된 방식과 절차에 따른 선정’중에서 하나를 선택케 하자는 것이다. 이것은 직선제로의 회귀가 아니라 총장 선출방식의 다양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박재묵 논설위원/충남대·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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