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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들이 나라 걱정해야
교수들이 나라 걱정해야
  • 교수신문
  • 승인 2014.12.22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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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민경찬 논설위원/연세대·수학

▲ 민경찬 논설위원
20세기의 재평가 과정에 지적되는 내용 중의 하나는‘지난 30년간 지식인이 실종됐다’는 것이다. 최근 한 일간지에 인용된 한 시민의 이야기다. 그는 미국과 중국의 아시아 주도권 경쟁, 일본의 급격한 우경화, 북한의 위협 가운데 생존을 위해 줄타기를 잘해야 하는 한국을 걱정하며“사는 일로 바쁜 보통 사람이야 그렇다 쳐도 지식인들은 뭐하는 겁니까. 나라 밖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데 청와대 인사 스캔들 같은 국내 문제에만 열을 올리고…….”라는 지적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그런데 오늘의‘지식인’이란 누구일까?

요즘 소개되는 올해의 베스트셀러목록에는 요나스 요나손의『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들, 부의 불균형을 다룬 토마 피케티의 경제서, 2014년 트렌드 분석서 등이 주종이라고 한다. 한편 대학 도서관에서 학생들이 가장 많이 빌려본 책들은 웹툰「미생」, 만화『조선왕조실록』,『 정글만리』,『 정의란 무엇인가』,『 총균쇠』등이라고 한다.

그런데 미국의 최근 독서 흐름은 ‘중국을 읽는’것이라고 한다. 얼마 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한 책방에서 공개적으로 선택한 서적은 중국 분석서『야망의 시대』다. 한편 중국에서는 요즘‘해양 굴기’가 독서의 화두인데, 『1453년 콘스탄티노플 전쟁』과『해양제국』이 주목받고 있다고 한다. 이는 중국이 미국과 동등한 패권국이 되기 위해 해군력을 강화하고 있는 현실과 연계된다.

한국에서는 베스트셀러 순위 100권이내에도 미·일·중·러의 동북아패권 다툼에 대한 분석이나 그 속에서 한국이 가야 할 길을 고민한 책은 찾을 수 없었다는 지적은 뭔가 우리 인식에 사각지대가 있음을 깨닫게 한다. ‘지식인’하면 공적 담론을 형성하는 주체로, 또는 권력과 국가에 맞서 공익과 국민을 지키는 대변자로 그 모습을 그린다면, 한국의 ‘지식인들은 뭐하는 겁니까’라는 질타가 이해되기도 한다.

그러면 우리 사회에서 누가 나라의 미래에 대해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국가의 흐름을 선도해야 할까. 임기 5년의 정부, 1년 정도의 장관, 6개월에서 1년 정도의 담당공무원, 4년의 국회의원, 4년의 총장 등에게 얼마나 기대할 수 있을까. ‘짧은 임기’라는 틀 때문에 혼란은 반복되며, 지속성, 방향성이 유지되지 않는 것이 현실인데, 우리는 전적으로 이들에게만 기대하고 요구하는 것 같다.

그러면 누가 책임져야 하는 것일까. 우리 사회에서 안정적으로, 긴 안목으로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곳은 대학이다.“ 대학은 그 사회와 국가가 필요로 하는 그 시대의 가장 바람직한 의식을 형성한다”라는 칼 야스퍼스의 말처럼, 대학은 그 이념 자체가 사회적 책임을 포함하고 있다. 국민들이 교수를 존경하고 기대하며, 세금으로 도와주는 이유다.

그동안 교수들은‘업적평가’라는 틀에 갇혀 매우 수동적으로 변해버렸고, 대학 본부는 정부의 재정지원과 언론기관의 평가에 매달리는‘을’의 위치를 벗어나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 같다. 얼마 전 몇 개 대학의 총학생회가 나서서 언론사의 대학평가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대의사를 분명히 밝혔는데도, 정작 대학이나 교수들의 목소리는 아직 잘 들리지 않는다.

새해에는 교수들이 앞장서서‘교수의 가치’를 더 높은 차원에서 찾도록 만들자. 교육과 연구를 왜곡시키는 ‘획일적 지표 중심의 평가’에 순응하기보다, ‘가치’와‘영향력(impact)’을 중시하는 환경을 요구하자. ‘살아남기’를 넘어‘본질’과‘대의’를 생각하며 나라를 걱정하는 선비정신이 절실한 때다. “책임감의 크기가 무대의 크기를 결정한다”는 말처럼, 우리 교수들이 스스로 책임감의 범위를 연구실을 넘어 나라, 지구촌, 미래로 확대해야 한다. 갈수록 위기적 상황에 빠져드는 비상시국이다.

민경찬 논설위원/연세대·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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