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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에게 감동을 선사하는 말
타인에게 감동을 선사하는 말
  • 교수신문
  • 승인 2014.11.10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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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교수 칼럼] 정경연 홍익대·섬유미술

‘아직까지도 그 사람 말이 생생하게 남아있어.’이런 말을 듣는 사람들이 있다. 반면 종일 떠들어도‘그 사람이 무슨 말을 했는지 도통 모르겠다’는 평을 듣는 이도 있다. 무슨 차이일까. 듣는 이의 감정을 움직이고 설득력 정도의 차이가 아닐까. 그런데 요즈음 우리의 말은 어떠한가. 혹시 후자 쪽이 아닌가. 곱씹어 보건데, 말은 많은데 말 같지 않은 말이 난무하는 게 아닌지….

간혹 우리는 말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단순 소통의 도구 정도로만 생각하기도 한다. 글에 견줘 말의 중요성을 덜 인정해 온 결과다. 그래서 말은 흘러가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가진 이도 적지 않다. 게다가 모든 근거는 말보다는 글로 표현되고 있다. 말로 편하게 해도 될 것을 문서화하는 대학행정에서도 그렇고. 송사에서는 서면이라는 요식을 해야만 법적 자료가 된다.

때때로 글보다 말이 훨씬 직접적이고 호소력이 강할 수 있다. 글로 표현된 문서는 구체적이고 명확한 기록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말 한마디로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다. 문서가 모든 일에 만능이 아님을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럴 경우 말이 문서와 견줄 수 있는 근거 자료가 되기도 한다. 말의 위력을 새삼 느끼게 해주는 부분이다.

사람의 인격도 말에서 비롯된다. 흔히 ‘말이 인격이다’라는 얘기를 주변에서 곧잘 들을 수 있다. 말은 사람의 인상을 평가하는데 더욱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사용하는 언어를 통해 그 사람의 됨됨이와 품격까지 대변해주는 가늠자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처럼 중요한 말임에도 우리나라 정서에 비춰볼 때는‘말하기’가 그리 중요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오히려 긍정적이지 않은 측면에서 받아들이는 경우도 많았다. 예부터 말을 잘하는 사람은 글을 잘 쓰는 사람에 견줘 홀대받기 십상이었다. 말이 많으면 가벼운 사람이 되고, 말수가 적으면 믿음이 가는 사람으로 곧잘 인식된다. 과묵한 사람을 더 믿을 만한 사람으로 단정하기에는 다소 역설적이다.

이런 우리 정서 속에서 우리는 말로 대화하는 토론이 서구인들에 견줘 낙후될 수밖에 없었다. 방송토론이나 정치인들의 행태를 보면 더욱 그렇다.

말의 소통은 기본 질서가 있는데, 이의 첫 번째 매너가 남의 말의 경청이다. 그런 뒤 자기 의사 표현인데 우리는 이 기본이 완전 붕괴된 듯하다. 이런 마당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말로 무슨 원활한 소통을 하고 또 타인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까.

새삼 강조할 필요 없이 말과 함께 행동은 중요하다. 왜 우리에겐 링컨부터 오바마에 이르는 미국 대통령들처럼 감동적인 대화와 멋진 모습을 보여주는 대통령이 없을까. 속내는 그렇지 않겠지만, 왜 우리 정치인들의 말과 행동은 믿음이 가지 않을까. 세월호나 유병언 사건을 믿지 않는 것은 왜 그럴까. 이에 대한 답은 독자 여러분이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리라 본다.

이제 우리 대학에서도 말로 하는 자기 학문 분야의 표현이 필요하다. 학기말 고사를 토론과 대화로 평가하면 어떨까. 물론 말과 함께 행위 실현도 중요한 평가 지표로 삼는다면 평가방법 전환의 계기가 되리라 본다. 더불어 사람과의 관계에서 진심 어린 의사전달의 훈련도 필요하다. 굳이 듣는 이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말의 가치를 익히기 위해서라도 이는 필요하다.

우리의 선인들은‘침묵이 미덕’이라 미화했지만, 반면 말을 잘해 천 냥 빚을 갚는 경우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물론 말의 중요성을 깨달은 자만이 이의 자격이 있다. 곧 말 한마디로‘천 냥 빚’을 갚을 수도 있지만, 말 한마디로 천 냥을 주고도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후회스러운 일도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대화와 소통의 시대다. 이 대화·소통의 뿌리는 바로 말이다. ‘참 말하기’의 교육, 타인에게 감동을 선사하는 말 훈련이 필요할 때다. 만약 우리 세대가 안 된다면 우리 학생들만은 다음과 같은 소리를 듣도록 지도해보자. “그 사람의 말을 듣고 나니까 모든 것이 다 해결되는 것 같았어….”

 

정경연 홍익대·섬유미술

전국여교수연합회장과 홍익대 산업미술대학원장을 지냈고, (사)지혜로운여성 이사장, (사)한국미술협회 상임자문위원, 홍익섬유조형회 회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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