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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수업, 가르치는 보람
좋은 수업, 가르치는 보람
  • 신동은 대전보건대·교양과
  • 승인 2014.10.27 19: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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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교수 칼럼] 신동은 대전보건대·교양과

추임새를 넣어줬을 뿐인데, 학생들은 숨기고 싶을 것 같은 과거 경험을 드러내놓고 서로 공감하고 격려하고 있었다.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한 것은 석사학위를 마친 1998년이다. 이 시기, 나는 대학원 때 배웠던 수업 자료들을 복습하고 2시간을 꽉 채울 수업 내용으로 정리하느라 일주일 내내 바빴고, 학생들은 학생들대로 수업 내용을 소화하느라 버거운 시간을 보냈다. 강의경험이 많아지면서 많은 양의 지식을 쏟아내는 수업은 결코 좋은 수업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2013년, 지금의 대학에 임용되면서 가장 큰 바람 중 하나는 좋은 수업을 하는 것이었다. 좋은 수업의 특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무엇보다 내가 바라는 수업은 학생들이 의미 있는 무언가를 배우고 있다는 느낌을 갖는 수업이다.

하지만 다양한 학과 학생을 대상으로 교육학 수업을 하는 나로서는 좋은 수업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전문대학으로 오기 전까지 가르쳤던 학생들은 대부분 4년제 대학의 교직과정 이수자들로, 학업 성적도 우수하고 학습 동기도 높았기 때문에 학생들과 교감하는 수업을 한다는 것이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전문대학의 학생들은 교육적 배경도 다양하고, 학과 간 울타리가 강하고, 전공 이외 수업에 대한 흥미가 높지 않아서 이들을 대상으로 교육학 수업을 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하나, 선생이 학생을 원망하고 있을 수는 없는 일! 나는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성장과 교육의 의미를 깨닫게 한 자신의 경험을 진솔하게 적어올 것을 주문한 다음, 준비해온 원고를 발표하게 했다.

발표 내용은 다양했다. 3살 조카가 주변 사람들을 그대로 좇아 하는 모습을 통해 교육의 의미를 발표한 학생, 군 제대 후 전국을 여행하면서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게 된 학생, 부모님이 학원을 많이 보내서 공부에 흥미를 잃었지만 고3 때 자신을 믿어준 선생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공부를 하다 보니 흥미를 갖게 됐다는 학생, 급기야는 중학교 시절 이유 없이 자꾸 빗나가던 자신에게“너의 마음은 얼마나 힘들겠니?”라는 말을 건넸던 담임선생님이 자신을 변화시켰다며 울먹이는 학생도 있었다.

쭈뼛거리던 학생들이 분위기가 무르익자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나는“그건 바로 마틴 부버(M.Buber)의 만남(encounter)의 교육에서 말하는 것과 똑같구나”라거나“교육에 대한 너의 생각은 공자님의 관점과 일치하는구나”등의 추임새를 넣어줌으로써 학생들의 발표에 흥을 불어넣어 줬을 뿐인데, 학생들은 숨기고 싶을 것 같기도 한 과거의 경험을 드러내놓고 서로 공감하고 격려하고 있었다.

그 날의 하이라이트는 수업이 끝나갈 무렵, 꼭 얘기를 해야겠다는 학생의 이야기였다. 얘기인즉슨,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집안의 기대를 받는 아들이라서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에 실수할까봐 발표하기 싫어했음을 깨닫게 됐고, 이제 그런 틀을 벗어나겠다는 앞으로의 각오였다. 발표한 학생들은 자기 이야기에 대한 친구들의 공감을 통해 치유를 얻게 되고, 경청한 학생들은 친구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그림자’를 인식하게 된 그날의 수업은 감동 이상의 것이었다.

이 날의 경험을 계기로 나는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던 청소년기의 좌충우돌 경험들이 꺼내놓기 저어되는 과거가 아니라 학생들의 성장을 위한 발판이 될 수도 있음을 깨닫게 됐다. 또한 교수들이 학생들의 성장을 돕기 위해서는 학생들을 대상화하고 불평하는 자세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배울 수 있었다.

전문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은 어쩌면 청소년 시기 스스로 만족할만한 성취감을 경험해보지 못한 학생들일 수 있다. 전문대학 재학 시기는 이런 학생들이 사회로 진출하기 이전의 완충 기간으로, 학생들은 전문기술을 배우는 것 못지않게 자기 이해를 위해 충분한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곳에서 학생들이 나의 경험을 하나의 밑거름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교수로서 내가 경험할 수 있는 충만한 기쁨이 될 것이다.

 

신동은 대전보건대·교양과
연세대 교육학과에서 박사를 했다. 주요 논문으로「『소학』의 교육적 원리 연구」등이 있으며, 고등직업교육 정책 관련 연구에 관심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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