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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칼럼] 형법, 지금이 전면 개정할 때다
[원로칼럼] 형법, 지금이 전면 개정할 때다
  • 이영란 숙명여대 명예교수·형법학
  • 승인 2014.10.14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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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란 숙명여대 명예교수·형법학
범죄와 형벌을 정하고 있는 우리 형법은 1953년에 처음 제정됐다. 그동안 수차 땜질식 개정이 이뤄져 왔으나 기본 골격은 제정 때 그 모습 그대로다. 60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 사회는 새삼스럽게 설명하지 않아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달라졌다. 제정 당시 20대 젊은이들이 이미 80세가 넘었고 웬만한 어른들, 그때 그 사람들은 이 세상에 없으니 세상이 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요즘 신세대는 ‘신인류’라고 표현할 정도로 구세대와 사고방식이 다르다. 가족, 남녀평등, 병역 의무, 재산이나 교육에 대한 개념 등 모든 분야에서 사람들의 생각이 달라졌다. 다시 말하면 행위규범, 재판규범으로서 형법의 전제가 되는 인간상이 현격히 변했다는 것이다.

또한 사회 각 분야, 정치, 경제, 사회, 문화현상도 획기적으로 발전했다. 경제현상을 일례로 들면, 남북분단의 비극과 6·25전쟁 탓으로 형법 제정 당시 우리 국민소득은 1인당 100달러가 채 안 됐으나 지금 우리는 그때의 200배가 넘는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에 살고 있다. 국제관계도 하루가 다르게 변해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요,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기도 한다. 사람이 다르고 세상이 변한 지금이 형법을 전면 개정해야 하는 필요하고도 충분한 조건을 갖춘 때다.

그동안 형법 개정 노력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제정 30년 후, 1984년부터 8년간 전면개정을 준비해서 1992년에 형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나 통과되지 못했고, 그로부터 10년 후인 2002년에, 사법개혁의 일환으로 ‘형벌 체계의 합리적 재정립’이라는 목표 아래 법무부가 형사실체법 정비 차원에서 형법 개정시안을 마련했으나 이때는 웬일인지 국회에 제출조차 하지 못했다. 또다시 2007년 6월, 법무부가 기존의 법무부장관 자문기구였던 ‘형사법개정특별위원회’를 확대 개편해 개정 논의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 특위에서 일단 형법총칙만의 개정안을 마련해 공청회, 입법예고, 유관기관 협의를 거쳐 2011년 3월, 국회에 제출했으나 국회에서 보안 처분에 대한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통과되지 못하고 결국 회기만료로 폐기됐다.

지금 법무부가 다시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나 언제 국회에 제출할 것이며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가 될 것인지도 의문이다. 지금까지의 태도로 봐 법무부도 국회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몸에 맞지도 않는 옛날 옷을 입고 불편하게 지내야 하는지 모를 일이다. 옛날 옷일 뿐만 아니라 사실 우리 옷도 아니다. 독일과 일본의 형법을 참조해 거의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기 때문이다.

범죄가 문화의 어두운 면의 반영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어느 국가나 공통된 보편적인 문화가 있는가 하면 각 국가의 독특한 문화도 있다. 범죄현상도 국가마다 보편성과 특수성을 갖는 것이니만큼 선진국 입법례를 모델로 하는 보편성 위주의 형법에 덧붙여 우리 생활감정에 맞고 우리 문화의식에 맞는 형법, 즉 역사성과 정체성을 지니는 형법이 돼야 한다. 동일국가라도 시대에 따라 문화가 변하고 이에 따라 범죄현상도 변한다. 예컨대 독일국민과 우리 국민은 철학이 다르고 생활방식도 고유문화도 다르다.

독일에서 형법을 공부한 독일박사들이 형법개정위원회의 과반수가 넘어 가뜩이나 창의력 없는 법학자들이 걸핏하면 독일법 사대주의에 젖어 모방하는 풍조가 있다. 쓸데없는 기우이기를 바라지만 정말 그렇게 되면 과거에 일본을 거쳐 수입하던 것을 직수입한다는 의미에 다름 아니다. 이제 겨우 왜색을 탈피하나 싶었는데 독일법을 모방하기에 급급하다면 避獐逢虎, 노루를 피하니 범을 만나는 격이 아니겠는가.

이영란 숙명여대 명예교수·형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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