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8 01:40 (일)
신비주의 사상가 ‘루미’ 숭모에서 비롯 … 우주의 신과 깊은 만남을 열망하는 의식
신비주의 사상가 ‘루미’ 숭모에서 비롯 … 우주의 신과 깊은 만남을 열망하는 의식
  • 우덕찬 부산외대 터키·중앙아시아어과
  • 승인 2014.10.07 15: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중해이야기 24_ 터키의 명상 춤 ‘세마(Sema)’

▲ 터키의 명상 춤 세마 사진출처=위키피디아

루미는 관용과 상생이라는 두 축으로 이슬람을 재해석해 그의 넓디넓은 이슬람 신비주의의 자락 속으로 인류를 품어 안았다. 심지어 비 무슬림 이교도들이나 무신론자들에게까지 구원의 손길을 펼쳐 인류 공동체가 상호존중과 화해를 통해 함께 사는 진정한 지혜를 제시했다.

지난 2007년 유네스코는 터키가 배출한 한 중세 사상가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그가 바로 탄생 800주년을 맞은, 용서와 낮춤의 가르침으로 세상을 깨우친 인류의 대스승 메블라나 잘랄레딘 루미(Mevlana Jalaleddin Rumi, 1207~1273)다. 그로부터 유래된 것은 비단 사상적인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다. 명상 춤 ‘세마(Sema)’는 일명 메블라나(Mevlana)라고도 부르는데, 터키의 대표 무형문화재 중의 하나다. 이 명상 춤은 터키의 위대한 이슬람 신비주의(Sufism) 사상가 메블라나 잘랄레딘 루미의 사상을 추종하는 종교의식에서 비롯됐다.


그가 활동하던 13세기 중엽 중동지역은 십자군 전쟁과 몽골 침략이라는 역사적 격변으로 민중들은 좌절하고, 삶의 기반이 초토화되고 있었다. 그때 루미는 진정한 영적 지도자로서 갈 길을 잃은 백성들을 품어 안고 적게 먹고, 적게 마시며 아무렇게나 옷을 걸치고 기존의 권위와 형식에 맞섰다. 그의 주변에는 암울한 시대를 헤쳐 나가려는 추종자들과 제자들이 모여들었으며 명상과 기도를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이슬람 본질에 다가가려 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아랍어로 기술된 알라의 말씀인 꾸란(코란)은 비 아랍권인 터키와 이란을 거치면서 민중들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경전이 돼 버렸다. 더욱이 오해와 왜곡을 막기 위해 다른 외국어로 꾸란 번역을 금지하자 이슬람은 아랍 중심의 지배자와 엘리트 계층만을 위한 신앙적 도구로 전락해 가고 있었다. 이에 메블라나 루미는 꾸란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도 누구나 일정한 영적 수련을 통해 신의 영역에 들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열어줬다. 세마라는 독특한 회전 춤을 통해 누구든지 신의 의지를 경험하고 궁극적으로는 신과 일체감을 이루면서 이슬람의 오묘한 진리를 체득할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그의 사상은 민중들에게 대단한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지구촌 전역에 커다란 영적 영향력을 끼쳤다. 무엇보다 토착종교와 관습들을 존중한 그의 사상은 공존과 상생에 기초하고 있었다. 그리스 철학과 과학적 방식들이 도입되고, 다양한 신앙과 토착 관습들이 존중됐다. 그는 관용과 상생이라는 두 축으로 이슬람을 재해석해 그의 넓디넓은 이슬람 신비주의의 자락 속으로 인류를 품어 안았다. 심지어 비 무슬림 이교도들이나 무신론자들에게까지 구원의 손길을 펼쳐 인류 공동체가 상호존중과 화해를 통해 함께 사는 진정한 지혜를 제시했는데 특히 용서와 관용을 강조했다.


▲ 메블라나 잘랄레틴 루미
메블라나의 철학 사상에서 가장 기본적인 사고는 신이란 우주 안에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존재이지만 사람의 마음에는 들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머리보다 마음을 더 중요하게 여기며 “오라! 네가 누구든지. 무신론자든지. 불을 숭배하는 자든 백번이나 너의 맹세를 깨었어도 어느 누구든지 오라!”고 외쳤다. 메블라나는 “학자들은 빵을 한 바구니 들고 있는 자와 같다. 그러나 한 사람이 빵을 최대한 얼마나 먹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면서, 학자들의 지식을 높게 사지 않았다. 메블라나는 당시 콧대 높은 학자들과는 달리 평민들에게 많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었고, 당대의 학자들이 추종할 수 없는 깊은 사상 철학체계로 후대에 영향을 끼친 터키인의 자랑스러운 인물로 평가된다. “오라, 오라! 믿는 자도, 믿지 않는 자도 불을 섬기는 자도, 뱀을 섬기는 자도 다 내게 오라. 내가 너희를 품어 안으리라. 용서하라, 용서하라, 일백 번이고 용서하라. 인간은 용서할 수밖에 없나니, 용서하지 않을 권한은 다만 신의 영역이거늘….” “지구상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있느냐. 그들이 알라에게 다가가는 길도 그만큼 많을 수밖에….”


그의 이러한 종교관은 독선과 종교적 도그마를 뛰어넘는 놀라운 포용력이고 종교적 관용이다. 루미의 상생의 리더십과 포용의 이슬람 정신은 아랍의 경계를 넘어 세계로 퍼져갔고, 다른 종교와 서로 섞이고 공생하면서 오늘날 비아랍 세계에 단단한 뿌리를 내렸다. 그의 가르침은 종교를 뛰어넘는 사랑이었고, 인류 모두에게 존경을 받았다. 1273년 루미가 서거하자 모슬렘뿐만 아니라 기독교, 유대교, 힌두교, 불교, 조로아스터교 신자들이 40일간이나 되는 장례에 모두 하나같이 애도하고 참여했다는 일화는 진정한 지도자의 덕목을 잘 보여준다.


그의 사상과 낮은 곳으로 향한 사랑은 유럽 지성세계에도 큰 영향을 끼쳤는데 16세기 르네상스 인문주의자 데시데리우스,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 17세기 화가 렘브란트, 18세기 작곡가 베토벤, 19세기 대문호 괴테 등도 직·간접으로 루미 사상에 영향을 받은 유럽 지성들이었다. 그는 자기와 다른 생각, 다른 모습을 가진 사람들을 이해하고 끌어안음으로써 세상을 바꾸고자 했으며 그로 인해 중앙아시아는 물론 동남아시아, 인도, 북아프리카 등지에 이슬람이 대중적 종교로 뿌리를 내리는 계기가 됐다.


바로 이러한 메블라나의 사상을 추종하는 종교의식에는 세마라고 불리는 명상 춤이 있다. 이것은 이슬람의 신비주의자들이 전통적으로 행하는 의식으로서 우주의 신과 융합하는 의식이다. 영적으로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명상 춤을 추면서 무아지경에 빠지게 된다. 춤을 추는 사람들을 세마젠(Semazen)이라고 부르는데 이들은 흰색의 긴 치마를 입고 위에는 수의를 뜻하는 흰색 저고리를 입고 그 위에 무덤을 상징하는 검은 망토를 입는다. 세마젠들이 머리에 쓰는 갈색이나 흰색인 뾰족한 모자는 묘비를 의미한다. 셰이히(Şeyh)는 메블라나의 사상을 지상에서 추종하는 사람으로 머리에 터번을 쓴다.


명상 춤의 시작은 함께 기도를 한 후 네이(터키 피리)를 불기 시작하면서 시작된다. 이 춤은 피리와 북소리에 맞춰 터키어로 된 수피 노래인 일라히(İlahi)라는 찬송을 부르며 디크르(Dhikr, 알라를 염원하는 명상 기도)를 준비한다. 디크르가 시작됨과 동시에 두터운 긴치마를 입은 세마젠들이 1시간에 가깝게 쉬지 않고 거의 제자리에서 회전 춤을 춘다. 그 절정의 순간에 정신적 스승인 셰이히가 춤추는 사람들 사이에 모습을 드러내 갈대로 만든 피리 네이를 부는 것으로 끝이 난다. 네이 소리는 신에 대한 그리움을 나타낸다고 한다. 세마젠들은 먼저 셰이히의 손에 입맞춤을 한다. 그후 우주를 향하는 여행객처럼 천천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우주를 향하는 춤 여행은, 먼저 무덤에서 나와서 우주의 신에 대해 의식이 준비됐음을 알리기 위해 망토를 벗는다. 명상 춤은 한 손을 위로 향하고, 또 한손은 아래로 향하는데 이것은 신으로부터 받은 축복을 세상 사람들에게 널리 전함을 표현하는 것이다.


명상 춤은 처음에는 천천히 돌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차츰차츰 더 빨리 돌기 시작한다. 빠른 물살이 깊은 웅덩이를 만들 듯이 빠른 회전을 통해 우주의 신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고 보는 사상의 표현이다. 메블라나의 사상은 분명 정통적인 이슬람 사상과는 사뭇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터키인들은 메블라나의 사상에 깊은 매력을 가지고 있다. 매년 12월이면 콘야(Konya)에서 메블라나 축제가 열린다. 이 때, 우주의 신과 깊은 만남을 열망하는 메블라나 추종자들의 숙련된 춤을 관람할 수 있다.

 

 

우덕찬 부산외대 터키·중앙아시아어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