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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를 잃게 되면우리 자신도 잃게 된다”
“언어를 잃게 되면우리 자신도 잃게 된다”
  • 장니나 부산외대 지중해지역원 HK연구교수
  • 승인 2014.09.16 16: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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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이야기 23_ 옥시탄어와 프랑스의 언어정책

▲ as de Bouffon-남프랑스 엑상 프로방스에 있는 ‘자 드 부퐁’(이 지역어로 ‘바람의 전원시’라는 의미임) 전경 사진 장니나

소로소로(SOROSORO)는 전 프랑스 대통령인 자크 시락이 만든 소수 언어 보호를 위한 재단으로 폴리네시아의 바누아투 섬에 거주하는 여덟 명의 話者뿐인 아라키 ‘언어’에서 유래했다.
사회언어학자들은 아라키어와 같이 세계에서 언어의 생태를 위협받는 소수어가 점점 증가하고 있음에 우려를 표명해왔다. 지구상의 500여개 언어는 화자수가 겨우 100명 남짓하고 전 세계 인구의 10%가 전체 사용되는 언어의 90%를 장악하고 있으며 인터넷상에서는 12개 언어만이 정보를 독식하고 있음이 2009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세계모국어대회(JILM:la Journ´ee internationale de la langue maternelle)’에서 지적됐다. 이 학술대회는 유네스코의 10여년 연구와 맥을 같이하며 ‘위험에 처한 세계 언어들’이란 주제로 2008년 ‘세계 언어의 해’에 전 세계에서 이뤄진 연구들을 발표하고 토론하는 자리였다. 이 대회에 참가한 이들은 이른바 다언어주의, 언어의 다양성, 위기에 처한 언어를 조사하고 보호하며 후대의 자산으로 물려주기 위한 정책과 방안들을 모색했다.


예컨대 옛 프랑스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말리는 1979년부터 프랑스어를 포함한 국가어 개념을 도입해 여러 언어를 이중 언어 교육 방법으로 수호하고자 했다. 이들은 1987년 벨기에의 시청각 연구센터가 개발한 ‘집중 언어교육’을 적용한 결과 피교육자들의 77%가 학력측정 시험에 통과하는 쾌거를 거두자 2005년부터는 이를 표준화된 국가프로그램으로 도입하고 있다. 상호문화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이중 언어교육 시스템을 적용하고 있는 페루는 1952년 모국어 교육에 관심을 보이면서 1975년에는 소수어인 케츄아어를 인정했으며, 1994년에는 국가의 문화와 민족의 다원성을 전제로 언어와 교육에 대한 권리를 제시하기도 했다. 그 결과 2000년에 이르러 94개의 교과서가 출판되고 1만여명의 소수어 언어 교육자를 양성해냈다.

‘세계가 언어를 잃어버릴 때마다 우리도 우리 자신의 일부를 잃어버리게 된다’는 슬로건은 언어를 보편적 휴머니즘과 자연생태 보호의 시각에서 다뤄야 함을 의미한다. 언어는 전통문화와 민족의 창조적 산물이며 상호 소통과 인지를 통해 세계의 가치관을 만들어 나가야 하는 성찰의 도구이므로 언어를 배움으로써 세상을 향한 다른 비전과 접근이 가능하게 된다. 이와 관련해 2000년부터 진행된 연구 성과를 담고 있는 JILM보고서는 한 나라 혹은 지역에서 여러 모국어가 평화적으로 공존할 수 있도록 ‘언어는 우주이며 각 언어는 행성’이라는 설명을 통해 언어 간 교류와 다문화 공간을 인터넷 상에서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언어의 존중 속에는 소수어, 지역어, 이민자들의 언어, 수화, 점자의 보호도 포함돼 있다.

유럽은 1970년대 초반 회원국들의 타 문화를 알기 위한 다양한 언어 교육을 진행했는데, 사회언어학, 화용론, 언어학의 제 이론들을 바탕으로 18명의 전문연구자들이 유럽의 공동 언어교육 프로젝트를 완성하는 데 이르렀다. 이후 이민자들의 언어를 이중 언어 환경을 고려한 의사소통방법론으로 보완했으며, 1990년대에 와서는 범유럽(paneurop´een)을 내세워 유럽에서 통용되는 모든 언어들 속에 소수어, 지역어를 포함시킨 언어정책을 ‘언어, 다양성, 시민’을 기치로 한 문화교육으로 확장하고 매년 9월 26일을 ‘유럽 언어들의 날’로 기념해 다양한 언어들을 수호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유럽인들에게 다원 언어·문화 능력을 교육하고 이를 평가하기 위한 공동의 기준도 마련했다.

1992년에 제정된 ‘유럽 지역어 및 소수 언어 헌장’이 바로 사라질 위험에 처한 유럽의 소수 언어 유산을 보호하고 소수 언어권 및 개인의 언어 권리를 인정하려는 정책으로 유럽 연합회원국들의 비준을 받고 있다. 이 헌장은 오랫동안 음지에서 활동한 지역어 수호단체에게는 획기적인 전기가 됐지만, 프랑스어를 유일한 국가어로 삼고 있는 프랑스 정부에는 민감한 사안이어서 비준까지는 진통을 겪었다. 1997년에 프랑스는 여러 지역어와 교육 상황에 대한 평가 보고서인 「지역어와 문화들」을 마련하고 헌장이 프랑스 헌법에 부합하는지에 대한 법률적 평가 보고서를 제출해 각계각층에서 논의들을 거친 후 1999년 헌장의 98개 조항 중 39개 조항에 서명함으로써 유럽 헌장이 요구하는 최소한의 조항들을 충족시켰다. 다양한 소수어·지역어와 이민자들의 언어가 공존하는 프랑스는 첫 언어정책이었던 빌레르 코트레 칙령(1539년)에서 대혁명시기(1790년)까지 프랑스어 표준화 정책을 유지해온 반면, 비시정부(1941년)와 덱손법(1951년)을 통해 지역어 교육을 승인해 법적 근간을 마련했으나 바로 시행하지는 않다가 1966년에 비로소 지역어 교육을 위한 학구 위원회가 생겼다. 이후 바-로리올법(1975년)에서 투봉법(1994년)까지 프랑스어 사용관련법이 제정돼 공화국과 국민단결의 언어로 프랑스어 사용을 의무화했는데 이는 유럽연합의 지역어 및 소수 언어 보호정책을 부정하는 것이어서 갈등을 빚게 됐다. 그러나 이 문제는 결국 1999년에 프랑스의 지역어들을 지역 내의 보물만이 아니라 프랑스 전통 문화 유산으로 재정의하는 선에서 일단락되고 말았다. 프랑스가 취한 ‘하나의 모국어정책’은 대혁명의 혼돈 속에서 여러 지역어들의 공존이 정치적 통일에 저해요소가 되는 것으로 판단돼 초등학교를 의무교육으로 지정하고 프랑스어로 교육할 것을 공시하면서 시작됐다.

 1790년에 실시된 한 조사를 보면, 전체 인구 2천500만명 가운데 파리와 주변인 일 드 프랑스 지역에서 사용되던 ‘지역어’인 프랑스어 사용자는 겨우 3백만 명 뿐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나머지 2천200만명의 다른 지역어 화자들에게는 커다란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특히 당시 프랑스 지역어의 양대 산맥이었던 북부의 오일-프랑시엥어권(프랑스어)과 남부의 오크-옥시탄어권(옥시탄어)의 대립은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보일 정도였다. 오늘날 프랑스 남부와 스페인, 이탈리아의 일부에서 보호·수호되고 있는 옥시탄어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지역어 중의 하나로 국제적 연대 속에서 과거 중세에 문학을 중심으로 화려하게 꽃피웠던 옥시탄 문화권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옥시탄어를 보존하고 후대에 물려주기 위해 1802년부터 번역과 사전편찬 작업을 시작으로 끊임없는 노력들이 이어져오고 있다. 이는 지역이 지역어를 지켜내기 위해 국가와 투쟁한 결과이며 그 밑바탕에는 이곳 출신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이기도 한 프레데릭 미스트랄(Fr´ed´eric Mistral)과 그가 주도한 펠리브리즈(F´elibrige) 운동이 있었다. 과거 17세기부터 식민지 정책과 관련 깊었던 프랑스의 언어정책은 1950~60년대에 식민지 국가들이 독립하거나 혹은 프랑스 해외영토로 남게 된 후 1962년 세네갈 초대 대통령이자 시인인 생고어(Sengor)가 「세계 속의 프랑스어」라는 제목으로 글을 기고하며 ‘프랑코포니(la francophonie: 프랑스어사용문화권)’로 재탄생됐다. 이는 이미 1880년에 프랑스 지리학자인 오네지슴 르클뤼가 사용했던 개념에 대한 재조명으로 5개 대륙에서 사용되는 프랑스어와 각 나라의 모국어들을 동시에 존중하는 다양성의 가치로 나아가게 됨을 의미한다. 프랑스의 지역어, 과거 식민지의 언어들에 이어 19세기부터 활발했던 이민을 통한 여러 이민자들의 언어 또한 보호받아야 하는 소수 언어다. 이들 소수어·지역어 등에 대한 관심과 보호 노력들은 다양성 존중을 표방하는 상호문화차원에서의 통합을 지향하는 프랑스 언어정책의 한 모습이다.

 

 

 

 


장니나 부산외대 지중해지역원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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