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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로빈슨 크루소
현대의 로빈슨 크루소
  • 교수신문
  • 승인 2014.09.15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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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프랑스 작가 미셸 투르니에가 1967년에 발표한 소설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은 영국작가 대니얼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에 대한 ‘다시쓰기’이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원작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근원적인 고독의 문제를 다루면서도 문명과 자연, 서양인 로빈슨과 원주민 프라이데이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작가는 이 소설에서 자연은 결코 지배의 대상이 아니며 서구인이 원주민보다 우월한 능력을 지녔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는 생각을 말한다.


좀 더 유추해보면 이 소설에는 근대에 이르기까지 자연을 파괴하고 타민족을 식민지화 했던 로빈슨 크루소로 대표되는 서구인들의 반성적 시각이 나타나 있다. 미셸 투르니에 말고도 1719년 대니얼 디포가 『로빈슨 크루소』를 세상에 내놓은 이래 서구의 수많은 작가들이 ‘인간의 고립과 고독’을 주제로 원작 소설을 변주해왔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파리대왕』의 작가 윌리엄 골딩과 『포』의 존 쿳시 모두 무인도를 배경으로 현대의 로빈슨 크루소 이야기를 썼으니 ‘고독’이라는 주제는 어느 시대에나 존재하는 보편적인 문제로 볼 수 있을 것이다.

2003년 4월 1일 홍콩의 만다린 호텔에서 영화배우 장국영이 투신해 사망했다는 비보를 접했다. 순간 만우절 농담치고는 조금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만큼 믿기 어려운 소식이었다. 1960~70년대에 ‘할리우드 키드’가 있었다면 8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우리는 ‘홍콩 누아르 키드’였고 그 중심에 「영웅본색」과 장국영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인의 사랑을 받던 스타가 왜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한편으로는 적어도 그가 죽음을 선택했던 그 순간만큼은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외로웠고 절대적인 고독의 순간을 맞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국영을 떠올릴 때면 그가 영화 속에서 아내와 통화하며 죽음을 맞는 장면과 지난 여름 찾은 홍콩의 고층빌딩들의 풍경이 뒤섞이면서 아직도 가슴이 먹먹하다.


지난 4월에는 명동예술극장에서 「한때 사랑했던 여자에게 보내는 구소련 우주비행사의 마지막 메시지」라는 다소 긴 제목의 연극 공연이 있었다. 연극의 내용은 우주 미아가 된 소련의 우주비행사가 느끼는 단절감, 소통의 부재 등이었다. 우주인들은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의 등장인물들처럼 교신이 끊긴지 이미 오래된 지구에 어쩌면 무의미할 수도 있는 메시지를 보낸다. 우주 미아에 관한 이야기는 연극이 아닌 현실에서도 실재했다. 소련의 우주 비행사 세르게이 크리칼레프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우주정거장에서 총 803일을 머물러 최장시간 우주비행 기록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불행히도 그 기간 중 150여 일은 우주정거장 미르호에서 고립돼 보낸 시간이었다. 물론 그가 우주정거장에 간 것은 자발적인 선택이었겠지만 우주미아가 될 뻔했던 사건은 사고가 아닌 소련의 붕괴 때문에 일어났다. 그가 미르호에 머물던 1991년 소비에트연합이 해체됐고 그의 귀환 계획도 기약 없이 미뤄졌다. 그는 지구와 교신을 하고 1주일마다 가족과 통화를 하면서 외로움을 견뎠다고 한다. 물론 그는 지구로 다시 귀환했고 또 다시 우주로 나갔지만 야자수도, 푸른 바다도 없는 철제 공간 속에서 그가 느꼈을 외로움은 무인도의 고독 그 이상이었을 것이다.


『로빈슨 크루소』의 주인공은 외딴섬에서 28년을 홀로 살았다고 하지만 인간이 그런 시간을 혼자 견딜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대니얼 디포의 소설이 나온 지 300여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유사한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재생산 되는 것을 보면 인간에게 고독은 영원히 넘어설 수 없는 근원적인 문제인 듯싶다.
프랑스에 처음 유학을 갔을 때 놀라웠던 일은 법적으로 결혼을 하지 않은 동거 커플이 결혼의 한 형태로 인정받을 정도로 많다는 것이었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조차 동거 커플이었으니 말이다.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 중에는 처음부터 독신이었거나 젊은 시절의 동거 후에 다시 독신이 되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그러다 보니 혼자 사는 노인의 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다. 노인들 중에는 가족 없이 혼자 지내다 죽고, 죽은 지 오랜 시간이 지나 발견되는 일도 다반사다. 가까운 일본에도 ‘孤獨死’하는 사람이 늘고 있고 유품을 정리해주는 업체도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홀로 죽음을 맞은 뒤 몇 달 만에 발견되는 사람에 관한 소식이 더 이상 충격적이지 않은 현실이 됐다.


현대 사회에도 수많은 로빈슨 크루소들이 존재한다. 309일 동안 크레인 위에서 고공농성을 했던 민주노총 김진숙 지도위원이 느꼈을 외로움은 무엇이었을까. 자살을 결심한 장국영이 만다린 호텔 24층에서 지상을 내려다보며 느꼈을 절망감은 무엇이었을까. 홀로 죽음을 맞은 노인에게는 어떤 어린 시절과 청춘이 있었을까. 현대인들이 느끼는 외로움과 고립을 생각하면 로빈슨 크루소의 무인도는 어쩌면 낭만적인 풍경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박아르마 건양대·불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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