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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그래프의 가치
모노그래프의 가치
  • 허남린 논설위원/브리티시-콜럼비아대·아시아학과
  • 승인 2014.09.15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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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허남린 논설위원/브리티시-콜럼비아대·아시아학과

▲ 허남린 논설위원
한 주니어 교수의 테뉴어 및 승진심사에서 잠시 논의된 사항이다. 모노그래프(전문연구서적)와 논문을 어떠한 비중으로 평가할 것인가에 관한 논의였다. 생사를 가르는 논의였지만, 결론은 금방 났다. 논문 20편을 모노그래프 한 권의 값으로 평가하자는데 이의를 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논문이 자전라면, 모노그래프는 자동차다.

명성이 있는 대학의 경우 인문학의 세계에서는 대부분 모노그래프가 학자의 운명을 좌우한다. 여기에서 ‘대부분’이라고 한 것은 반드시 그렇지 않은 경우도 종종 있다는 뜻이고, ‘학자의 운명’이란 해당 학자의 테뉴어와 승진을 지칭한다. 불행하게도 북미의 한국학 세계에서는 이러한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꽤나 있다. 즉 변변한 모노그래프 없이 테뉴어를 받거가 승진을 하는 경우가 있다는 뜻이다. 왜 그러한지의 이유는 다음 기회에 다루겠다.

모노그래프는 일반적으로 독창적인 연구에 기초해 단독으로 저술한 적어도 250페이지 이상의 분량으로 대학출판부에서 출판된 전문학술서적을 말한다. 한 학자의 일생은 모노그래프를 따라 성장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첫 번째 모노그래프로 부교수로 승진되면서 테뉴어를 받고 (대학에 따라 다른 제도도 있지만), 두 번째 모노그리프로 교수로 승진된다. 대부분의 교수들은 평생 모노그래프 두 권을 쓰고 학자의 일생을 마감한다. 세 번째, 네 번째 모노그래프를 출판했다면 대학자가 된다. 특히 한국학과 같은 지역학을 하면서 이러한 반열에 드는 학자는 아주 드물다.

어떤 조사결과에 따르면, 북미에서 인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그 박사논문을 모노그래프로 출판하는 학자는 전체의 10% 정도라고 한다. 그만큼 쉽지 않다는 뜻이다. 에너지가 가장 왕성한 연령대의 학자가 자신의 박사논문을 모노그래프로 발전시켜 출판하는데 드는 시간은 평균 10년, 그리고 두 번째 모노그래프의 출판에는 적게는 10년에서 20년도 걸릴 수가 있다. 적어도 10년 이상 한 주제에 대해 집중 연구를 하며 온 정열을 쏟아야 제대로 된 한 권의 모노그래프를 출판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많이 쓴다고 그냥 출판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출판된 논문을 모아 내는 것도 있을 수 없다.

평생 겨우 두 세 권의 모노그래프 밖에 출판하지 못하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두 세권의 모노그래프를 내기 위해 다른 인생을 내려놓는 학자들도 많다. 그들이 능력이 없어 그 정도 밖에 생산해내지 못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도 몇 억이 되는 인구집단에서 선별된 학자들이기 때문이다.

북미의 대학출판부는 까다롭다. 원고의 심사, 채택 및 출판절차가 복잡하고 그리고 한 과정 한 과정에 많은 정성을 쏟아 붓는다. 학문의 수준을 담지하고 진전시킨다는 자부심이 있다. 돈을 벌기 위해 출판부를 운영하는 연구중심대학은 없다. 상업적 출판은 시중의 몫이다.

그러나 모노그래프의 품질은 천차만별이다. 200페이지의 얇은 책에서 600페이지의 대작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2~3년이면 잊힐 책에서부터 한 세대 두 세대에 걸쳐 큰 영향을 미치는 저작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럼에도 모노그래프의 출판은 그리 쉽지 않다. 10년 연구해서 나오는 한 권이라면, 이를 논문 20편과 등가로 메기는 것은 모순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허남린 논설위원/브리티시-콜럼비아대·아시아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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