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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 중요한 것은 ‘어디에’ 있는지가 아니다
[학문후속세대의 시선] 중요한 것은 ‘어디에’ 있는지가 아니다
  • 김혜란 광주과학기술원 박사후연구원
  • 승인 2014.08.18 13: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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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란 광주과학기술원 박사후연구원
거창한 것을 작성할 능력도 없거니와 지금의 내게 가장 현실적인 이야기는 나의 사회적 위치와 자리에서 느끼는 진솔한 감정이라는 생각에 지난 1년간의 박사 후 과정 생활과 느낌을 공유하려고 한다.  

2013년 8월, 박사학위를 받고 드디어 졸업을 했다. 스무살 때부터 서른넷이 될 때까지 학사과정, 두 번의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을 거치면서 기나긴 시간을 학생으로서 보냈다. 공부에 끝은 없겠지만 더 이상 다른 전공으로 바꾸지 않는 한 공식적으로 이제 학생이 될 일은 없는 셈이다. 그리고 나는 바로‘박사 후 연구원’이라는 이름으로 첫 출근을 했다.

첫 출근의 기분은? 같은 학교, 같은 연구실. 늘 보던 선후배들, 특별한 설렘이 있을 리 만무했다. 개인적 사정, 진행 프로젝트의 마무리 등 모든 이유를 차치하고서라도 우선은 국외로 포스닥을 나가는 동기들을 보면서 마냥 부러웠다.

국외 포스닥이라는 것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국내에 남아있는 것에 대한 조급함은 생각보다 컸다. 나만 뒤처지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과 함께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앞섰다. 마인드컨트롤 을 할 시간이 필요했다.

졸업 후 내가 지금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연구하고 있다면 난 어떤 마음일까. 뛰어난 사람들 사이에서 딱 죽지 않을 만큼의 에너지만 남기고 하루하루를 소진할지도 모르겠다. 공포의 ‘아웃!’이라는 단어를 듣지 않으려면 분명 그리 살았을 법하다.

그런데 이곳 국내의 연구 환경 역시 충분히 훌륭한 연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우수한데 나는 왜 여기서는 그렇게 살지 못하고 남들을 부러워만 하고 있는 걸까. 결국 문제는 환경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대충 하루를 보내려고 하는 안일한 마음을 갖는 것도, 연구에 대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놓지 못하는 것도 결국 나 자신이다. 외국에 나가기만 하면 없던 아이디어가 샘솟기라도 한다던가. 결국 사람은 적응이라는 것을 하게 될 것이고 처음의 의지 충만했던 모습은 서서히 사라질 게 뻔하다. 학위과정 동안 보람 없이 보냈던 그 어떤 날을 돌이켜 본다면 결국 외국에서의 내 모습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박사후연구원으로서의 시작점에서 나는 좀 더 힘을 내 보기로 했다. 처음으로 연구비도 신청했다. 한번은 서류 통과도 하지 못해 적잖은 실망감도 느껴봤고 학위과정 동안 그저 내 연구에만 몰입하며 이것이 전부인줄 알았던 내게 경쟁사회로의 출발과 더 큰 그룹에 나를 던진다는 것 또한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도 몸소 느꼈다.

또 한편으로는 다행스럽게도 과분한 연구비를 받게 돼 기쁨과 동시에 큰 부담감을 갖게 됐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하는 박사후연구원의 모습으로 생활하고자 했다. 흔히들 말하는 실험 테크닉도 완숙된 상태이며 보다 논리적인 사고로 생물학적 현상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진 것이 지금 이 시기가 아니겠는가.

물론 실패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난 1년 사이 나 역시 분명 실패로 인한 고통도 느껴봤다. 하지만 그것을 극복하고 빨리 방향키를 틀 수 있는 결정력으로 풍성하게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시기가 바로 지금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디에 있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냐는 것이니까.

대통령 Post-Doc. 펠로우십 면접에서 왜 국내에서 박사후연구원을 하게 됐냐는 질문에 “꼭 외국에 나가지 않아도 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대답했다. 그것이 1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면서 여전히 내 마음에 자리잡고 있는 신념이고, 그동안의 노력은 가치 있는 연구결과가 말해줄 것이라 믿으면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김혜란 광주과학기술원 박사후연구원
광주과학기술원에서 석·박사를 하고, 현재 면역세포의 활성과 이동에 관여하는 단백질 기능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2013년 대통령 Post-Doc. 펠로우십에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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