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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소양이란 무엇인가?
과학적 소양이란 무엇인가?
  • 교수신문
  • 승인 2014.07.15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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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 서강대 교수의 (<교수신문> 739호 ‘대학정론’)에 대한 반론

반론과 반박
<교수신문> 739호 이덕환 논설위원(서강대 화학과)의 대학정론 ‘문·이과 통합, 접근이 틀렸다’를 읽고 박병기 한국교원대 교수(윤리교육과)가 반론을 제기해왔다. 박 교수는 “이 교수의 논의가 2015 교육과정 개정과 관련된 적절한 문제 제기라고 보면서, 다만 이 교수의 글에는 사실과는 다른 주장도 일부 포함돼 있어 다른 관점에서 문제 제기를 했다”라고 밝혔다. 문·이과 통합 논의를 넘어, 2015 교육과정 개편 문제까지 다양한 의견을 기대하면서, 반론과 이에 대한 재반론을 싣는다.

 


래를 이끌어갈 세대에게 어떤 비전을 제시하고 그 비전을 구현할 수 있는 어떤 구체적인 역량을 길러줄 것인가 하는 문제는 교육의 가장 오래된 쟁점이자 늘 새롭게 부각되는 현재적 쟁점이기도 하다. 특히 21세기 초반 한국사회와 같은 격변의 사회 속에서 이 쟁점을 다루기 위해서는 어느 한 쪽에 기울지 않는 균형 감각이 필수적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이덕환 교수의 ‘문·이과 통합교육과정 재구성’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문제 제기는 과학자들의 교육에 대한 관심을 일정하게 대변할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관심과 문제 제기는 두 가지 전제 조건을 충족시킬 때 비로소 그 의미가 살아날 수 있다. 첫째는 그 쟁점과 관련된 사실에 근거한 문제 제기여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자신과 다른 관점을 수용할 수 있는 허용성과 개방성을 전제로 하는 문제 제기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오히려 상황을 왜곡하거나 불필요한 영역 다툼 같은 충돌을 가져올 수 있다.


이 교수의 열정적인 문제 제기에 포함돼 있는 우려스러운 지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학생들이 싫어하는 수학·과학을 굳이 가르칠 이유가 없다는 시대착오적 발언을 하는 교육학자들’ 같은 발언에서 보이는 일종의 허수아비 공격의 오류이고, 다른 하나는 고등학교 이하 수준에서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과학적 소양에 포함돼 있는 인문사회적 속성에 대한 의도적인 무시 또는 경시 문제다.


나 자신을 포함해 주변에 있는 어떤 교육학자나 교과교육학자도 단지 학생들이 싫어한다는 이유만으로 가르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학생들이 싫어하더라도 꼭 필요하다면 가르쳐야 한다는 것은 교육학과 교과교육학의 기본 상식이다. 다만 그 관점에서 문제 제기를 한다면, 그동안 특히 과학계가 주도가 돼 강하게 밀어붙인 창의·인성교육에서 인성교육 영역은 지속적으로 축소되고 창의교육 또한 지나치게 어려운 대학 수준의 과학지식만을 강조함으로써 왜곡되고 있다는 비판은 가능하다.


두 번째 문제는 이 교수가 강조하고 있는 과학적 소양, 즉 “현대과학의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에 감동할 수 있고, 첨단기술의 정체와 사회적 가치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으며 과학기술과 관련된 사회적 문제에 대해 독자적인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소양이 지니고 있는 인문사회적 속성에 대한 경시 또는 의도적 무시다. 과학적 소양은 현대과학의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은 물론 과학기술이 우리 삶과 사회에 미치고 있는 긍정적, 부정적 영향에 대한 비판적 안목을 반드시 포함해야만 하고, 바로 그러한 비판 능력은 인문사회적 소양의 핵심 영역을 이루는 요소다.


인문사회적 소양은 스스로의 삶에 대한 내면적 성찰 능력과 공동체 구성원들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능력으로 이뤄진다. 그 外延 속에 과학적 소양 또한 당연히 포함되고, 그런 점에서 최근 과학적 지식이 지나치게 강조되는 과학과목이 아닌 ‘융합과학’은 그 자체로 인문사회적 속성을 지닐 수밖에 없다. 그런데 현재 우리의 교과목 구성과 교육현장은 국·영·수 위주로 운영되고 있고,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든지 개선하는 것을 이번 개정의 목표로 삼아야만 한다.


이 교수가 강조하는 또 다른 축인 수학은 이미 이 국·영·수 부분에서 충분히 강화돼 있고, 오히려 어떤 수학을 학습자 발달 수준에 맞게 가르쳐야 하는 실천적 과제가 남아있을 뿐이다. 우리 사회가 문·이과라는 낡은 틀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누구나 공감한다. 다만 그 과정에서 인문사회라는 광범위한 영역과 과학이라는 한 영역 사이의 산술적인 평등만을 강조하는 방식의 논의는 피해야 한다. 그것은 또 다른 과목 또는 영역 이기주의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문 영역의 하나인 ‘한국사’를 필수과목으로 만들어놓음으로써 상대적으로 과학 영역이 축소되는 결과를 빚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면서도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해 그 ‘한국사’까지를 포함하는 개방되고 실천적인 논의가 전개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박병기 한국교원대·윤리교육과
필자는 동양윤리교육학회장으로 있으며, 국가생명윤리위원회 전문위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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