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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칼럼_ 나의 세대 다음 세대
원로칼럼_ 나의 세대 다음 세대
  • 이정용 인하대 명예교수·경제학
  • 승인 2014.03.24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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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용 인하대 명예교수·경제학
나는 2014년 2월 말로 정년퇴직했다. 올해 퇴직자는 1948년생으로, 대한민국 건국 해에 태어나 이론적으로 대한민국의 모든 역사를 경험한 세대다. 우리는 가난한 시절에 태어나 혼란한 시기에 자랐다.

내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은 많은 사람들이 판잣집에 살았다. 일 년에 두 번 정도 목욕탕에 갔으며, 겨울옷에 이가 득시글거렸고, 그래서 가끔 학교에서 DDT 가루를 뒤집어썼다.

마산에서 일어난 3·15 때 난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데모행렬을 멋모르고 따라가다가 눈에 최루탄이 박힌 김주열의 시체도 봤다. 중학교 1학년 때 5·16이 나고, 대학 때는 3선 개헌 반대 데모, 유신헌법 반대로 맨날 휴강이었다. 다행히 나는 졸업과 동시에 모 연구소에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취직했다. 자신이 열심히 일하는 것이 곧 나라를 위하는 길이라는 애국심 교육을 받은 세대로, 야근 수당도 없이 무수히 밤도 새고 주말도 없이 열심히 일했다.

5년쯤 일하니 직업에 싫증이 났다. 다행히 국제기구에서 일할 기회가 와서 미국의 심장부인 워싱턴으로 가게 됐다. 문화적 충격이 컸다. 거기는 아침 9시에 출근해 오후 5시에 칼같이 퇴근하며, 주말은 무조건 쉬고, 아무도 애국심에 호소하지 않았다. 5년쯤 일하다 교수가 되리라 마음먹고 직장을 그만두고 경제학을 공부해 1986년 인하대로 왔다. 열정적으로 열심히 가르쳤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가르친 지 한 3년 후에 우연히 통계학 수강생 중 몇 명에게 “어때, 통계학 쉽지?”라고 물었다. 당연히 “네, 교수님. 수업 참 쉽고 재미있어요”라는 대답을 기대했지만 “교수님, 진실을 원하세요?”라며 수업 내용을 하나도 이해 못하겠다는 청천벽력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내용인즉, 고등학교 때 통계는 2학년 2학기쯤 배우며, 그 때쯤이면 수학을 싫어하는 학생들은 이미 과목을 포기하며, 수능시험에 통계 관련 문제는 평균 두 문제가 나오는데 대체로 4번이 정답이라는 정말 기가 찬 대답이었다.

이후 나는 수업 내용을 확 바꿨다. 수업 진도는 크게 개의치 않고 아예 기초부터 가르쳤다. 많은 젊은 교수들이 열정으로 가르친다. 그러나 수강생들의 이해 상태를 수시로 파악하고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난한 어린 시절과 혼란한 사회에서 청년기를 보낸 해방 전후 세대들이 이제 무대에서 사라진다. 대한민국, 참 많이 변했다. 자동차가 넘치고, 세계 최고의 의료서비스를 받으며, 다이어트 붐에, 예뻐지는 성형 붐이 일고 있다. 우리가 언제 100만명이 넘는 외국인들이 한국을 동경해서 이 땅에 와서 살게 될 줄 알았겠는가.

대한민국 대학 캠퍼스에도 외국 학생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최근 정부당국에서 앞으로 국내 학생 수가 줄어드니 구조조정을 해서 정원을 줄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나는 이 정책에 대해 생각이 좀 다르다. 정원을 줄이는 대신 더 많은 외국 학생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준비 여하에 따라 자비로 한국에 유학을 오겠다는 외국 학생들은 무궁무진할 것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산업화, 정보화, 민주화에 나의 세대가 기여했다고 자부한다. 이제 다음 세대에게 대한민국의 진정한 국제화를 맡긴다.

이정용 인하대 명예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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