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가 정년이 가까워지면 은퇴 후의 생활을 어떻게 보낼까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나의 경우 퇴직하고 3년간 강의를 더 계속해야 되는 형편이라 그 동안에 생각해 보기로 했다. 3년이란 세월이 현직에 있을 때와 달리 정말 화살처럼 지나갔다. 그 동안에 ‘문자학’에 관계된 쐐기문자 자료를 정리 분석해서 인문학 총서 발간에 응모해 『쐐기문자의 생성, 소멸 그리고 판독』 이름의 책을 출판하고 보니 3년이 지나가 버렸다. 겨울방학 시작과 동시에 이제 은퇴가 현실이 됐다. 이때서야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됐다.

은퇴를 하고 나면 그 동안에 꼭 하고 싶었던 일을 해 보든가 아니면 평소에 아주 잘하는 일을 계속하는 것이 제일 좋다고들 한다. 참 듣기에는 꼭 맞는 말이다. 그래서 남들은 여생을 어떻게 보내고 있나 알아보다 보니 한 해가 가고 2014년 새해를 맞이했다. 한 해 동안 관찰해 본 결과 은퇴자들의 생활은 대개 세 가지로 나눌 수가 있었다.

첫째, 지금까지 꾸준히 해왔고 또한 잘해 왔던 전공분야의 연구를 계속하는 경우였다. 강의와 강의 준비로 시간이 부족해서 다음에 시간 나면 꼭 연구해 보겠다고 미뤄 놓은 연구 분야를 이제는 느긋하게 연구에 임하는 경우다. 사실 교수들은 평소 연구습관에 젖어 왔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정년이라 해서 지금까지 매년 논문을 쓰기 위해 읽어 왔던 전공 책을 갑자기 놓기가 쉽지 않다. 특히 인문 사회분야는 서적과 기타 간단한 장비만 있어도 연구 성과를 낼 수가 있으니 즐겁게, 그리고 느긋하게 연구에 임할 수가 있다.

둘째, 연구하는 분야가 아닌 평소에 꼭 해보고 싶었던 일을 하는 경우다. 이 일을 하기 위해 사전에 필요한 자격증과 기술을 연마해서 정년 후에 곧 일을 시작한 경우다. 실수하거나 실패하면 회복과 만회의 기회가 거의 없기 때문에 철저한 준비를 하고 또 했다. 습관이 된 연구자의 자세로 자료수집과 분석 등을 통해서 면밀한 사업 준비로 성공 하는 경우도 많았다.

셋째, 연구를 벗어나 편안한 마음으로 여생을 보내는 경우다. 지금까지 연구하고 읽던 도서를 꼭 필요한 몇 권만 제외하고 도서관이나 제자들에게 기증하거나 처분해 버리고 가뿐하게 은퇴생활에 돌입한다. 도시에서는 바둑, 골프, 서예, 등산, 수영, 낚시 등을 즐기거나 아니면 평소에 건강이 부실했던 사람은 건강 증진이나 치유의 목적으로 시골에 가서 휴양하고, 시골을 동경해 왔던 사람들은 예쁜 전원주택을 짓고 땅을 구입해 무농약 채소 등을 가꾸며 건강을 챙기면서 여생을 보내고 있었다. 

나는 별다른 취미도 없을뿐더러, 또한 좋아하는 다른 일을 막상 해보려고 해도 엄두가 나지 않아 실행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여행은 건강이 허락하지 않고, 시골에 살자 하니 너무 외로울 것 같고, 가끔 시간 보낼 곳도 없어 심심할 것 같고, 또한 현재 가정 형편상 허락되지 않아서 평소에 해왔던 연구를 계속하는 것이 낳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책 읽기와 책 쓰기를 계속하면서 세월을 보내야겠다는 것이다. 오전에 한두 시간, 오후에 한두 시간 정도로 습관처럼 하면 그것도 괜찮은 여가 선용이 아닌가 싶다. 꾀가 나면 몇 일간 책을 접고 쉬기도 하고 가까운 국내여행을 하면서 말이다. 

마침 최근에 내가 평소에 연구하는 ‘문자학’에 큰 사건이 발생해 할 일이 생겼다. 이스라엘의 모 교수가 ‘알파벳의 조상인 원시 시나이 글자를 처음 발명한 자가 엘리트가 아니고 이집트 사막에서 광석 캐던 문맹인 광부들이었다’고 주장하는 논문을 발표해 학자들을 크게 놀라게 했다. 글자를 정말 문맹인 광부들이 발명했을까? 엘리트 출신이 발명했을까? 이것을 밝히는 것도 재미나는 일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나만의 여가생활을 보내고 있다. 

조두상 부산대 명예교수·언어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