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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후이·간양에 대한 저자의 비판은 과연 타당한가?
왕후이·간양에 대한 저자의 비판은 과연 타당한가?
  • 교수신문
  • 승인 2013.12.30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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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신문> 711호 『현대 중국 지식인 지도』(조경란 지음, 글항아리 刊) 리뷰를 읽고

중국이 건국 이후 30년가량 입고 있던 무거운 혁명의 옷을 벗어던지고 부강을 향해 질주한지 다시 30 여 년이 지났다. 중국에는 지금 ‘마이웨이’를 외치는 목소리와 질주의 결과로 얻은 병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혼재하고 있다. 최근에 출간된 『현대 중국 지식인 지도』는 이런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성찰한 성과다. 이 책은 중국 사상계의 현주소를 짚어내고 지난 30여년 중국 지식계를 거시적으로 조망하고 있다. 책에는 해당시기의 방대한 사상문헌을 섭렵하고 1990년대부터 중국지식인들과 직접 교류해 온 저자의 노력과 사상적 고민이 오롯이 녹아들어 있다. 지식계의 주요 주장은 관련된 주요 사건과 결합하면서 서술에 생동감을 더하며, 중국의 지식지형에 관한 그림, 도표, 일람표 등을 제시해서 저자가 파악한 중국의 지식지형을 한 눈에 볼 수 있게 한다. 이 책의 근본적인 의의는 시종일관 저자가 일관된 관점을 갖고 중국의 지식계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崇中, 嫌中을 넘어선 硏中, 批中’이라는 한국의 비판적 중국학의 길을 제시한다는 점에 있다.


책에서 다루는 주요 유파는 신좌파, 자유주의, 신유가다. 이들은 1990년대에 새롭게 등장하거나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으며 최근에는 개혁개방의 성과에 대한 해석과 향후 진로 모색에서 새로운 지형을 형성한다. 그중 신유가와 신좌파는 중국의 부상에 따라 강화된 자의식을 적극 표출하는 유파로 규정된다. 자유주의는 성장 시기에 경제적 자유주의가 시장화한 국가와 밀월관계를 맺다가 부작용이 두드러지고 이에 대한 보완조치가 이뤄지자 국가나 대중의 호감을 신좌파에 넘겨주고 외면 받는 처지에 놓인 것으로 묘사된다. 그 중 자유주의 좌파는 국가와의 거리두기, 중국의 현실에 대한 자각과 개입이라는 비판적 지식인의 조건에 부합한다고 평가된다. 중국의 부조리한 상황을 인지하고 일상적 차원에서 이에 대한 해소와 제도 개선을 위한 노력과 의견개진을 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래서인지 친후이에 대한 공감, 쉬지린, 첸리췬과의 공명이 드러난다.

왕후이의 생각은 중화제국의 꿈과 일치한다?
반면 신좌파는 문제시되고 있다. 문명제국 재구축에 열중하면서 기존의 비판성을 상실하고 ‘국가주의화’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국가주의화’는 중국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버리고 권위주의 정권에 대한 옹호로 돌아서는 일종의 ‘전향’이다. 그런데 ‘전향’은 급작스럽지 않았고 1990년대부터 싹이 있었다고 지적된다. 왜냐하면 신좌파는 당시 자본만 비판하고 민감한 정치적 사안을 피하며 국가의 역할을 긍정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좌파의 모습을 ‘形左實右(저자는 ‘형좌우실’로 표기하지만 출처문헌에서는 형좌실우로 확인된다)로 묘사한다. 그런데 신좌파로 구분된 왕후이, 간양이 제국으로 부활하려는 권위주의 정권을 유지하려는 중국 당국과 같은 꿈을 꾸고 있다는 지적은 전적으로 타당한가? 저자는 1990년대 왕후이의 성찰적 태도와 균형감각과 2008년 금융위기와 올림픽 이후 왕후이의 ‘변화’를 대조하며 한편으로 아쉬움을 표하며 경계하고 있다. 왕후이의 ‘국가주의화’는 크게 두 측면에서 지적된다. 하나는 조공질서 재해석을 통해 도출된 아시아 담론, 트랜스내셔널 시스템이고 다른 하나는 2010년에 발표한 「중국굴기의 경험과 도전」이다. 이미 한국에서는 이런 견해들을 ‘중화의 옛 영광을 떠올리고 되살리려 한다’, ‘반환점을 너무 빨리 돌았다’고 비판했다. 저자도 의견을 같이 한다. 그러나 왕후이는 자신의 글에서 이미 이런 비판들에 대한 대답을 내놓았다. 왕후이에 따르면, 조공질서에 대한 해석은 영광스런 중화의 옛 기억을 되살리려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했고, 트랜스시스템 사회는 다양한 민족, 문화, 지역이 교류ㆍ병존하는 사회이고 자본주의 경제의 역량에 의해 모든 영역이 포섭되는 현존 세계질서와는 반대의 질서를 가지며 횡적 지역질서를 모색한 결과물이다. 이 점을 외면한 채 왕후이의 생각을 문명제국의 재구축, 과거 영화의 기억과 회복, 중화제국의 꿈과의 일치한다고 지적하지만 지적만 있을 뿐 그렇게 설명할 수 있는 논거는 충분치 않아 의구심만 불러일으킨다.


「중국굴기의 경험과 도전」에 대한 비판은 첸리췬, 쉬지린과 의견을 같이 한다. 그런데 이 글에서 중국의 부상이 직면한 ‘도전’에 관한 논의는 적어도 중국사회의 문제에 대한 무관심, 권위주의적 당국체제에 대한 전면적 옹호로 읽히기 어렵다. 이 부분에서는 경제성장이 야기한 향촌, 생태, 사회보장제도, 교육 등 사회 각 분야의 문제를 위기로 규정하고 이에 대응할 것을 촉구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국가가 소수이익집단에 경도되고 기층과 괴리되는 것에 대한 우려를 표하고 대의제로 대표되는 형식민주주의의 전지구적 위기를 지적하고 실질적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방안 마련을 과제로 제시한다. 서양에서 연원한 정치체제를 비판했다고 이런 논리를 중국의 현실 문제를 외면한 채 중국만의 정체성을 찾는 문명제국 재구축에 골몰하는 논리, 권위주의 체제를 옹호하는 논리라고 규정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아마 책에서 저자가 다 담지 못한 내용이 있을 것이라 짐작되지만, 적어도 국가의 꿈과 신좌파 왕후이의 꿈의 일치성을 직접 말해주는 논거를 찾기는 어렵다. 신좌파의 비판성 상실, 국가와 신좌파의 동행에 대한 비판은 이 책의 핵심논지 중 하나일텐데, 정작 국가의 권위주의와 신좌파의 거리가 사라졌다는 점에 대한 서술은 그리 친절하지 못하다.

정치적 재단보다 학술적 대응 보강 필요
마지막으로 현대 중국 지식인을 대하는 방법을 언급하고자 한다. 중국지식인의 분기는 현실진단과 노선에 대한 견해차에서 발생했다. 책에서 주요 틀로 삼고 있는 신좌파-자유주의라는 틀도 1990년대에 등장한 이런 지적 대응양식의 결과일 뿐이다. 따라서 90년대가 종결되고 새로운 문제로 논의지형이 형성된 지금 인적 연속성에 근거한 과거의 틀보다는 지금의 틀에 걸맞은 새로운 구도를 재규정하는 것이 보다 적합한 접근법은 아닐까. 다른 한편으로 분석의 기준도 좌-우, 진보-보수라는 정치적 재단보다는 이론작업에 대한 학술적 대응이 보강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1990년대 ‘신좌파’ 왕후이는 그 후 자본이 침투한 중국의 현실에 대한 분석과 개입에 집중할 것이라는 기대를 줄 수 있다. 그러나 왕후이는 그동안 새로운 지역질서 연구, 루쉰 재평가, 중국사회주의 경험 돌아보기에 집중했다. 글쓰기 방식에서도 관련 이론에 대한 검토와 정리가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했다. 국내의 진보적 지식인들의 공감을 샀던 비판적 지성에 대한 평가는 이런 차원에 대해서도 이뤄졌어야 하지 않을까? 그럴 때 중화제국 부활, 정치적 우경화에 대한 우려라는 ‘뻔한’ 비판을 넘어선 보다 설득력 있는 비판이 가능하다고 본다. 정치적 입장이나 국적의 차이의 표현이 아닌 담론의 이론적 근간, 논의 방식에 차원의 접근을 통해 현대 중국 지식인 연구의 새로운 활로를 열 것을 제언해본다.

 

송인재 한림대 한림과학원 HK연구교수·철학
성균관대에서 甘陽과 汪暉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했다. 『 관념사란 무엇인가』(공역), 「진관타오ㆍ류칭펑의 관념사연구의 구도와 의의」(논문) 등의 저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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