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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진흥 책무, 청와대에 있다
‘인문’ 진흥 책무, 청와대에 있다
  • 김월회 서울대·중어중문학과
  • 승인 2013.10.07 16: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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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7일 국회에서 김장실 국회의원이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하는 ‘인문정신문화 진흥 방안 법제화 토론회’가 열린다. 이 자리에선 관련 학계와 기관의 전문가가 모여 ‘인문정신문화 진흥법안’에 대해 심도 깊은 논의를 펼칠 예정이라고 한다.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관련 학계 등에 의견조회 용으로 전달된 ‘인문정신문화 진흥법안’의 내용을 보면, 이 법안이 그간 인문사회학술계에서 꾸준히 제기해온 인문사회학술 진흥 방안을 근간으로 작성됐음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인문사회학술 진흥의 법적 근거 확보, 정책기구 설치, 안정적 재원의 마련(진흥기금의 설치) 등이 표현의 차이는 있지만 고스란히 반영돼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반가움이 커서 그랬는지 안타까움과 아쉬움도 자못 크다. 지면 관계상 한두 가지만 언급하기로 한다. 먼저, 법안의 명칭이 너무나도 안타깝다. ‘인문+정신문화’로 이뤄진 법안 명칭은 우리나라의 현 국면을 적실하게 드러내 준다.

인문 안에 정신문화가 속해 있음에도 굳이 이 둘을 다 쓴 의도는 인문이란 말이 지니는 시의성과 효용성 때문으로 보인다. 우리의 현실을 보면 ‘인문정신문화’란 표현의 기형성을 기꺼이 무릅쓰고도 남을 만한 큰 이득을 ‘인문’이란 표현이 가져다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점은 박근혜정부의 출범을 전후해 우리 사회의 주요 화두가 된 ‘미래 창조경제’라는 표현만 봐도 쉬이 알 수 있다. 서구 선진국의 발달된 과학기술과 문화가 창조해낼 대상이었던 지난 시절과 달리, 이젠 ‘미래’가 창조의 새로운 대상으로 설정돼 있다. 이는, 우리가 선진국을 창의적으로 모방하고 활용하는 정도로는 더는 미래를 기약할 수 없으니, 미래를 짊어질 새로운 과학기술과 문화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창의력에 국가의 미래를 걸어야 한다는 의미다.

다시 말해 창조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는 것이니, 전자가 ‘벤치마킹’형 창의성이라면 후자는 ‘벤치 메이킹’형 창의성이라는 것이다. 이 둘 사이에는 인문 역량의 흥성 여부가 놓여 있다. 전자의 시대에는 인문의 뒷받침 없이도 ‘科學立國’이 가능했지만, 후자의 시대에는 인문의 뒷받침 없이는 애써 세운 것의 유지조차 불투명하다. 더구나 21C 전환기에 한층 가속화된 디지털 기반 지식사회에선 과학기술 없는 국가 경영, 문명 갱신은 그저 허상이다.

단적으로 말해 ‘과학입국’에서 ‘科學經國(과학기술로 국가를 경영하다)’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과학과 인문이 서구 선진국들처럼 ‘국가(세계) 경영’, ‘문명 창달’이라는 차원에서 융합돼야 한다. 이것이 어엿한 선진국이 되고자 하는 우리 사회가 회피해선 안될 현실이다. 그런데 이런 중차대한 시의성과 효용성을 지닌 인문이란 표현을 안쓰럽게도 왜 떳떳하게 단독으로 내세우지 못했을까. 혹 주무 부처가 교육부가 아닌 문화체육관광부여서 그랬던 것일까. 이 법안을 보고나서 느낄 수밖에 없었던 아쉬움은 여기서 비롯된다.

왜 나라의 미래가 걸린 인문이란 이 중차대한 역량의 진흥을 범정부적 차원이 아니라 한 부처 차원에서 전담하겠다고 나선 것일까.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렇다보니 이 법안은 ‘독불장군’이 되고 말았다. 법안에는 ‘인문정신문화’ 관련 연구활동과 교육활동, DB화 등을 지원한다고 명시됐는데, 이런 활동의 주역은 대학과 연구소 등으로 대변되는 고등교육기관이 될 수밖에 없다. 응당 교육부와 협업체제를 구축할 때 이상의 활동에 대한 지원은 더 한층 건설적일 수 있다.

나아가 ‘과학기술기본법’에 근거해 ‘과학기술심의회’가 국무총리 직속기관으로 설치된 점이 논의의 기본값이어야 한다. 앞서 밝혔듯이 ‘미래창조경제’의 시대를 떠받치는 두 축이 ‘과학기술’과 ‘인문역량’이기 때문이다. 정신문화의 진흥이란 과업도 한 부처만이 전담하기엔 버거울진대, 그보다 범위가 ‘절대적’으로 넓은 인문의 진흥을 어느 한 부처가 관장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또한 인문 진흥이라는 시대적 사명이 부처 간 밥그릇 경쟁이 돼서도 안 된다. 이번 법안 발의는 크게는 선진국 구현의 발판이고 적게는 인문사회학술 진흥의 버팀목이다. 범정부 차원에서 국가의 선진적 미래를 걸고 접근해야 마땅할 사명인 것이다. 따라서 청와대가 직접 나서 이 중차대한 사명을 실천해야 한다. 국민을 대변하며 나라의 미래 역사를 창조할 1차적인 책임이 대통령에게 있기 때문이다.

김월회 서울대·중어중문학과
서울대에서 박사를 했다.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선임연구원을 지냈다. 「동태적 인문으로서의 통합적 학문」, 『살아 움직이는 동양고전들』 등의 논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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