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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칼럼_ 사랑의 반대말은 무관심이다
원로칼럼_ 사랑의 반대말은 무관심이다
  • 최몽룡 서울대 명예교수·고고학
  • 승인 2013.09.30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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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몽룡 서울대 명예교수·고고학(인류문명발달사)

추석을 계기로 가족뿐만 아니라 주위의 이웃들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된다. 그러면 ‘물질적으로 베푸는 사랑’에서 벗어난 ‘진실한 사랑’이란 단어가 절로 떠오른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고린도전서 13장 4절)‘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린도전서 13장 13절) 이 구절은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항상 접하고 감동을 준다. 연애하는 사람에게도 중요하지만 가정을 지키려는 사람에는 더욱 더 필요하다. ‘어려울 때 함께 했던 친구를 잊어서는 안 되며 조강지처는 버리지 말아야한다(貧賤之交不可忘 糟糠之妻不下堂, 『후한서』 「송홍전」).’ 그리고 인생의 모든 짐과 고통에서 자유롭게 해주는 단 하나의 단어는 사랑이라 한다.

『大學』의 八條目(格物, 致知, 誠意, 正心, 修身, 齊家, 治國, 平天下) 중 수신과 제가가 중요하다. 맹자의 四端之心(惻隱之心, 羞괒之心, 辭讓之心, 是非之心)은 仁義禮智를 바탕으로 하는 인간의 천성이 태어날 때부터 선하다고 하는 性善說이다. ‘측은지심’을 가진 인간이 착하게 태어난다 해도 후천적인 교육에 의해 악하게 되는 것은 문화인류학자들이 문화와 교육과의 관계를 언급할 때 하는 이야기다. 기본이 되는 仁은 예부터 남을 사랑하고 어질게 행동하는 德을 바탕으로 한 인간이 마땅히 지켜야 할 도덕이념으로 남을 먼저 배려하는 착한 마음씨라 할 수 있겠다.

老子는 『道德經』 51장 「道生之」에서 ‘도는 만물을 생성하고…… 그러므로 만물은 도를 존중하고 덕을 귀하게 여기지 않을 수 없다(道生之, 德畜之, 物形之, 勢成之. 是以萬物莫不尊道以貴德)’고 했다. 이는 無爲로 참사랑을 실천하고 조건 없이 그저 만물을 위해 베풀어주기만 하면 된다는 노자의 사랑이다. 緣起法과 空思想이 요체가 되는 불교의 자비(大慈大悲)는 인간의 종교적 실천의 기본 원리로 세속의 사랑과는 구별되는 순수한 사랑을 말한다. 이는 특히 관음보살이 중생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나타낸다. 유교, 불교, 도교와 기독교도 모두가 속세를 벗어난 숭고하고 고차원인 사랑을 구현하고 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사랑’이란 단어를 자주 언급하게 되는데 요즈음은 ‘참사랑’이 지닌 聖과 俗에 대한 구분과 이해가 더욱 더 힘들어졌다. 당 7대 현종이 양옥환(양귀비)을 처음 만난 것은 56세 때이고 양귀비는 그의 13子수왕 이모의 부인이면서 34세 연하인 22세였다. 그리고 당 2대 태종의 才人으로서 후궁이 된 무조가 태종의 사후 감업사 비구니로 있다가 아들인 3대 고종에 의해 왕비가 된 후일의 측천무후와 고종에 대한 사랑도 그러하다. 당나라를 세운 이씨 집안은 북방유목민족 계통으로 아버지가 죽으면 아버지의 부인 또는 후궁을 자기 아내로 삼는 경우가 많으며 고종과 측천무후, 현종과 양귀비와의 관계도 그러하다. 이들의 애정관계는 비록 매우 세속적인 사랑의 대표적인 예 중의 하나이지만 당시 나이와 인륜을 초월한 애틋한 사랑의 표현 같아 그런대로 이해가 간다.

애증은 사랑 속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나는 사랑의 반대말은 무관심이라고 생각한다. 무관심은 참 무서운 단어로 인연을 포기하는 행동이다. 그리고 죽기 전에 ‘베풀어준 모든 것에 감사한다’라는 말이 있다. 추석을 맞아 떠오르는 조그만 사랑이란 단어에서도 여러 가지 迷妄과 상념이 교차한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남은 인생에서 베풀고 살아 가야할 진실한 사랑의 의미도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

최몽룡 서울대 명예교수·고고학(인류문명발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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