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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王’ 肅宗을 찾아서
‘國王’ 肅宗을 찾아서
  • 윤정 진주교대·조선정치사상사
  • 승인 2013.07.15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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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思

고려와 조선 왕조를 합쳐 천 년 가까운 단일 왕조를 경험한 한국인들에게 정치적 분열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이미지로 각인돼 있다. 삼국이나 후삼국 같은 국가 분립은 물론 현실 인식의 차이에서 드러나는 정치적 대립과 갈등마저도 부담스러워 한다. ‘분단’이라는 현실 속에‘분열’은 국가적 생존과 직결된 문제로 간주됐던 현대사의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 자연 통일과 통합이 강조됐고, 다양한 입장이 ‘분열’로 매도되곤 했다.

조선시대 정치사를 이해할 때 왕권 강화는 통합의 표상이자 국가 체제를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바림직한 정치 지향으로 인정되곤 한다.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붕당의 싸움, 곧 ‘당쟁’은 조선 정부의 무능을 표상하며 일제의 식민 지배를 가져온 근본적인 원인으로 평가됐다. 이에 당쟁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탕평을 실시하고 왕권 강화를 도모한 영조와 정조의 통치는 ‘왕조의 중흥’을 이룩한 모범적 사례로 평가됐다. 순조대 이후 탄생한 세도 정권이 망국의 발단으로 간주된 것처럼, 탕평에 앞선 숙종대는 당쟁의 시대로 폄하됐다.

필자가 조선시대 정치사에 대한 연구를 시작할 당시의 생각도 이러한 수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다만 정치세력에 대한 평가는 그들이 추진한 정책과 그 결과에 따라서 이뤄져야 한다는 원론을 갖고 있었을 따름이다. 그런데 자료를 탐독하고 연구를 진행할수록 영조와 정조의 정책은 숙종대 정치사의 연장에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영조와 정조의 통치를 높이 평가하는 시각에서 속종대의 정치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계승’의 대상이었다는 것은 모순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14세에 즉위해 47년간에 걸쳐 재위했던 숙종의 이미지는 사극을 통해 고착돼 있다. 이 시대를 다룬 사극은 인경왕후와 인현왕후, 장희빈과 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씨 등 ‘숙종의 여인들’에 남인과 서인, 노론과 소론의 격렬한 대립과 권력 교체를 얹어 극적 완성도를 높였다. 학계의 노력으로 여인의 치마폭에 휘둘렸다는 생각에서는 점차 벗어나고 있지만, 붕당의 대립에 숙종이 끌려다녔다는 인식은 여전하다.

하지만 숙종에 대한 연구를 거듭할수록 당시의 정치적 상황의 중심에 여인도 붕당도 아닌 숙종이 자리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됐다. 붕당과 왕비의 교체는 모두 국왕 권력의 강화라는 과정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숙종은 인조대 이래 신하들이 주도하던 정계를 국왕 중심으로 재편하고자 했고, 이를 위해 극단적인 붕당 교체와 숙청을 감행했고, 왕비의 폐출과 복위라는 파행도 서슴지 않았다. 잘못된 정치를 행한 국왕을 公論의 이름으로 교체할 수 있다는 인조반정의 이념은 폐기됐고, 어떤 경우에도 국왕의 권위를 건드릴 수 없다는 절대적인 충성의 논리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이에 수반해 숙종은 자신의 권위를 극적으로 높여 권력의 안정화를 도모하려고 했다. 재위 전 기간에 걸쳐 태조에 대한 기억을 되살린 것은 그러한 방안의 하나였다. 태조는 조선의 창업주로서 부정할 수 없는 존재였지만, 태종과 세조에 눌려 사실상 잊혀있었다. 숙종은 태조의 사적을 발굴하고 글을 지어 찬양하며, 사적에 비를 세워 후대에 길이 전하고자 했다. 조선 왕조의 출발이자 표상으로서 태조는 그 후계자에게 모든 명분을 능가하는 절대권위를 안겨줬다. 그리고 그 경험은 고스란히 영조와 정조에게 계승됐다. 태조의 사적은 더욱 활발하게 정비됐고, 정조는 창업주의 권위를 자임하는 단계로 나아갔다. 탕평은 신하들에게 ‘모두에게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는 국왕의 권위에 협조하라는 요구였다.

왕조 국가에서 국왕은 권력의 중심이다. 모든 국왕은 왕권 강화를 지향한다. 하지만 신하들의 붕당 대립이 체제를 흔들 수 있는 것처럼, 국왕의 자의적 권력 행사 또한 체제를 위협한다. 붕당 대립이 그 자체로서 부정의 대상이 아니듯 왕권 강화 또한 곧바로 긍정이 대상일 수 없다. 숙종이 영조와 정조와 분리돼 부정적인 평가를 받을 이유도 없지만, 그 출발이었다고 해서 긍정될 이유도 없다. 당시의 정치 현실에서 어떤 논리와 정책을 통해 권력을 실현하고자 했으며, 어떠한 결과를 가져왔는지가 정치인‘국왕’숙종을 평가하는 역사적 잣대가 될 것이다.


윤정 진주교대·조선정치사상사
서울대에서 박사를 했다. 주요 논문으로「18세기 국왕의‘文治’사상 연구」, 저서로『국왕 숙종, 잊힌 창업주 태조를 되살리다』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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