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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과 ‘연변동포’
한국학과 ‘연변동포’
  • 우경섭 인하대 HK교수·조선사상사
  • 승인 2013.07.08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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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思

필자가 몸담고 있는 인하대 한국학연구소는 2007년부터 ‘동아시아 상생과 소통의 한국학’이라는 어젠다 아래 인문한국 사업을 수행하며, 일국의 경계를 넘어선 새로운 한국학의 정체성을 창조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론으로, 해외 각 지역의 한국학 연구가 각각의 자국학적 전통의 흐름 속에서 독자적으로 수행되고 있음에 주목하며 ‘複數의 한국학’이라는 개념을 제시한 바 있다.

그것은 식민지시기 이래‘국학’의 성격을 지니고 전개돼 온 국내의 한국학을 상대화하는 한편 식민학, 민족학, 지역학 등 다양한 기반 위에서 형성됐던 일본, 중국, 서구 한국학의 문제의식을 함께 고민함으로써 상호 간의 소통과 상생의 가능성을 발견하려는 노력이다. 이러한 관점 아래 중국 연변학계의 역사적 형성과정 및 그곳에서 수행돼 온 ‘민족학’연구의 성과에 주목하고자 했다.

조선후기 이후 중국의 동북지역으로 이주해 새로운 민족학의 전통을 창조해 온 연변조선족 사회에 대한 연구는 국경을 초월해 존재하는 다양한 한국학의 전통을 탐구하려는 우리 동아시아한국학의 핵심 연구 과제 중 하나다. 200만명에 달하는 조선인들이 한반도와 다른 역사적 환경 속에서 창조한 그들 나름대로의 민족적 정체성과 문화적 성취는‘복수의 한국학’이라는 개념 아래 새롭게 재조명될 필요가 있다. 더욱이 중국과의 관계가 점점 더 긴밀해지는 지금, 그들의 역사적 경험과 거기에서 배태된 민족학의 성과는 학문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간과할 수 없는 연구 영역의 하나가 될 것이다.

그동안 한국인에게 연변을 포함한 만주라는 지역은 두 가지 역사적 이미지로 기억돼 왔다. 첫째는‘고구려’라는 단어에 함축돼 있는 영광스러운 고대사의 역사상이며, 둘째는 식민지 시기 항일운동의 근거지로서 고난에 찬 독립운동의 역사상이다. 20세기 전반 국민국가 건설의 과정에서 형성된 이 같은 인식은 민족주의 담론의 연장선상에서 그 역사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같은 기억의 방식 속에서 고향을 등지고 그곳으로 건너간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의 실상이 망각됐던 것 또한 사실이다.

게다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및 뒤이은 한국전쟁의 결과, 한국 사회에서 그들의 존재는 망각될 수밖에 없었다. 한국 사회가 필요로 했던 그들의 이미지는 ‘만주 벌판에서 말달리며 활을 쏘던 독립운동가’였지 ‘공산당’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1992년 문득 한중수교가 이뤄진 뒤 한국에서도‘연변동포’를 흔히 대할 수 있게 됐지만, 오랜 기간 상이한 역사적 환경 속에서 살아 온 그들을 마음으로 포용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개인적 경험에 불과한지 모르겠지만, 한국에 머물던 조선족 친구가 했던 다음과 같은 말을 필자는 잊지 못한다. “‘조선족’이라는 말을 들으면 식민지 시기 일본인들의‘조센징’이라는 표현이 떠오른다.”

20세기 내내 한국과 연변이라는 상이한 역사 공간에서 배태돼 온 차이점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강제로 해소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상호간의 이해 부족으로 말미암은 갈등과 충돌의 현실을 넘어서, 소통과 상생의 가능성을 모색해야 한다는 원론에 대해서는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제 그들에게 ‘한국과 중국의 축구 경기 때 어느 쪽을 응원하는지’ 물어보는 천박한 대화는 집어치우고, 그들이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고 지금의 현실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으며 어떠한 모습의 미래를 그리고 있는지, 그들의 목소리에 진지하게 귀 기울이는 것이 필요하다. 그들에 대한 역사적 평가 내지 전략적 분석의 틀에서 벗어나, 그들의 목소리를 경청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연변학’이라는 새로운 관점을 통해 중국 동북지역 조선족들이 이뤄낸 독특한 삶의 방식을 해석할 필요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조선족 동포들을‘관계’혹은‘교류’의 관점 아래 피동적 대상으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융합과 소통의 주체로서 자율적이고 독립된 범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동아시아 융합의 공간’이었던 만주에서 여러 민족과 어울려 살아온 그들의 삶을 통해 인류사적 보편성을 파악하는 일은 현재 한국학이 직면하고 있는 민족적 폐쇄성의 한계를 돌파하는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우경섭 인하대 HK교수·조선사상사
서울대에서 박사를 했다. 주요 저서로『宋時곥의 世道政治思想硏究』,『 조선중화주의의 성립과 동아시아』등이 있으며, 인하대 한국학연구소에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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