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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칼럼_ 창조경제와 대학교육
원로칼럼_ 창조경제와 대학교육
  • 임한조 아주대 명예교수·응용고체물리학
  • 승인 2013.06.24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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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한조 아주대 명예교수/前대학원장(응용고체물리학)

작금의 우리 사회는 창조경제를 놓고 온 나라가 분주하게 움직이는 느낌을 주고 있다. 창조경제가 무엇인가를 놓고 설왕설래 하는 것을 신문지상에서 보기도 했지만, ‘창조경제’란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경제활동으로 연계되는 사회·경제체계라고 쉽게 정의하면 창조경제야 말로 제조업이 일자리를 충분히 제공하지 못하는 우리나라로서는 반드시 성공적으로 구현해야만 하는 경제체제라 생각한다.

문제는 창조경제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정보통신 전문가를 미래창조과학부의 수장으로 계속 지명하는 것으로 볼 때 현 정권은 창조경제의 중심에 정보통신기술(ICT)을 두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미래 창의기업들의 상당수가 ICT 혹은 ICT가 접목된 기술융합을 기반으로 할 것이 예상되므로 일견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창조경제를 성공시키려면 이보다 더욱 근원적인 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가 인정할 정도로 산업고도화를 신속히 이뤘기에 나이 많은 일반인들은 고급기술을 갖고 있지 못하며 많은 중소제조업 역시 기술경쟁력에서 뒤지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거의 전 세계가 실업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배경에는 인류가 현재 갖고 있는 넘쳐나는 생산성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MICE 등의 문화산업과 제약, 금융 등의 지식산업을 일으키는 한편 중소제조업의 기술경쟁력을 높여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나라가 현 교육체계로 지식산업과 중소제조업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지 필자는 걱정스러운 면이 있다.

지식산업과 중소제조업이 국제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깊은 전문지식이 필요하며 특히 이공계열 분야는 돌을 쌓듯 차근차근 기초를 다져가며 훈련을 받아야만 전문지식의 습득이 가능하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언제부터인지 창의성을 키운다는 미명 하에 고도의 훈련을 경시하는 풍토가 생긴 지 오래 됐다. 이공계열은 공부하는 데 들어가는 노력에 비해 사회에서 대접은 받지 못한다는 인식이 확산돼 공대 학부생 중 졸업 후 엔지니어로 남으려는 학생이 3%에 지나지 않는 지경이 됐다.

이렇게 전공하는 학생조차 탐탁하게 생각지 않는 이공계열이 된 배경에는 사업가나 경영자들이 기술직을 필요하면 불러 쓰고 필요 없으면 버리면 된다는 생각으로 사업체를 운영하는 현실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 이렇게 돼서는 지식산업이나 제조업의 기술경쟁력을 제고할 수는 없을 것이니 우리나라의 경영자들은 자신 기업의 경쟁력을 위해서도 이점을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전문지식을 훈련받는 처음 단계인 대학에서 고도의 훈련을 기피하는 학생들의 풍조는 이공계 기피현상보다 더욱 심각한 현상이다. 물론 어느 개인이 창조적 아이디어를 갖기 위해서는 생각이 자유로워야 하니 전공 공부에만 매달려 다른 곳은 볼 겨를도 없는 것은 문제다. 그러나 취미활동에서도 높은 수준에 들려면 반복해서 기초를 다지고 좋은 지도자 아래에서 어려운 경우를 극복하는 훈련을 받아야만 하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전문지식 역시 장기간에 걸쳐 기초를 다지고 어려운 단계를 극복해야만 경쟁력을 가진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다.

실제로 두뇌는 어느 분야의 어려운 문제를 극복하는 훈련을 함에 따라 관련기능이 개선돼 나중에는 일을 더 쉽게 한다는 사실이 최근 학습이론에 의하여 밝혀졌으며, Malcom Gladwell은 『Outliers』라는 책에서 인간은 누구나 자기 분야에서 최소한 1만 시간 이상 노력하면 그 분야에서 비범한 인물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말을 달리하면, 하루에 10시간씩 3년 이상 훈련해야만 자신의 전문분야에서 뛰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최근 10여년 사이에 대학생들이 깊은 생각을 기피하는 것을 많이 봐 왔다. 교양과목에서 어느 주제에 대해 참고문헌을 제공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발표해 보라는 과제를 제출했을 때 대부분의 학생들은 책을 읽고 생각해보기보다는 인터넷을 뒤져 편집한 후 자신도 모르는 얘기를 발표하는 것을 계속하고 있었다. 이와 같이 사고하는 훈련이 되지 않은 학생들이 사회에 나가서 어떻게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을지 필자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런 면에서 정치가나 정책입안자들이 창의경제를 달성하기 위해서 제도마련에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창의적인 인재가 되도록 대학에서 생각하는 훈련을 제대로 받도록 교육제도에 대해서도 많은 신경을 쓴다면, 영국에서 문화산업 육성정책을 시행한 지 10여년이 지나 그 결실을 보듯이, 창의경제 역시 언젠가는 달성되는 선순환의 고리를 시작하는 단초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임한조 아주대 명예교수·응용고체물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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