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문화융성’을 국민행복시대를 여는 중요한 국정기조 중 하나로 설명했다. 그러나 문화융성의 정의를 비롯해 국민행복과 연결되는 방법론 등은 아직도 구체화되지 않았다. 실제로 우리가 이미 확보하고 있는 인적자원과 물리적인 공간 등을 생각한다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예술과 문화, 혹은 ‘문화융성’은 그리 멀리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새로운 정책이나 비전이 생기면 우리는 예산을 투입해 새로운 공간을 짓고 그 안에 들어갈 프로그램들을 짜며, 물리적으로 필요한 기자재 등을 확보한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다양한 자원들을 조금 더 밀도있는 방식으로 활용한다면 상당부분 예산을 아낄 수 있을 것이다. ‘문화융성’과 국민의 행복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각기 다른 의미와 정의를 내세우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문화융성은 자신의 신분이나 지위, 재산의 유무에 상관없이 예술과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것이 ‘문화융성’이라고 본다.
뉴욕에서 13년 생활하면서 뉴요커들의 삶이 가장 부러웠던 것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뉴욕의 문화·예술 프로그램이었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를 센트럴 파크에서 들을 수 있는 것은 물론이요, ‘서머 스테이지(Summer Stage)’ 등과 같은 야외 프로그램들은 여유롭게 문화를 즐기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기회를 안겨줬다. 애버리 피셔 홀(Avery Fisher Hall)은 연주자의 표가 모두 팔리지 않았다면, 연주가 시작되기 전에 매진되지 않은 표를 학생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팔았다. 돈이 있어야만 문화를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문화와는 달리, 돈이 없어도 문화를 즐길 수 있음을 오히려 자랑스러워하며 보헤미안 삶을 추구하는 젊은이들이 많았다.
뉴욕현대미술관의 티켓은 학생들에게는 상당히 비싼 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특정 요일에는 늦게까지 개방해 무료로 앤디 워홀과 잭슨 폴록 등을 관람할 수 있게 했으며, 최근에는 온라인 교육 강좌를 강화했고, 작가와의 인터뷰 및 퍼포먼스 등을 공유할 수 있도록 멀티미디어 룸을 새롭게 부각시키기 시작했다. 문화융성을 위해 물리적으로 새로운 문화센터를 짓고 내용을 채우기에 앞서, 우리가 이미 확보한 자산들을 유기적인 시스템으로 엮어내는 숙제를 먼저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미적 체험’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 공간과 경험 속에서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감각의 확장이며, 사고의 확장이다.
이것이 창의력이 될 것이고 나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 또한 이것은 국가 경쟁력으로 이어지며 세계적인 문화·예술인과 학자들을 배출할 것이다. 우리는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로 우리의 문화는 공공성이 부족한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의 애매모호한 영역에서 ‘문화융성’정책은 나와 우리의 목소리와 행복을 함께 찾아 볼 수 있는 방법론을 찾아야 할 것이다. 대중적이고 상업적이지 않아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여겨지는 예술과 문화는 이러한 방법론 내에서 보호해야 할 것이다.
다른 어떤 분야보다 비정규직이 많은 문화·예술계의 인적자원은 예술정책에서 꼭 풀어야할 숙제이기도 하다. 일부 계층들이 향유한다고 생각하는 예술을 일상적 삶 속에서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 돈이 없는 학생들이나 일반인들도 예술과 문화를 손쉽게 즐길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예술센터를 만드는 것보다 급선무다. 행복지수가 아주 낮은 한국인의 삶, 자살지수가 아주 높은 한국 사회에서, 부정적이고 폭력적인 에너지를 예술로 발산시키는 것이 ‘문화융성’일 것이다.
정연심 홍익대·미술비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