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8 11:45 (일)
21세기 세계화-평화 구상 선도하는 ‘모델 하우스’는 안녕할까?
21세기 세계화-평화 구상 선도하는 ‘모델 하우스’는 안녕할까?
  • 교수신문
  • 승인 2013.06.18 13: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주, 조작된 평화와 가상현실의 세트장

▲ 제주 4·3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지슬」의 한 장면. 사진제공=클루시안

조선이 개국한 후 태종의 처남인 민무구, 민무질 형제는 외척이라는 죄명(?)으로 제주 바닷가에 귀양을 왔고, 사약을 받아야 했다. 네덜란드인 하멜은 1653년 제주에 표착해 한양으로 압송된 후 13년을 지내다가 탈출해 『蘭船제주도난파기』(하멜표류기)를 지었다.

개혁군주인 광해군도 바다를 쳐다보면서 운명의 잔인함을 한탄하다가 섬에서 생을 마친다. 추사 김정희는 ‘언젠가는 고향으로 돌아가야지’하면서 무려 9년의 한을 쏟고 나서야 소원을 풀 수 있었다. 노론의 거두 송시열, 조선 말기 유림의 거물이자 의병장 최익현 등이 유배생활을 했다. 구한말 근대화혁명의 스타인 김옥균을 암살해 상기 인물들과는 다른 이미지를 남긴 홍종우는 역적(?)을 제거한 공으로 중앙 관직을 전전하다 말년에는 제주목사로 좌천돼 봉직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제주인이 있다. 빈한한 집안출신인 이광수는 비루한 조선을 비판하고 일본문화를 흠모하면서 영달의 길을 갔지만, 모순적으로 그와 와세다 대학 유학동기인 명문가 출신 김명식은 <동아일보> 논설을 통해 제국주의와 양반엘리트주의, 민중차별을 비판했다.

말년에는 일제의 고문후유증으로 낙향해 지내다가 “나라를 찾기 전에는 사망신고도 하지 말고, 무덤에 비석도 세우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두 사람의 대조적 운명은 왜곡된 한반도 인간사의 자화상이다. 가히 제주와 더불어 부침했던 인물들을 추적하면 세상의 흥망성쇠와 인생의 무상함이 절로 느껴짐직하다.

그런데 역사는 멈추지 않는 것이기에 소외의 땅에도 씁쓸하지만 반전은 있는 법. 일제 강점기 제주인은 인구비례로 치면 재일교포를 가장 많이 배출한 영예(?)를 맛본다. 소외와 박탈의 세월이 너무 가혹했던지 악랄한 일본이 차라리 기회의 땅이었을까.

망각 유도하는 엘리트주의 역사관
채 복잡한 상념이 가시기도 전에 제주는 아름다운 자연에 피를 뿌리게 된다. 대국과 국가주의가 벌인 과잉진압이 야기한 동족 간의 폭력은 고려시대 중앙군대와 삼별초 간의 격렬한 전투 이래 두 번째 제주를 강타했다. 4·3사건은 애초에는 평화롭게 끝날 수도 있었던 소수의 시위에 불과한 것을 초토화 작전으로 이념이 무언지도 모르는 3만 명의 무고한 양민들이 희생된 참극이었다. 슬픈 것은 오늘날 까지도 국가건설의 대의에는 못난자들의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엘리트주의 역사관이 망각을 유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스런 기억이 체념으로 접어들 무렵, 역사는 또 다시 반전했다.

군사정권 어느 권력가가 그 옛날 과일이 귀한 겨울에 임금에게만 진상이 됐다는 밀감이 꽤나 먹고 싶었나보다. 그 양반이 직접 밀감농장을 소유하게 되자 갑자기 제주에 농장 붐이 일었다. 이것은 결코 민초들을 위해 계획된 것이 아니었고, 그저 역사의 우연일 뿐이었다.

권력의 호사와 뜻하지 않은 시혜가 백성들에게는 박해의 보상인양 감지덕지 부풀려졌다. 그러나 물질적 혜택은 역사의 기억에 환각제를 주사해 굴종과 분열된 자아를 내면화한다. 역사청산과 맞바꾼 밀감의 번영신화는 WTO와 함께 종언을 고하면서, 국가는 재빠르게 세계화-평화를 판돈으로 바꾸어 내밀었다. 2003년 대통령이 4·3당시 자행되었던 국가폭력으로 발생한 희생에 대해 사죄했고, 이어서 도민들의 열망에 따라 2005년 한반도의 번영·평화를 위해 정부는 제주를 ‘세계 평화의 섬’으로 지정했다. 2006년에는 국제자유도시육성을 위해서 ‘특별자치도’가 됐다.

그리고 2007년부터 ‘영어교육도시’가 추진되고 그 방안으로 국제학교가 개교했다. 이렇게 제주는 4·3 이래로 반세기가 지나면서 21세기 세계화-평화의 구상을 선도하는 한반도 모델하우스로 등장하게 된다. 그러나 이 모든 허울 좋은 구호들이 만든 제주는, 권력-자본이 지향하는 이런 저런 미래의 허상을 전시한 세트장에 불과할 뿐이다.

허구의 번영신화를 넘어서
구체적 조치없는 립서비스의 사과는 금방 진면목을 들어내면서 ‘빨갱이 도민’이라는 가끔 터지는 남남갈등의 구실만 제공하고 있다. 예산 한 푼 안 들이는 국제자유도시계획, 서민들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영어교육도시, 권력가와 부유층 자제들이 다니는 국제학교에는 담장 밖 촌스런 사투리를 비웃 듯 영어소리 낭랑하다. 이제 갈등의 역사는 잊어버리고 전 도민이 관광가이드가 돼 외국인을 맞아 제주의 자연과 역사, 그리고 평화없는 평화의 섬을 영어로 소개해야 한다.

근래에는 해군기지 건설이 추진되면서 4·3이래 처음으로 전투경찰 병력이 시위진압을 위해 바다 건너 파견되는 초유의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대국과 국가주의의 결합은 4·3으로 냉전의 신호탄을 올리더니, 대통령의 사과로 탈냉전의 쇼를 벌이다가, 제주에서 다시 합심해 21세기 동아시아 신냉전의 축포를 쏘아 올린 것이다. 이제 제주는 주변 4대 강국의 인공위성들이 밤낮으로 우러러 보는 국제무대의 주연배우로 성장했다. 생각해 보면 차라리 옛날에는 권력과 중심지향의 문화에 의해 직접적 소외상태로 살 때에는 저항의 주체도 그 대상도 가시적이었고, 한편 소박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21세기 권력과 자본은 세련되고 교묘한 언설로 역사를 망각으로, 자연을 개발주의로 황폐화시키고 있다. 민초들은 점점 권력과 자본 사이를 넘나드는 순종적 기회주의자로 변하고 있다. 역사청산과 자연보호를 외치는 자들은 어리석은 반문명주의자로 낙인찍혔다.

강요된 망각과 조작된 동의의 내피위에 덧칠한 ‘허구의 번영신화’와 ‘국제자유도시-평화의 섬’이라는 권력-자본이 공동으로 연출한 가상현실의 드라마세트장에서 살게 된 제주인은 어느새 자신이 푸들임을 의식하지도 못하는 푸들이 되고 만 것이다. 역사의 진실은 바다에 빠져 허우적대는데, 허울 좋은 국제자유도시, 조작된 평화의 섬에는 무심한 관광객들만 북적거리고 있다.


고성빈 제주대·정치외교학과
필자는 런던대에서 박사를 취득했다. ‘동아시아 지성사’를 연구하고 있으며, 현재는 안식년을 맞아 영국에서 머무르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