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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단상_ 세계 최고 대학진학률이 부른 ‘풍요 속 빈곤’
교육단상_ 세계 최고 대학진학률이 부른 ‘풍요 속 빈곤’
  • 이호성 한국경영자총협회·상무
  • 승인 2013.06.11 10: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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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성 한국경영자총협회·상무
2012년 우리나라의 대학 진학률은 71.3%를 기록했다. 이 수치는 지난 2009년 77.8%를 고비로 급격한 감소세를 보이고 있음에도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이다. 고등학교 졸업생 10명 가운데 7명이 대학 진학을 하고 있다니, 미국의 대통령도 부러워할만한 교육열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높은 대학 진학률은 우리 사회가 우수 인력을 확보한다는 긍정적 측면과 함께 많은 부작용을 야기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 먼저 대학 진학이 일반화되면서 비진학자에 대한 차별적 시선으로 소위 학벌 논란이 심화되고 있으며, 과도한 사교육 등 교육을 둘러싼 각종 사회문제가 이미 심각한 지경이다.

또 한 가지 우리나라는 높은 대학 진학률에 비해 졸업하기가 수월해 입학생 대부분이 대학을 졸업하고 있다. 이에 따라 대학 졸업생들의 자질 향상 문제와 대졸자들의 과잉공급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이 문제는 특히 15년 전 IMF 외환위기로 한국 기업들이 심각한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기업들의 인력 수요가 급격히 위축되고, 채용 관행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음에도 대학 졸업생들은 크게 증가한 것과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1980년부터 매년 정기적으로 기업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신규인력 채용 전망조사’에 따르면,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에 무려 84%의 기업이 전년보다 채용을 줄인다고 응답했다. 이는 1998년 연평균 실업자 수가 149만명으로 전년보다 3배 가까이 증가했던 당시의 일자리 쇼크를 보여주고 있다. 이후에도 기업들은 신규 채용보다는 경력직 채용을 늘리면서 인력수요도 현장 중심으로 크게 변화했다.

이처럼 경제위기 여파로 실업률이 급증하고 일자리는 대폭 줄어들었음에도 이 시기 대학 진학률은 꾸준히 증가했다. 1990년대 전반까지도 50% 미만이었던 것이 1998년 64.1%, 2000년 68% 등으로 급격히 증가했고, 결국 과잉 공급된 대학 졸업생들의 취업난은 예견된 것이었다.

대학 졸업생들의 취업 경쟁은 스펙 경쟁과 같은 부작용도 발생시켰지만 정작 기업들은 필요한 인재가 부족하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기업들은 국경을 초월한 무한경쟁에 노출되면서 기업 생존을 위해서라도 국제 경쟁력을 갖춘 인재를 원하고 있으나 국내에서 이런 인재를 찾기가 어려워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는 실정이다. 대졸자들은 취업난을 가중시킬 정도로 배출되고 있지만 대기업이나 중소기업 모두 필요 인력을 구하지 못하는 풍요 속의 빈곤을 겪고 있는 것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 진학률이 초래하는 막대한 사회적 비용과 부작용, 대학 졸업생들이 부딪쳐야 하는 취업난과 세대 갈등, 기업들이 필요한 인재를 적시에 찾지 못하면서 빚어지는 사업기회 축소와 일자리 감소까지 대학교육을 둘러싸고 크고 중요한 사회적 문제들이 얽혀 있다.

더욱이 인구구조 변화로 2016년부터는 고등학교 졸업자가 대학입학정원보다 적어지는 학생부족 시대가 돼 본격적인 대학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런 충격을 조금이라도 완화해보기 위해 수년 전부터 정부의 대학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지만 거의 실감할 수 없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이제 대학교육을 둘러싼 사회적 문제의 해결을 위해 우리 사회의 지혜를 모아가야 할 시점이다. 그 첫 단추는 대학사회의 반성과 혁신에서 시작돼야 한다고 본다. 우리 사회의 지성과 교양의 보루 역할을 해온 대학들이 혹여 구성원들의 이기주의에 매몰돼 대학사회에 대한 문제 제기를 외면해오지는 않았는지, 대학의 권위를 내세워 대학의 사회적 책임 요구를 소홀히 하지는 않았는지 다시 한 번 돌아보고, 우리 사회의 고민과 물음에 현명한 답을 준비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이호성 한국경영자총협회·상무
교육과학기술부 기업인과의 정책협의회 위원 등으로 활동했고, 현재 고용노동부 고용보험위원·규제심사위원·노사관계발전위원, 한국고용정보원 비상임이사 등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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