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是非世說_ 어떤 ‘轉向’
是非世說_ 어떤 ‘轉向’
  • 김영철 편집위원
  • 승인 2013.05.07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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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봄의 끝물이면 떠올려지는 「落花」의 한 구절이다. 이 시를 쓴 이는 故이형기 시인이다. 그는 해방 공간의 시기 진주농림학교를 다녔다. 좌우 이념 대결의 소용돌이는, 이 학교라고 가만 놓아둘 리가 없었다. 이형기는 좌익 쪽이었다. 학교 개교 기념일에 올릴 연극을, 지도교사는 오스카 와일드의 「살로메」를 학생 측에 권유했다. 좌익 쪽 학생들의 거센 반발이 일었다. 부르주아적 퇴폐주의의 산물 같은 작품을 무대에 올려서야 되겠는가. 이 반발의 중심에 이형기가 있었다.

지도교사는 그에게 와일드를 다시 읽어볼 것을 권했고, 결국 「살로메」가 무대에 올려졌다. 이 지도교사가 바로 소설가 故이병주였다. 이 얘기를 들어 좌익사상에 물들어가던 이형기가 이병주의 권유대로 와일드를 읽은 후 그에 빠져 ‘전향’하게 됐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알 수가 없다. 이형기의 그 후 시인과 기자, 교수로서의 생활은 이념과는 별 관계가 없었다. 그러나 어쨌든 이형기는 그의 회고록에서 언급했듯이 와일드의 ‘예술론’에 심취했고, 그의 작품이 와일드의 영향을 받은 사실을 밝히고 있다.

무력과 이념의 남북대결이 노골화되던 1960년대 말, 남북분단 이래 가장 대규모의 대남지하 간첩조직이 세상에 알려졌다. 1968년 검거된 ‘통일혁명당’사건이다. 통혁당은 김일성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삼았고, 이 사건의 주모자인 김종태, 김질락, 이문규는 모두 북한으로 가 김일성에게 충성을 맹서했다. 이 셋은 검거 후 모두 사형선고를 받는다. 이들 중 김종태와 이문규는 최종판결 후 얼마 되지 않아 처형된다. 그러나 김종태의 친조카인 김질락은 살아남았다. ‘전향’했기 때문이다. ‘전향’의 辯은 삼촌의 꼬임에 빠진 자신의 과오에 대한 뼈저린 회한과 반성이다. 그는 자신을 “인간대열에서 떨어져 나간 한 낙오병”으로 비하한다. 뼈를 가는 반성이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일 수도 있다.

그는 전향의 동기 등을 한 권의 책으로 쓴다. 『주암산』이 그것이다. 『주암산』은 그가 평양에 갔을 때 머물던 초대소의 뒤에 있던 산이다. 그러나 결국 그는 살아남지 못한다. 7·4 남북 공동성명 직후인 1972년 7월 15일 처형된다. 북한을 다녀왔다는 사실이 사법 처리의 올가미를 빠져나올 수 없었다는 것인데, 남북 해빙의 무드에서 미국의 눈치를 봤다는 얘기도 있다. 종래의 사상이나 이념을 바꾼다는‘전향’은 그 목적이 살아남는 것인데, 김질락의 그것은 ‘실패한 전향’이 된 셈이다.

성일기라는 분이 얼마 전 TV에 나왔는데, 저런 기구한 역정을 지닌 분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 80인 그와 그의 가족은 남북 분단과 대립의 한 가운데서 뒤죽박죽이 된 고난의 인생들이다. 경남 창녕의 만석꾼 집 4대 독자로 태어난 그의 누이동생이 북한 김정일의 여인이자 김정남의 어머니인 성혜림이다. 말하자면 북한의 한때 ‘퍼스트 레이디’가 그의 누이동생이었다는 얘기다. 또 남한으로 망명했다 1997년 암살당한 이한영의 어머니 성혜랑도 그의 누이동생이다.

그는 서울 보성학교를 다니던 1940년대 말 남로당 간부였던 그의 부모를 따라 월북한다. ‘이상향’을 꿈꿨던 그와 그의 부모들에게 북한은 그런 곳이 아니었다. 그들은 ‘정치적 쓰임새를 다한 전향한 부르주아’에 불과했고, 그런 그들에 대한 북한당국의 태도는 냉정한 것이었다. 결국 그는 빨치산 교육을 받고 6·25 직전 남파된다. 그리고 목숨을 바쳐 투쟁한 빨치산 생활 3년만에 체포된다. 그러나 그는 운 좋게도 ‘백두산 호랑이’ 김창룡 덕분에 살아남는다. 그렇게 해서 남한에 정착해 살아왔다. 그런 그가 왜 TV에 나왔을까. 그의 얘기 속에 그 답이 들어있다. “이념과 사상? 그게 다 쓰잘데기 없는 것”이라는 것이다. 사상과 이념이 약속한 이상을 믿고 인생을 바쳤는데, 지나보니 그것들이 만든 세상은 쓰레기라는 것이다. 마지막 소원은 그저 조용히 세상을 떠나는 것이라 말했다. 그도 전향을 했을 것이다. 이 분의 경우는 어떤 형태의 ‘전향’인가.

김영철 편집위원 darby4284@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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