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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전업 작가입니까?
당신은 전업 작가입니까?
  • 교수신문
  • 승인 2013.04.23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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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최근 ‘인문학적 소양, 철학적 소양’이라는 말이 곳곳에서 사용되고 있지만, 정작 대학에서는 인문학의 위기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순수 학문의 역할이 중요한 문학과 철학은 2000년대 이후 취업률이 높은 학과로 학생들이 몰리기 시작하면서 1970년대와 1980년대에 누렸던 인기에 비하면 학생들의 선호가 많이 떨어지고 있다. 이것은 미술대학도 마찬가지다. 해를 거듭할수록 취업으로 이어지는 학과들은 경쟁률이 아주 치열해지고 있다. 최근 대학평가에서 미술대학 졸업생들의 취업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흐름은 예술가를 배출하거나 창의력을 길러주는 미술대학 본연의 교육 목표에 어긋난다. 현재 미술대학 졸업생들에 대해 취업률 조사를 하는 방식은 타 단과대학 졸업생들과 마찬가지로 4대 건강보험 유무다.

이에 더해 대학을 갓 졸업한 미술대학생들이 ‘미술관으로 등록된 기관’에서 졸업 이후에 1회 개인전이나 2회 단체전을 하는 경우 전업작가로 인정해주는 방식이 있다. 후자의 방식은 궁여지책으로 만들어진 대안으로 제시됐다. 그러나 미술관으로 등록된 기관이 작업양이 방대하지 않은 신진작가들에게 ‘1회 개인전’을 열어주기가 쉽지 않다. 이러한 방안은 화랑으로 등록된 기관에서의 1회 개인전도 포함하거나 아예 미술대학 취업률 평가를 제외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 미술대학 취업률은 대학원 진학이나 유학도 인정된다. 그러나 전업작가의 길을 모색하거나 국내외 대학원에서 계속 학업을 하고 싶은 졸업생들도 1년 동안의 실험기를 거친다.

4년 동안 자신이 선택한 전공을 계속할 것인지, 새로운 전공을 공부할지, 전업작가가 자신에게 맞는지 등 개인의 행복을 위해 일정 시간동안 고민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플라톤은 “성찰하지 않는 삶은 의미가 없다”라고 말했다. 20대의 젊은 대학생들이 대중매체와 시류에 휩쓸리기 쉬운 오늘날, 자기 나름대로 가치관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비평적으로 사고하는 훈련이 중요하다. 이러한 훈련은 미술대학에서도 중요하며, 이러한 질문들은 예술적 마인드와 창의력과도 연관된 교육이기도 하다. 그러나 예술가들을 배출하는 미술대학을 취업률로 평가한다면 이것은 사회의 제도와 시스템이 편법을 조장하는 또 다른 재앙을 불러올 것이다. 개개인은 훌륭하지만, 우리에게는 장기적인 비전을 생각해볼만한 여유를 주는 제도가 부재한다. 꿈을 꾸고 실패와 성공을 해보기 전에 이미 승패는 판가름이 나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꿈을 꾸지 않는다고 실망하지만, 실제로는 꿈을 꾸면 실패자로 낙인을 찍는 시스템이 더욱 문제다. 미술대학을 취업률로 평가한다면 우리는 결코 세계적인 스타 미술가들을 배출할 수 없을 것이다. 부실대학을 가려내기 위한 기준을 찾기 위해 취업률이라는 기준을 사용한다면, 취업률이 낮은 인문대학, 예술대학 등은 한국의 대학 시스템에 기여하는 바가 없는 ‘부실단과대학’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

요즘의 미술대학은 더 이상 실기만을 가르치지 않고 예술비평, 미술사, 철학 등 인문학적 교과목들을 가르치고 있다. 예술비평적 사고는 사물을 전체적으로 보게 하며, 사물과 인간의 연관성을 살펴보도록 요구한다. 그 속에서 학생들은 어떻게 주체적으로 살 것인지 생각하는 훈련을 한다. 이러한 사고는 인생을 의미 있게 살 수 있도록 ‘단초’를 제공한다.

예를 들면, ‘스펙’이 중요해진 오늘날, 학생들은 ‘스펙’이 왜 중요하며, ‘스펙’을 통해서 무엇을 성취할 것인지, 스펙이 내 인생에서 어떤 도움이 되는지 등에 대해 질문을 제기할 필요성이 있다. 즉, 개개의 가치관과 인생관을 확립하는데 비평적인 사고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요소들은 미술대학 평가에는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다. 학문의 경계가 사라지고 융·복합 연구가 각광받는 시대에 미술대학과 인문학에 바탕을 둔 비평적 성찰, 예술과 과학 등에 대한 다양한 통섭적 연구가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이는 사회적 가치 안에서 형성된 나와 우리의 삶에 대한 비평적인 자세와 철학적인 성찰을 끌어내고, 미래사회에 대한 통찰을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을 기른다. 이는 제도와 행정에 의해 희생돼서는 안 되는 중요한 교육철학이다. 또한 융·복합 이란 명목 하에 순수예술과 테크닉을 강조하는 예술이 희생돼서도 안 될 것이다. 결국에는 이 모든 것은 서로 공존하면서 다양성을 존중해야하기 때문이다.

정연심 홍익대·미술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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