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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요구와 함께 한 학문 경향 …‘새로운 이론의 발신지’ 모색 깊어질까?
사회적 요구와 함께 한 학문 경향 …‘새로운 이론의 발신지’ 모색 깊어질까?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3.04.15 16: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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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문의 세대변화를 읽는다

<교수신문>은 2003년 ‘우리 이론 어디로 가고 있나’기획을 통해 한국적 학문의 길을 모색한 바 있다. 해방 후 우리 학문 연령은 70세를 향해 가고 있다. 해방 이후 황무지와 같던 상황에서 학문 1세대로부터 시작된 우리 학문계는 서구 학문의 유입기와 이론의 한국 적용기를 거쳤고 오늘날 한국 고유의 이론 발신을 지향하고 있다. 여러 세대를 거쳐 온 전 학문에 걸쳐 전수조사를 하기는 쉽지 않았기에, 거칠게나마 국어국문학, 사회학, 수학의 세부전공 변화 추이를 통해 세대 변화 속에 나타나는 현상을 짚어봤다. 한국연구업적통합정보(www.kri.go.kr)에서 자료를 가공했다. 학령인구 감소, 그리고 대학의 새로운 변화가 모색되는 지금, 생물학적인 나이로 세대가 바뀌는 것이 아닌 진정한 세대 변화가 이뤄지고 있는지, 신진학문세대들은 선배 세대들과 학문적 연속선상에 있는지, 그들의 정체성은 어떻게 찾아지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 학문공동체에는 어떤 변화들이 감지되고 있는지 세 학문 분야의 변화로 살펴봤다.


해방 이후 초기 국어국문학계에서 국어학자의 수요가 많았던 이유는 그 역사적 배경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창씨개명 등의 억압을 받던 일제강점기가 지나고 학문1세대들의 최우선 과제는 잃어버린 국어를 제자리에 되돌려놓는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초기에 국어학에 쏟아지던 관심과 열정이, 국어학과 국문학을 대등한 범주로 설정하게 했고, 초기 국어국문학계는 국어학과 국문학을 이분하는 방식으로 확립됐다.

문학 분야에서는 고전, 특히 시가 쪽에 관한 연구들이 이뤄졌다. 당대 문학이라던가 당대 사회비평이 일제 강점기에는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에 고전시가로 관심이 쏠렸고, 한정된 자료 때문에 고전산문으로까지 세부전공이 확대됐다. 당시 양주동 전 동국대 교수, 정병욱 전 서울대 교수, 김동욱 전 연세대 교수, 박성의 전 고려대 교수 등의 원로교수들이 각 대학 국어국문학과의 학풍을 만들었던 시기다.

1960년대가 되면서 구비문학이 고전문학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그 이전에 한문학은 순수국문학이 아니라는 평가를 받다가 마침내 한문학도 국어국문학의 세부 전공분야로 편제된 것이다. 이는 고전문학(고전시가, 고전산문, 구비문학) 전공자들의 증가를 통해 자연스레 나타난 세부전공의 변화다.

어학/문학 이분체제로 시작한 국어국문학과

현대소설과 현대시 전공자들이 급증하게 된 이유 역시, 국어학 분야의 정리 시기와 고전 분석을 지나, 당대를 가장 세밀하게 포착, 표현해내는 매체인 소설과 시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전 세대들의 세부전공에서 학문적 기초체력이 축적되고 나면서, 한국의 당대 현실에 대해 분석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병헌 국어국문학회장(숙명여대)은 이 시기에 들어서서 국어국문학계는 국어학, 고전문학, 현대문학의 삼등분 체제를 형성했다고 말했다.

사람도 환경에 따라 변하듯, 학문도 시대나 공간에 따라 달라진다. 한국의 현실에 대한 소설, 시 등을 분석하고, 또 그 현실을 거리를 두고 볼만한 여유가 생기면서, 다시 전통을 찾는 학문경향이 생겨났다. 민족문화추진위원회(현 한국고전번역원)의 번역사업을 통해 한문학에 대한 수요가 다시 증가한다. 이는 위에서 살펴본 바로 고전시가, 구비문학, 한문산문의 증가세로 확인할 수 있다.

사회학의 시작은 1948년 서울대에 사회학과가 개설되면서부터다. 외국의 이론을 한국에 수입했던 이만옥 도쿄대 교수 등이 설립한 서울대 사회학과가 1세대였다면, 이후 김경동 서울대 교수, 한상진 서울대 교수 등 2세대에 이르면서 외국 이론과 한국 현실을 결합하려는 시도들을 했다. 외국 교과서를 갖고 들어와 한국에 소개하던 수준을 벗어나 본격적으로 한국사회과학의 장을 펼친 것은, 서유럽이 사회학의 위기를 외치던 1960년대에 이르러서다.

사회학 전공자 감소는 ‘이스털린의 역설’

사회학의 경우 신진세대들의 세부전공은 변화하지만 선배세대와의 꾸준한 학문적 연속선상에 있다는 것이 설동훈 전북대 교수(사회학과)의 시각이다. 사회이론/사상사의 경우 사회학과의 핵심과목인데 이론이라는 전공자체가 바뀌었다기보다는 구체적으로 시대별 연구하는 이론가와 모형만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사회학은 동시대를 다루기 때문에 시대의 변화에 가장 민감한 학문 중 하나다.

또한 사회학은 실증주의자, 해석학 적용자, 마르크스식 비판이론자 모두의 패러다임이 공존할 수 있다는 가정 하에 논의되는 학문이기에 신진학문세대 세부전공의 생성과 변이는 큰 맥락에서 보면 선배 세대들의 학문의 연장선상에 있다. 다만, 이전 세대들이 질적인 연구만 강조했다면, 오늘날은 정량적 방법론, 계량연구를 병행한다는 방법론적인 변화는 보인다고 설 교수는 지적했다. 일례로 프랑스 사회학의 대가 부르디외 역시 서베이와 질적 연구를 병행했고, 새로운 세대들에게는 이 방식이 오히려 더 친숙하다.

농촌사회학이 인기가 있었던 시기를 지나 1960년생 교수들의 활동 시기에는 한국이 공업화되는 시기였고, 이에 따라 산업사회, 노동사회학 분야가 핵심적인 세부전공으로 떠오르게 된다. 계급구조로는 1988년을 기점으로 노동인구가 피크를 이뤘지만, 블루칼라가 줄어들고 다른 형태의 직업인이 증가하면서 사회학의 관심은 문화, 포스트모던으로 옮아갔다. 선진국 단계로 진입하는 지표로 읽힌다. 표에서는 나오지 않지만, 현재의 가장 각광받는 세부전공은 다문화와 소수자 분야이다.

가파르게 증가하던 사회학 전공자 수가 1975년생 교수의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급감하게 된 것에 대해서 설 교수는 ‘이스털린의 역설’로 설명했다. 베이비부머 세대가 어떻게 해서든 대학에 자리를 잡았지만, 노동시장에서 점차 수요가 감소하는 것을 본 후속세대들은 학문시장에서 불이익을 당했고, 아예 진입조차 꺼리게 됐다는 분석이다.

수학 분야는 크게 역사적으로 오랜 기하학, 수론(정수론), 20세기에 들어와 생겨난 위상수학, 그리고 프랑스가 강세를 떨쳤던 해석학 분야로 나눌 수 있다. 수학 분야의 세부전공 분포를 살펴보면, 1945년부터 1975년 생까지 일관적인 흐름은 ‘해석학’ 분야에 치우쳐져 있다는 것이다. 故이임학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교수의 경우 대수학을 전공했고, 권경학 포항공대 교수는 위상수학을 전공했지만, 1세대 학자들의 전공이 대부분 해석학에 치우쳐져 있었다는 사실이 시사하는 바는, 순수수학으로서의 연구보다는 상대적으로 논문 쓰기가 편한 분야 위주로 전공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컴퓨터 발달 따라 전산수학 전공자 등장

이는 1960년대 응용수학의 발달로 이어진다. 대학 수가 늘어나며 자연스레 교수 수도 증가했지만, 가파른 산업화의 길을 걷던 국내 상황에서 컴퓨터의 발달에 따라 자연스레 전산수학 전공자가 등장하고, 정수론에서 비롯한 수치해석 분야도 약진한다. 응용수학분야의 상승세는 1975년생 교수들에게서도 보여지는데, 비밀번호가 도입되면서 자연스럽게 필요하게 된 암호론 분야, 고도로 발달하는 경제 구조로 인한 금융수학 등이 대표적인 분야라고 할 수 있다.

학문의 세부전공 변화에서 무엇을 읽어낼 수 있을까. 1세대부터 꾸준한 성장을 보이고 있는 기초학문의 체력이 어느정도 축적됐다는 점과, 학문 수입기 이후의 한국적 학문 모색, 그에 따른 새로운 이론의 발신이 그것이다. 한류로 인해 국어교육, 한국어 교육 분야가 국어국문학계 최대의 화두라고 말하는 정병헌 국어국문학회장은 선배 세대들이 하나의 수입 이론을 소개하기에 급급했다면, 오늘날 신진 세대들은 여러 이론을 접하고, 그것을 국내 상황에 적용해 마침내 한국 고유의 이론을 발신할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설동훈 한국사회학회 편집위원장도 살을 보탰다. 세계 수준과 국내 수준의 격차가 미미한 오늘날은 SCI를 통해 인정을 받아야만 하는 시대인데,우리 사회에 기초를 둔 한국에서 출발하는 사회이론을 만드는 시도에 젊은 사회학자들의 동참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양재현 인하대 교수(수학과) 역시 대가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데, 신진학문세대들이 실적 잘 내는 교수 아래서 공동논문만 낼 것이 아니라, 좀 더 모험심을 갖고 독창적인 이론을 낼 수 있는 깊이를 가지라고 주문했다. 응용수학 분야도 중요하지만, 순수학문에 대한 열정과 도전이 있어야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충고로 읽힌다.

해방 후 70년을 바라보는 이 시점에서 기초학문의 체력을 보강하고, 한국 현실에 맞는 학문을 모색해, 새로운 이론의 발신지가 되는 것이 세 학문 분야에서 공통적으로 보여지는 현상이다.


윤상민기자 cinemond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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