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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공화국과 사회 불평등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사회 불평등
  • 김민정 동국대 강사 사회학
  • 승인 2013.04.01 14: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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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_ 김민정 동국대 강사

김민정 동국대 강사
아프리카는 우리에겐 낯선 미지의 땅이다. SBS가 <정글의 법칙> 첫 촬영지로 아프리카를 선택했던 것도 ‘오지=아프리카’라는 이미지가 한국사회에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원주민’과 ‘오지’에만 치중한 접근은 아프리카의 진면목을 이해하는 것을 방해할 수 있다. 아프리카는 아시아만큼이나 경제, 문화, 정치적인 측면에서 다양하고 역동적인 모습을 지닌 대륙이다.

과거 제국주의 식민지 경험은 오래된 악습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이하 남아공) 사회를 짓누르고 있다. 이는 백인 국가의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로 더욱 강화돼 왔다. 1994년 아파르트헤이트를 벗어난 후에도 가난한 흑인과 부유한 백인의 대립은 사라지지 않았다. 여기에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세계를 휩쓴 신자유주의 바람은 남아공을 빗겨가지 않았다. 또한 날로 그 영향이 강해지는 기후변화는 남아공 사회에 더 큰 부담을 지우고 있다.

남아공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최대 부국으로 식민지 경험과 신자유주의적 세계질서 재편이라는 자본논리의 표본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조건의 남아공 사회 분석은 아프리카를 정치경제학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필자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으로 1년 동안 남아공 더반 소재 콰줄루 나탈대 시민사회센터에서 박사후 연구과정을 수행한 것도 이 때문이다.

시민사회센터는 정치경제학적인 시각에서 아프리카의 다양한 사회문제를 경험 조사하는 곳이다. 특히 사회정의 관점에서 아프리카 사회에 대한 연구 성과를 갖추고 있다. 구체적으로 인종차별 등 다양한 사회적 차별을 조사하고 저소득층 밀집지역의 사회경제적 자료를 수집하며 정부 차원의 사회복지 정책 실태를 파악한다. 최근에는 기후정의 의 입장에서 기후변화의 원인과 해결방안 및 아프리카 기후시장에 관한 사례를 연구한다.

이 연구소의 강점은 지역밀착형 현장조사에 있다. 연구소 소속의 지역 연구자는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의 현안을 면밀하게 조사한다. 이들은 지역주민 대면조사를 통해 지역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는다. 중요한 사회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지역 주민을 초청해 대중 토론회를 개최한다. 이를 통해 지역 주민의 절박한 상황을 듣고 연구소에서 만든 정책 및 해결 방안에 대한 주민의 의견을 수렴한다. 이는 상아탑 속에만 머무는 피상적인 연구가 아닌 지역 주민의 삶과 밀착된 사업을 하기 위한 것이다. 연구·이론과 실천을 긴밀하게 연결하려는 연구소의 기본 방향을 반영한 것이다. 이러한 연구소의 방침은, ‘소수’ 실무자·연구자 수준에서만 지역의 현장성을 강조하는 정책사업과 양적 ‘통계’ 만을 객관적인 지표인양 취급하는 학계가 서로의 교차점을 찾지 못한 채 겉도는 한국의 상황과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아프리카, 낯선 땅 다른 환경에 대한 두려움과 설렘이 교차하는 곳이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지구촌 모든 곳의 삶을 비슷하게 만든다. 패스트푸드와 자동차, 휴대폰, 전자제품 등. 한국에서도 익숙하게 접할 수 있는 것 천지다.

불평등도 마찬가지다. 최신 상품이 즐비하게 늘어선 상점 밖에는 하루 끼니를 해결하고자 동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인종차별에서 비롯되던 소득 불평등이 인종차별 체제의 해체 이후엔 자본주의의 불평등에 기인해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공식 실업률이 20~30%에 달하기에 더반 시내에선 가족을 동반한 노숙 등 다양한 형태의 노숙자를 만날 수 있다. 노동력을 팔 기회조차 얻지 못한 이들이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동냥이다. 심지어 Mr. Bin(미스터 쓰레기통)이 존재한다! 인간 쓰레기통을 자처하고 나선 이들은 쓰레기 봉지를 몸에 두르고 도로에서 신호 대기 중인 운전자가 건넨 쓰레기를 치워주며 동전 몇 닢을 받는다.

정부에서 제공하는 사회복지 시설이 턱없이 모자라 미혼, 장애인, 일할 능력이 없는 노인과 아이 등은 거리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도시 중심은 빈민층이 가득한 거대한 슬럼지역이 된다. 다툼과 절도 등 범죄가 끊이질 않는다. 그야말로 남아공의 극심한 사회 불평등은 자본주의 현대 도시의 중심에서 그대로 노출된다.
건설 인력시장은 경쟁이 심하다. 산업예비군은 넘쳐나지만 그 수에 비해 일자리는 적다. 임금이 계속 낮아지는 이유다.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하더라도 알선비를 제외하고 순수하게 받는 일당이 약 50랜드(1랜드=140원이라고 할 때 7천원. 가장 싼 KFC 햄버거 값이 9랜드)다! 그나마 이런 일자리라도 매일 있는 게 아니다. 일부 구직자는 교통비를 절약하기 위해 거리에서 노숙한다.

교통비 문제는 불안정한 일자리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문제만이 아니다. 정규직 일자리를 구해도 교통수단은 여전히 문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동의 자유는 개인의 주머니 사정에 따라, 무엇보다도 그 나라의 대중교통 수준에 맞춰 제약을 받는다.

서울처럼 대중교통이 잘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은 미니버스 택시라는 소형 승합차 형태의 교통수단을 이용한다. 저소득층의 다수는 더반 시내에서 30~40km 떨어진 흑인 밀집지역의 판자촌에 살고 있다. 예를 들어 콰줄루-나탈대학에 일하러 갈 경우 노동자는 우선 시내까지 가는 미니버스 택시를 이용한다. 그런 후에 대학에 가는 미니버스 택시로 갈아타려면 5분 정도 걸어야 한다. 대중교통 수단의 열악함은 이들의 삶을 더욱 고달프게 만든다. 교통비로 쓰이는 돈만 하루 30랜드 정도다.

자본주의 사회의 물질적 풍성함과 달리 가난한 이들에게 숙식이나 대중교통과 같은 삶의 기본적 수단은 여전히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도심에서 밀려난 가난한 흑인은 일자리 부족에 시달린다. 최저수준 임금의 일자리라도 얻기 위해선 그 만큼의 교통비를 써야 한다.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교외에서 굶든가 도심에서 쓰레기통이 되든가 하는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인종적 아파르트헤이트는 사라졌지만 전면적인 자본주의적 아파르트헤이트가 남아공을 가르고 있다.

김민정 동국대 강사ㆍ사회학
성공회대에서 정치경제학의 관점에서 환경 문제의 불평등성에 관한 박사 논문을 썼다. 주요 관심사는 환경 불평등과 환경(기후)정의, 사회이론과 환경이론의 접목, 사회 저항운동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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