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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단상_ 중요한 것을 가르치는 교수
교육단상_ 중요한 것을 가르치는 교수
  • 김종겸 연암공대·기계조선자동차계열
  • 승인 2013.03.11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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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겸 연암공대·기계조선자동차계열
“30대 교수는 어려운 것을 가르치고, 40대 교수는 중요한 것을 가르치고, 50대 교수는 알고 있는 것을 가르치고, 60대 교수는 기억나는 것을 가르친다”라는 유머에 웃으며 공감한 적이 있다. 나는 30대에는 많은 것을, 40대에는 어려운 것을, 50대에는 중요한 것을 가르치려 노력했다고 자평한다.

30대 초반에 강단에 섰던 나의 롤 모델은 화려한 지식과 철저한 원칙, 합리주의로 수업하셨던 모교의 젊은 교수님들의 모습이었다. 아울러 어렵게 터득했던 전문지식을 가능하면 많이 전달해 주고 싶은 생각에 사로 잡혀 있었다. 내 딴에는 수업에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기에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공부가 부족하다고 많이 닦달했던 기억이 있다.

이런 철학이 한번에 무너진 것은 외부의 환경변화 때문이었다. 어느 한해 급변한 입시환경에 미처 대응하지 못해 전무후무한 입학 미달 사태가 발생했고, 이 일을 계기로 교수의 정체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학생이, 산업체가, 지역사회가 이 학과를 찾지 않는다면 나 역시 교수라는 직책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 거리에서 마주치는 고등학생들이 예사롭지 않게 보였고, 우리 학과에 미래를 걸고 입학한 학생들이 고맙고 귀하게 여겨졌다. 이는 나의 교수 관점이 나의 눈높이에서 학생 눈높이로 조정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전문대학은 교수와 학생 간의 교류가 많은 것이 강점이다. 교수들은 학생들의 이름을 외우려고 노력하고 그들의  환경을 알고 함께 얘기하고 진로를 지도하는 것을 중요한 의무 중의 하나로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간혹 감사의 뜻이 담긴 선물을 받곤 한다. 어떤 학생은 유명 대기업에 최종 합격한 후 “오늘 아버지께서 신용카드를 주시면서 이것 갖고 교수님 대접해 드리라고 하셨어요”라며 찾아왔다. 새가슴이라 만 원짜리 밥을 먹었지만 마음은 최고의 식사를 대접받은 느낌이었다.

또 다른 학생은 어느 대기업에 테크니션으로 입사하는 것을 도와줬다고 우연한 자리에서 만난 그의 어머니가 나에게 90도로 허리 숙여 절하는 것에 무척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또 다른 학생은 어머니가 농원에서 일하는데 “교수님이 난초 좋아하시니 갖다 드리라”고 해서 졸업식 때 그 먼 곳에서 화분을 들고 온 것을 보고 가슴이 먹먹했던 적이 있다.

맹자는 “천하의 영재를 얻어서 교육하는 것”을 군자의 三갪 중 하나로 삼았다. 하지만 나는 맹자처럼 학생들이 가르침을 잘 이해할 때도 즐겁지만 오히려 위와 같은 일들을 겪을 때 또 다른 묘한 성취감을 느끼면서 이게 사람을 키우는 것인가 하고 뿌듯하다.

교육학에는 비록 문외한이지만 오랫동안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지도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 나에게는 단순히 교육 대상인 학생들이 각 가정에서는 소중한 자녀들이고, 가족들이 많이 염려하고 기대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공부를 잘하는 학생도 칭찬해 주고 싶지만 그보다 더 신경을 써야 하는 대상은 중간층에 있는 다수의 학생들이며, 교육의 눈높이, 강의의 눈높이가 그들에게 맞춰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관점이 중요한 것을 가르치는 교수로서 가장 첫걸음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학교에서 생긴 일로 툴툴거릴 때면 아내가 나 들으라고 하는 말이 있다. “나는 이 세상에서 연암공대 학생들이 제일 예쁘고 연암공대가 제일 고맙다. ”학교 일이 마음에 안들어 불평불만 거리가 생길 때, 학생들이 말 안 듣고 속 썩일 때 한 번씩 되뇌어 보려고 한다.


김종겸 연암공업대학·기계조선자동차계열
부산대에서 박사를 했다. 1987년부터 연암공업대학 교수로 있으면서 학생처장을 지냈고, 지난 2월부터는 교무처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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